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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토네 Oct 25. 2021

물구나무서기1

Shirshasana / headstand 




고양이 레오가 캣트리에서 내려 올 때 몸을 거의 수직으로, 머리의 방향도 착지점에 맞춰 180도 이상 틀어 유연함을 자랑할 때가 있습니다.

고양이랑 함께 하다 보면 수평공간과 수직공간에 대해 구분은 인간만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보자면 위와 아래, 오른쪽과 아랫쪽의 구분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오래 전 어린이 키키토네는 너무 심심해서 물구나무를 서 본 적이있다.


몸을 잘 쓰는 편이 전혀 아닌데 물구나무를 설 생각을 하다니.

인간에게는 그런 날이 있다.


아마도 한창 읽던 톰 소여의 모험에서 개구장이 소년 허클베리핀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물구나무를 섰거나 

티브이 애니메이션 속 미래소년 코난의 포비가 갑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뭐 그런 걸 봤기도 했던 것 같다.


너무 심심해서. 그 심심해서 해 본 물구나무가 어쩌다 되었고, 

물구나무를 설 줄 모르는 아이에서 

물구나무 설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다 심심했던 또 다른 어느 날 혼자 물구나무를 서다 180도를 원을 그리며 시원하게 떨어진 이후, 

다시는 물구나무서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요가 클래스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물구나무를 서보려 하자. 어떻게 했었는지 몸이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핑그르르 돌아 떨어지며 지구가 뒤집히는 듯 했던 기억이 더 크게 남아있었다.


요가를 한다고 해서 물구나무서기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요가의 꽃이라고 하는 물구나무서기는 한 번은 넘어야 할 것만 같은 산과 같은 존재다.


스튜디오에 따라 선생님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아무도 강요하는 이는 없었다.


해보고 싶으면 해 보시고,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몸의 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타지 않은지 오래된 자전거타기라든가,  어린 시절 배웠던 악기라든가, 

오래 전이긴하지만 몸이 익힌 기억이 있다. 


반대로, 우리의 몸에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기억도 있다.


물구나무서기를 하다 180도 시원하게 돌아 떨어진 나에게는 

그 전의 즐거웠던 물구나무서기의 기억보다, 

떨어지며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졌던 그 순간의 두려웠던 기억이 크게 남아있는 것이다. 


해냈던 기억을 더듬어 꺼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렇게 실패한 자신의 몸의 기억을 지우는 것 또한 필요하다. 


했던 것도, 하지 못 했던 것도 아닌 것을 하는 지금의 몸.

내 몸과 정확히 대면해보자.


했던 것도 하지 못했던 것도 아닌.

오늘 지금의 내 몸으로 

무언가를 두려워하지도 만만해하지도 않고

그냥 다만 하는.

그런 나의 몸을 느끼는 것

그런 나를 보는 것.


얼마 전에 아주 오랫 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물구나무서기를 해봤다. 


오래전 그날처럼 어쩐지 문득 하고 싶어진 날이었다.


키가 자라서 인지 올라가는 허리가 더 길게 느껴지고, 

체중이 는 탓인지 엉덩이가 무거워진 기분은 잠시 있었지만 

순식간에 

내 머리는 바닥을 향하고,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의 위아래가 바뀌었다. 


내 발 끝은 그때의 어린 소녀의 발 보다 한 뺨 더 먼 곳에 있지만, 

내 머리는 그때와 같은 지면에 있다.


이제 두려웠던 기억 대신 거꾸로 선 나만 있다. 




이후 매일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데,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다리를 위로 올린 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모래시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일상 속에서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 여겨진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물구나무를 서서 가만히 내 호흡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를 지나가는 시간들과,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언제가 앞이고, 언제가 뒤인지,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희미한 그대로를 느끼고 있다보면 오히려 휘청거리던 코어가 편안해지고 단단해진다. 


거꾸로선 내가 사라락사라락 모래를 흘러보내고, 

몸을 다시 세우면 모래시계가 다시 사라락사라락 시간을 흘러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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