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리 May 27. 2024

배영

5일 차

 여자들의 숙명인 대자연의 날이 찾아왔기 때문에 일주일 만에 수영강습에 나갈 수 있었다. 한창 신나서 배우다가 흐름이 끊겨서 아쉬웠고 너무 가고 싶은데 못 가니 심술이 났다. 남편은 컨디션이 안 좋은 나를 걱정해 주었다. 나는 내가 수영을 못 가서 남편이 혼자서는 쑥스럽고 그래서 자기도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좋아하는 수영을 일주일 내내 못 가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나를 보며 안쓰러워하며 하루도 안 빠지고 수영가방을 챙겨서 수영을 하러 나가는 남편의 발걸음이 신나 보여서 괜스레 얄미러웠다. 우리가 수영을 하는 시간은 오후 8시 수업이어서 운동 끝나고 씻고 집에 오면 밤 9시가 조금 넘는다. 어떤 날에는 수영 끝나고 집에 들어온 남편이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는 내 귀에다 "나 오늘 배영 했어~"라고 속삭일 때는 부러워서 천불이 났다. "뭐??? 무슨 진도를 그리 빨리 나갔어??? 또 누구누구 배영 했어요?????" 하며 같이 들어온 동기들의 진도를 체크하며 수영이 가능해지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리하여 일주일이 흐르고 드디어 오늘 수영을 하러 갔다. 지난번에 배운 자유형을 여러 번 연습하고 나서 10분 정도 남겨두고 나도 배영을 배웠다. 사실 배영은 예전에도 살짝 배운 적이 있었고 평소에도 힘 빼고 누우면 그냥 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역시나 나는 물에 잘 떴다.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면 동작을 잘하고 있다는 징조인데 오늘은 자유형도 배영도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기분이 좋았다. 남편은 수영 배우길 잘했다며 수영 가는 시간을 즐거워했었는데 배영을 배우고 난 후부터 고전하고 있었다. 누워서 팔을 들기만 하면 가라앉는다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선생님께서 "회원님 이런 식으로 하시면 더 이상 진도 나가기가 어려워요. 몸에 힘을 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는 남편이 물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힘을 잔뜩 주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물에 내 몸을 맡겨야 된다고~ 나는 일주일 만에 나왔지만 가볍게 남편의 진도를 뛰어넘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은 오늘 입으로 코로 물을 잔뜩 먹었다고 했다. 팔만 들면 얼굴이 가라앉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어렵다고 했다. 나는 너무 쉽게 돼서 그의 어려움을 공감하기 어려웠고 내가 잘 뜨는 비법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음... 난 그냥 되던데???

 집에 와서 남편은 배영에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았다. 나는 남편의 이런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안 되는지 원인을 알아보고 개선점을 찾아보고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다. 영상을 보는 남편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이러다 우리 집에서 박태환 선수 나오겠어.

 남편이랑 수영을 같이 해서 대화도 더 풍성해지고 공감대도 넓어지고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영 4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