(2022-10-26) 4,000개의 섬 라오스 시판돈으로
오늘은 캄보디아/라오스 국경을 넘어 라오스의 시판돈으로 간다. 시판돈이란 라오스 어로 "4,000개의 섬"이란 뜻이라 한다. 영어로는 이곳을 Four Thounds Islands라 표기한다. 이곳은 메콩강의 유속이 느려지면서 수많은 모래섬과 모래톱이 생겼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4,000개에 이른다는 것이다. 뛰어난 절경이 많아 이미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시판돈에는 사람이 살고 앗는 섬들도 많다. 그 가운데서도 돈뎃, 돈콩, 돈콘 등 3개 섬에 대부분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오늘의 목적지는 가장 큰 섬인 돈뎃이다.
이곳 씨엔립에서 돈뎃까지는 차로 7~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돈뎃행 차는 8시에 출발하는데, 7시 반쯤에 툭툭이 기사가 호텔로 픽업을 왔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는 장거리 버스나 단체 투어를 예약하면 손님이 집합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운수회사나 여행사에서 픽업을 하러 온다. 아주 편리하다.
시판돈행 차는 15인승 밴을 개조하여 7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운전석 뒷자리가 3열 4행인 것을 2열 3행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옆으로도 여유가 있고 다리도 어느 정도 뻗을 수 있다. 승객은 우리 부부 외에 한국인 청년 1명, 서양인 남녀 각 1명 해서 모두 5명이다. 한국인 청년은 나이가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데, 거의 2년 동안 여행을 하다가 요즘에는 캄보디아에 눌러앉아 있는데, 약 2달 예정으로 오토바이를 렌트하여 라오스를 여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길이 나쁜 탓인지 아니면 차가 낡아서 그런지 심하게 덜컹거린다. 출발한 지 5시간 정도가 지난 오후 1시경 캄보디아의 국경도시인 스퉁트렝에 도착하였다. 국경도시라길래 형편없이 낙후된 도시일 것으로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다. 제법 도시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체적으로 캄보디아는 내가 상상하고 있었던 것보다는 발전해 있었다. 아주 가난하고 피폐한 걸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대도시만을 비교한다면 이웃인 태국과 큰 차이가 나지만 변두리는 태국과 거의 비슷한 정도라는 느낌이다. 아니 오히려 태국보다도 낫다고 할 수 있다. 태국 변두리에는 거의 움막집 같은 열악한 집들이 적지 않은데, 캄보디아에서는 그 정도로 열악한 주택은 그다지 보지 못하였다. 물론 나의 경험이란 것이 극히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국경도시인 스퉁트렝에 내리니 묘한 느낌이 든다. 웨스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마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일제강점기 만주의 어느 황량한 국경 마을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차를 바꾸어 타야 한단다. 우리가 타고 온 밴은 시엔립으로 돌아가고 다른 차가 우리를 국경 사무소까지 데려다준다고 한다. 식사를 마차고 차를 옮겨 타니, 30분 정도 달려 캄보디아 국경 사무소가 나온다.
국경 사무소가 멀리 보이는 곳에서 하차한 후 사무소까지 걸어가 출국 수속을 한다. 통관 직원들은 대놓고 돈을 요구한다. 2불을 주지 않으면 출국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애를 먹인다고 한다. 부패가 제도화되어 있는 셈이다. 내 출국 절차를 담당하는 직원은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직원이다. 이런 애들까지 벌써 부패에 발을 들였나 하는 생각 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그런데 다행이라 할까 여권을 옆으로 넘기니 다른 직원이 돈을 요구한다. 물론 그 여직원도 부패 그룹의 일원이겠지만, 내 눈앞에서 직접 돈을 받지 않으니 작은 위안이 된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300미터쯤 걸어가면 라오스 출입국 사무소가 나온다. 여기서도 돈을 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런 삥땅 때문인지 입국심사는 그다지 까다롭게 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가끔 혈기왕성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강력히 항의하곤 하지만, 이미 제도화한 부패가 단기간에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니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라오스 출입국 관리소를 빠져나오니 다른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국경을 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려 캄보디아 회사와 라오스 회사가 서로 협업하는 것 같다. 다시 차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리니 넓디넓은 메콩강이 보이고, 강가의 조그만 선창에 우리를 내려준다. 여기서 배를 타고 돈뎃 섬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배가 출발했다. 시판돈, 즉 4천 개의 섬이라는 지명에 걸맞게 넓은 메콩강은 섬으로 가득 차있다. 숲에 둘러싸인 섬 하나하나가 절경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다도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배는 섬과 섬 사이를 빠져나가며 30분 정도 달려 우리를 돈뎃 섬에 내려다 준다.
이번 숙소는 호텔 대신 메콩강변에 자리 잡은 리조트 스타일의 민박을 선택했다. 이곳 돈뎃에는 호텔은 단 1곳이 있는 것 같으며, 나머지는 거의가 민박이다. 민박이라고는 하지만 부업 삼아 한 두 개의 방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며, 적은 곳은 대여섯 개 많은 곳은 몇십 개의 방을 보유하고 전문적인 숙박업을 영위하고 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숙박과 함께 식당과 여행사를 겸하고 있다. 식당 역시 메콩강을 내려다보는 위치이다. 식사 때마다 메콩강의 풍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메콩강의 누런 물결이 황금색으로 변한다. 강 위로는 길고 날렵하게 생긴 배들이 바쁜 듯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