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은 어떤 신발을 신고 있나요?
이 전의 별에서는 하이힐을 신고 살았다.
지금 이 별에서는 스니커즈도 있고 헐렁한 슬리퍼도 있고 납작한 플랫슈즈도 있다.
그러나 이 전의 별에서는 하이힐을 주로 신고 살았다.
그 별엔 이쁜 힐이 너무 많았고,
가지고 있는 옷들은 힐을 신었을 때 가장 맵시가 나는 옷들이었으며,
친구들은 모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 별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많고 높은 고층빌딩과 넓고 깊은 지하도로 가득히 사람들의 구두 소리는 새벽부터 밤까지 울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이힐을 신어도,
사람 수 보다 더 많은 하이힐이 매일 만들어지고 있었으므로,
결국 한 번도 사람 발에 신겨지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선택받고 싶은 하이힐들은 조금 불편해도 더 이쁘게, 더 날렵하게, 더 눈에 띄는 모양새로 만들어졌다.
불편하지만 아찔하게 섹시한 킬힐.
우아함과 절제를 겸비한 어느 때에도 적당하지만 참 비싼 하이힐.
적당히 이쁘고, 적당히 불편한 하이힐
적당히 이쁘지도 않고, 적당히 불편하지도 않은 하이힐.
특히나 이 부류는 대체로 한 번 정도 신겨지고는 어떤 연유로 선택되었는지 조차 잊혀진 채 버려지지도 못 하고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어디를 갈지,
누구를 만날지,
얼마만큼 걸을지에 따라 매일 아침 힐을 골랐다.
이쁜 구두를 신고 기분이 좋아 하루가 좋았던 날도 있지만,
때론 내 마음보다 내 발이 빨리 피로를 느끼고, 나를 끌어내릴 때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만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 신발장 안에는 하이힐이 늘어났다.
신발장에 하이힐이 늘어날수록. 내 발은 점점 지면과 멀어졌다.
높은 힐 위에서 잘 걸을 수 있는 스킬은 나날이 늘어났지만,
(심지어 뛸 수도 있었다)
하이힐 안에 이쁘게 모아진 내 발가락은 지면을 꾹꾹 밟으며 움직일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태초에 신이 골고루 다 쓰고 움직이라고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뼈로 세심히 디자인하셨음이 분명했던 내 발은 어느새 이쁜 힐 속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그 하이힐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당연하다 느꼈던 그 하이힐 위가 실은 지층의 그라운드 레벨이 아님을 안 것이다.
물론 잘 빠진 하이힐은 여전히 이쁘다.
딱딱한 세상과 이쁜 힐과 부딪치며 나를 지키던 못생긴 굳은 살도 애틋하다.
그러나 매끈한 하이힐보다 그 굳은살이 사라진 말랑한 내 발이 이쁘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더 개구리처럼 벌어지고 있는 내 발가락도 귀엽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필요할 때 하이힐을 신고,
석양이 질 때면 내려와 모래사장을 맨발로 밟는 것을 즐긴다.
남은 피로는 맛사지사에게 떠넘기듯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꽉 깍지 끼어 잡아주고 보듬어 준다.
하이힐을 신고 딱딱한 길을 걸으며 아팠던 발도
고급 카펫 위를 걸으며 보상받았던 애잔한 마음도
강변을 달릴 때 쉬이 피로해지기 쉬운 나의 평평발을 최대한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니커즈도
모래사장을 걸을 때 느껴지는 맨발의 까슬한 촉감도 다 사랑하게 되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더하는 마음.
팁 하나.
들숨보다 날숨을 쉬는 시간을 길게.
머리에서 저 발 끝 작은 새끼발가락에게까지도 의식을 보내고,
심장을 뛰게 하여 피를 돌게 한다.
그리하여 발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고양이와 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