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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토네 Nov 30. 2021

발가락 펴기 2

지금 당신은 어떤 신발을 신고 있나요?

이 전의 별에서는 하이힐을 신고 살았다.

지금 이 별에서는 스니커즈도 있고 헐렁한 슬리퍼도 있고 납작한 플랫슈즈도 있다.

그러나 이 전의 별에서는 하이힐을 주로 신고 살았다.


그 별엔 이쁜 힐이 너무 많았고,

가지고 있는 옷들은 힐을 신었을 때 가장 맵시가 나는 옷들이었으며,

친구들은 모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 별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많고 높은 고층빌딩과 넓고 깊은 지하도로 가득히 사람들의 구두 소리는 새벽부터 밤까지 울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이힐을 신어도,

사람 수 보다 더 많은 하이힐이 매일 만들어지고 있었으므로,  

결국 한 번도 사람 발에 신겨지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선택받고 싶은 하이힐들은 조금 불편해도 더 이쁘게, 더 날렵하게, 더 눈에 띄는 모양새로 만들어졌다.


불편하지만 아찔하게 섹시한 킬힐.

우아함과 절제를 겸비한 어느 때에도 적당하지만 참 비싼 하이힐.

적당히 이쁘고, 적당히 불편한 하이힐

적당히 이쁘지도 않고, 적당히 불편하지도 않은 하이힐.

특히나  부류는 대체로   정도 신겨지고는 어떤 연유로 선택되었는지 조차 잊혀진  버려지지도  하고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어디를 갈지,

누구를 만날지,

얼마만큼 걸을지에 따라 매일 아침 힐을 골랐다.


이쁜 구두를 신고 기분이 좋아 하루가 좋았던 날도 있지만,

때론 내 마음보다 내 발이 빨리 피로를 느끼고, 나를 끌어내릴 때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만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 신발장 안에는 하이힐이 늘어났다.

신발장에 하이힐이 늘어날수록. 내 발은 점점 지면과 멀어졌다.

높은 힐 위에서 잘 걸을 수 있는  스킬은 나날이 늘어났지만,

(심지어 뛸 수도 있었다)

하이힐 안에 이쁘게 모아진 내 발가락은 지면을 꾹꾹 밟으며 움직일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태초에 신이 골고루 다 쓰고 움직이라고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뼈로 세심히 디자인하셨음이 분명했던 내 발은 어느새 이쁜 힐 속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그 하이힐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당연하다 느꼈던 그 하이힐 위가 실은 지층의 그라운드 레벨이 아님을 안 것이다.




물론 잘 빠진 하이힐은 여전히 이쁘다.

딱딱한 세상과 이쁜 힐과 부딪치며 나를 지키던 못생긴 굳은 살도 애틋하다.

그러나 매끈한 하이힐보다 그 굳은살이 사라진 말랑한 내 발이 이쁘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더 개구리처럼 벌어지고 있는 내 발가락도 귀엽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필요할 때 하이힐을 신고,

석양이 질 때면 내려와 모래사장을 맨발로 밟는 것을 즐긴다.


남은 피로는 맛사지사에게 떠넘기듯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꽉 깍지 끼어 잡아주고 보듬어 준다.


하이힐을 신고 딱딱한 길을 걸으며 아팠던 발도

고급 카펫 위를 걸으며 보상받았던 애잔한 마음도

강변을 달릴 때 쉬이 피로해지기 쉬운 나의 평평발을 최대한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니커즈도

모래사장을 걸을 때 느껴지는 맨발의 까슬한 촉감도 다 사랑하게 되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더하는 마음.




팁 하나.

들숨보다 날숨을 쉬는 시간을 길게.

머리에서 저 발 끝 작은 새끼발가락에게까지도 의식을 보내고,

심장을 뛰게 하여 피를 돌게 한다.


그리하여 발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고양이와 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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