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 01
고등학교 2학년 쯤 되었을 때 패스트푸드점이나 분식집이 아닌 곳에서도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이화여대 앞 트리니티였다. 트리니티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가 본 카페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꾸준하게 다닌 카페였다.
자주 어울리던 친구 두 명을 따라 처음으로 트리니티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나는 거의 문화충격을 받았다. 복작복작한 이대 앞 한복판, 벽돌과 나무로 꾸며진 아담한 건물은 혼자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이층집처럼 보였다. 빨간 틀로 된 유리문 너머의 내부는 빈티지 소품과 홍차 캔으로 구석구석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모든 좌석은 푹신한 소파였다. 테이블마다 작은 기름 램프가 놓여 있었고, 점원이 메뉴판을 가져오면서 항상 램프도 켜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카페 로고가 램프 모양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실용적인 목적은 없어 보였다. 실내가 대체로 밝았기 때문에 램프는 장식용일 뿐이었다. 창문마다 달린 레이스 커튼도 마찬가지로 채광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식용이었다. 그래도 램프와 커튼 모두 분위기가 있었다. 앞뒤 표지가 나무로 된 메뉴판을 펼쳐 보면 수십 종류에 달하는 차와 음료가 깔끔하게 인쇄되어 있었고, 한 줄씩 설명도 붙어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음료는 ‘피치 크림 티’였다. 립톤 인스턴트 복숭아 아이스티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띄우고 시나몬 파우더를 살짝 뿌린 것이었다. 말로 설명하면 좀 괴상하게 들리지만 실제로 마셔 보면 아이스티의 상큼한 복숭아 향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운 맛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멜론 소다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띄우는 일본의 크림 소다, 내지는 다양한 탄산음료에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띄우는 영미권의 아이스크림 플로트를 응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은은한 푸른색 찻물에 레몬즙을 떨어뜨리면 붉게 변하는 블루 멜로우, 시대를 앞서간 ‘민초’ 핫 민트 초콜릿, 피냐콜라다 칵테일에서 술을 뺀 버진콜라다.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모두 신기하고 맛있었다. 복숭아 향이 나는 따뜻한 홍차인 피치 클라라도 여러 번 마셨다. 동네 수입상가에서 산 립톤 티백을 제외하고 내 인생 첫 홍차였다. 향기로웠지만 찻잎이 계속 티팟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금방 쓰고 떫은 맛이 났다. 홍차를 지나치게 오래 우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지금도 많지는 않지만 그 때는 정말로 드물었다.
고등학생 때 내 용돈은 1주일에 만 원이었다. 2000년대 초였던 당시 기준으로 쪼들리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많은 돈도 아니었다. 나에게 트리니티를 소개했던 친구 두 명의 용돈도 나보다 적었으면 적었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꼬박꼬박 트리니티에 갔다. 카페가 지금만큼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스타벅스 같은 대형 체인점 카페도 아직 드물었고, 동네 카페는 더욱 드물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어렸다. 카페에 가는 일은 특별한 나들이였다. 트리니티처럼 멋진 카페라면 더욱.
우리 셋은 몇 시간씩 트리니티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배가 고프면 잼과 생크림을 곁들인 스콘을 주문해서 허기를 달랬다. 그릴 샌드위치가 양도 더 푸짐하고 밥 대신 먹기에도 더 좋았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기 때문에 딱 한 번밖에 먹어본 적이 없다. 스콘을 먹을 만큼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입이 심심할 때는 테이블마다 놓인 설탕 그릇 속의 설탕 결정을 한 알씩 집어 먹었다. 자갈 같은 모양, 자갈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 저마다 다른 명도의 반투명한 갈색 결정이었다. 트리니티 건물은 아늑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꽤 추웠다. 겨울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손이 시려서 조그마한 기름 램프의 불꽃에 손을 쬐기도 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우리처럼 하염없이 앉아있기 위해 오는 듯했고, 점원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가게 안의 분위기는 항상 조용하고 느긋했다. 가게가 꽉 찼지만 여전히 모두가 조용하고 느긋했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초저녁에는, 오후부터 죽치고 있던 우리를 포함해서 모든 테이블이 공짜 간식을 받기도 했다. 식빵을 트리 모양의 틀로 잘라내서 슈가파우더를 뿌린 소박하면서도 귀여운 간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신촌에서 대학교를 다니게 되고 과외로 용돈도 벌게 된 나는 트리니티를 예전보다도 더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반대로 두 친구는 경기도에서 함께 자취를 하게 되어 트리니티와는 전보다 멀어졌다. 대학생이 되면서 혼자 카페에 가는 일의 재미를 조금씩 알게 된 나는 혼자서도 트리니티에 잘 갔다. 식사 대신 마셔도 든든하다는 설명이 붙어 있던 달고 진한 로얄밀크티를 정말로 저녁밥 대신 마시면서 시험공부를 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대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도 여러 명 데려갔다.
