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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Jul 08. 2024
세상 곳곳을 사랑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라면 더욱더.
성경책 어딘가 박혀 있을 법한 구절 같다. 보고 말한 것은 아닌데 말하고 보니 그렇다. 이런 문장을 다른 곳에서 본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 마음 나도 안다며 밤새도록 떠들 수 있을 것인데.
어디를 가든 눈길 가는 곳이 있다. 정확하게는 그런 곳을 보러 가는 거겠지. 예전에는 나도 그랬다. 화려하고 이쁘고 웅장한 것들에 티를 냈다. 타인이 좋다면 나도 좋아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별로’라고 말하고 싶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 깊은 곳에 맴도는 교양 없는 소리겠거니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아무 생각해도 대놓고 화려한 것보다 소소한 정겨움이 나는 더 좋다.
지금은 무심코 피어나는 혼잣말을 억누르지 않는다. 되려 찾아다닌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다수결로 만든 잣대에 저항하고 싶다. 많은 이에게 좋은 것이지 모두에게 좋은 건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간 몸속에 쌓아둔 독소가 많았던 걸까? 스스로의 호오에 귀 기울이는 일이 쉽지 않다. 오래도록 나를 강요했던 힘인 만큼 거스르는데도 시간이 걸리는가 보다.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그곳에만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지 찾아본다. 때로는 집 근처 흐르는 작은 천, 한적한 대학로 주변, 원룸촌 근처, 이름 모를 산 중턱에 위치한 한옥까지, 자기 여기 있다며 표현하지 못하는 곳에 매료되는 경우가 있다. 길 가다 말문이 막혀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본다. 몇 번이고 돌아보고 가고를 반복해야 겨우 발길이 떨어진다.
‘저기 저곳에 가면 오솔길이 있고, 나무 그늘이 길게 늘어져 있을 거야, 인적은 드물겠지, 경치가 어떨까? 고즈넉한 석양이 끝내줄 거야' 이런 호기심이 단전 깊은 곳에서 끝도 없이 샘솟는다. 지도앱을 켜고 그곳이 어딘지 찾아본다. 좀 전까지 칭찬 일색인 그곳은 이름도 없는 상태. 그야말로 아무 곳도 아닌 곳이다. 평점은 둘째치고 도착지로 설정할 수도 없다.
어렸을 때 어르신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동네 정자 밑에서 부채나 흔들며 경치 보는 게 제일 좋다고. 아무리 웃기고 재미있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봐도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가 없다고.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 산과 들, 자연이 마냥 좋아지는 게 아니라, 주변 어디에도 좋은 것은 얼마든지 있음을 알아가는 과정 같다. 타인의 생각을 베제 하는 것이 옳다가 아니다. 나 다움, 나스러움, 내가 좋아하는 곳이 먼저라고 말하고 싶다.
많이 보아도 지겹지 않고 또 보아도 계속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자기 목소리를 따라가는 일이겠지. 오늘도 어스름을 뒤로한 채 내가 좋아하는 곳을 간다. 아파트 안 야트막한 담벼락을 품은 작은 정원. 가시 덩굴로 둘러싸여 있고 진한 풀내음 때문에 더 습하게 느끼는 곳이지만 나는 거기가 좋다. 회색빛이 도는 이곳 아파트에서는 가장 푸른 곳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