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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토네 Oct 25. 2021

물구나무서기 2

물구나무서기가 되었다고 뭐가 달라지지?

오래 전 어린이 키키토네는 너무 심심해서 물구나무를 서 본 적이있다.


몸을 잘 쓰는 편이 전혀 아닌데 물구나무를 설 생각을 하다니.

인간에게는 그런 날이 있다.


아마도 한창 읽던 톰 소여의 모험에서 개구장이 소년 허클베리핀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물구나무를 섰거나 

티브이 애니메이션 속 미래소년 코난의 포비가 갑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뭐 그런 걸 봤기도 했던 것 같다.


- 물구나무서기 1 중에서



물구나무서기가 되었다고 뭐가 달라지지?

물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린이 키키토네는 여전히 심심했고 심심하면 책을 보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동생들과 연극을 했다.


이건 나이를 먹어도 지금까지 키키토네가 계속하고 있는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른이 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유년 시절의 키키토네는 집에서 책이나 읽고 피아노나 치던 아이였다. 

동네에 또래도 없어서, 하굣길도 혼자 버스 타고 집에 오는 아이로, 

그 시절 또래 여자아이라면 다 할 줄 알았던 고무줄놀이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무심히 지나치던 고무줄놀이에 물구나무를 설 줄 안다는 것 하나만으로 참가하게 된다.


앞부분의 여러 가지 리듬과 테크닉이 어울어진 스텝은 다른 능숙한 친구들이 하고, 키키토네는 뒷부분의 키보다 높은 곳에 있는 고무줄을 거꾸로 돌아 발로 걸어내리기만 하면 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두 팔로 땅을 짚고 다리를 차올리면 되는 그 단순한 재주가 드디어 쓰일 곳을 만난 것이다. 

고무줄놀이의 협업화는 집 안에서만 놀던 키키토네가 밖으로 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집에서 노는 키키토네는 밖에서도 노는 키키토네가 된다.


물구나무서기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심심했던 또 다른 어느 날 혼자 물구나무를 서다 180도를 원을 그리며 시원하게 떨어진 이후, 

키키토네는 다시는 물구나무서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 물구나무서기 1 중에서



이미 친구들과는 고무줄놀이보다는 보드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므로. 

물구나무서기는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어른이 된 키키토네에게는

일본에서 만난, 알고 보니 유명한, 요가 선생님이 있다.

이 분의 스튜디오에 가면 늘 물구나무를 서는 시간이 있다.

물론 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포즈를 해도 되고, 그냥 쉬어도 된다. 

아무도 강요는 하지 않지만, 그냥 제풀에 신경이 쓰여 처음 한 두 차례 참석한 이후 클래스에는 참가하고 있지 않다. 키키토네의 스케줄과 잘 맞지 않는 시간표는 핑계임을 키키토네 스스로가 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가끔씩 재밌는 이들을 모아 술자리에 초대해주신다.


요가는 인생 자체라고 생각하시는 분인데, 그 이런저런 이야기가 재밌다.

큰 선생님이라고 여기고 모두 어려워하는 질문을 

물구나무서기가 안 되어서라며 스스로 제자에서 빠진, 가끔씩 놀러 오는 날라리 요기니가, 

어려움없이 해맑게 물어준다고

대담이나 술자리가 끝난 후 선배 요기들이 다행히 좋아해 주신다.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물구나무서기도 되고

스튜디오로 놀러 갈 생각이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좋다. 


물구나무서기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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