한 번은 동아리 친구들과 트리니티에 모여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아이의 남자친구가 갑자기 찾아와 여자아이를 불러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우리가 나가 보았을 때 둘은 트리니티의 예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바로 옆의 벽을 등지고 싸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여자아이를 둘러싼 얽히고설킨 사각관계가 원인이었는데,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동아리 내에 있었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사연이 내 바로 주변에 있었다는 것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 커플이 트리니티 앞에서 싸우는 모습은 그 사건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 후로 한동안 트리니티 앞을 지나갈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곧 나는 트리니티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는데, 그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유였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 계기였다. 첫 데이트는 트리니티에서 했다. 그러나 우리는 곧 학교에서 더 가까운 신촌의 카페들을 주로 찾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트리니티와 여러 모로 꽤 비슷하면서 학교에서 더 가까운 클로리스에 많이 갔다(메뉴도 서로 비슷했기 때문에 두 가게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방학 때는 서로의 집에서 중간 지점에 있는 대학로나 이태원에서 만나거나, 소문으로 듣던 홍대 앞의 가게들을 개척해 나갔다. 데이트가 아니라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 카페에 갈 때도 홍대에 점점 더 많이 가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잊고 있었던 트리니티를 다시 찾은 것은 대학원을 이대로 가게 된 후였다. 오랜만에 들어간 트리니티는 변함이 없었지만,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오래된 느낌이 났다. 소품들은 빛이 바랬다. 소파는 여전히 푹신했지만 낡아 있었다. 관리를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피치 크림 티는 여전히 독특하고 맛있었지만 이제 나는 다른 카페의 더 독특하고 더 맛있는 음료들을 알고 있었다. 몇 년 후에는 심지어 트리니티에서 첫 데이트를 했던 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이대 근처에 신혼집을 구해 살게 되었는데도, 트리니티는 어쩌다 생각이 날 때 아주 가끔 갈 뿐이었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는 201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동네를 걷다가 트리니티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건물은 곧 평범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분식점이 새로 들어왔다. 더 이상 자주 가던 카페는 아니었지만 한때 유명했던 추억의 장소가 사라졌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비슷한 카페인 클로리스는 서울 안팎에 여러 지점을 둔 체인으로 성장했는데, 트리니티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오랫동안 건재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트리니티는 홍대에 분점을 하나 냈을 뿐이었고 그마저도 이대 본점보다 먼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레이스 커튼이 장식용으로 달려 있거나 모든 자리에 푹신한 소파가 놓인 카페는 이제 드물다. 점원이 테이블마다 기름 램프를 켜 주는 카페는 그보다도 훨씬 드물 것이다. 립톤 인스턴트 아이스티를 베이스로 만든 음료가 대표 메뉴인 카페도. 혹시나 그런 카페를 발견하다고 해도 지금은 고풍스럽다 못해 촌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있었던 트리니티는 내 첫사랑 카페다. 신기할 것도 많고 설렐 것도 많던 고등학생의 눈으로 보았던 모습에 추억 보정까지 더해, 내 기억 속의 트리니티는 항상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