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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l 20. 2024

매일 1000자씩 쓰는 남자

 나는 매일 글을 쓴다.

그것도 1000자 분량으로. 쓴다는 행위가 마치 하루에 매무새를 잡아주는 느낌이다. 세상과 마찰에 잔뜩 헝클어진 나. 어떻게든 원래 위치로 돌려야 했다. 잠이나 휴식보다 글이 먼저다. 세상 포근하고 사적인 글, 나 말고는 쓸 수 없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있노라면 비뚤어진 생각은 본디 자리로 돌아가고 쪼그라든 마음은 여유 있는 살가움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쓰지 않을 방도가 없다. 안 쓰는 날에는 손이 간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곳저곳 삐죽이는 생각 때문에 잠까지 설칠 정도. 금단 현상이 있다면 글도 마찬가지겠지. '쓴다'라는 동사가 이렇게나 중독성 강했던가. 글에 대한 애정 때문은 아니다. 쓰다, 짓다, 끄적이다와 같은 행위 자체에 오는 위로가 있다. 1000자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정적과 머무름, 그 사이에서 만나는 여운이 좋은 것이다.


쓰기란 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산다는 행위 자체에 오염된 촉수를 내리고 자신의 마음 위에 손 얻기가 우선이다. 다음은 분주하게 기다리기. 오늘을 복기하며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맡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글로 끄적인다. 희한했다. 칠흑 같던 암흑도 달빛과 시간 앞에 누그러지듯, 글도 마찬가지다. 당장에 쓸 수 없는 생각도 활자에 비비다 보면 서서히 글이 되고 마니까.


생각이 글로 치환되는 이 순간이 좋다. 찰나에 깃든 확신은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덩달아 나도 즐겁다. 무아지경에 빠져 건반을 누르는 피아니스트가 이런 기분일까. 글로 무엇도 쓸 수 있고 무엇도 될 수 있음에 마음이 개운하다. 체내 독소가 빠지듯 마음속 까칠함도 덩달아 순해진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어느덧 안정을 찾는다. 시간이 멈춘듯한 순간을 글로 담아본다. 손가락 관절 움직임과 키보드 타자음만 존재하는 이곳. 정적인 공간 같아도, 머릿속은 온통 아우성이다. 외침과 침묵, 절제와 오지랖 사이에 자신이라는 존재에 을 긋는다.


정신을 차렸다. 어느덧 불어난 글밥을 본다. 대략 A4용지 1장 정도의 분량이다. 용지 바닥에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보니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온듯하다. 글자수도 대략 1000자 내외. 무사히 하루를 넘겼음에 안도한다.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쓸지 궁금하다.


나는 글을 쓴다. 1000자 내외로 매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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