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는가?
나도 모르게 관계를 파괴하는 방어아이템이 있다는 사실을!
중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 루쉰이 쓴 < 아Q장전 >에는 정신승리의 대가 아Q씨가 등장한다. 얼간이에 떠돌이 날품팔이꾼인 변발의 아Q는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얻어맞아도 한마디 저항도 없이 이러저러한 이유를 늘어놓으며 자기가 이겼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는 강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전형적인 못난 사람이다.
“살다 보면 잡혀 들어갈 수도 있고 또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순간마다 별별 희한한 이유로 합리화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책을 읽으며 그의 어처구니없는 정신승리를 비웃다가 문득 나에게도 아Q와 같은 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깨달음에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인간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발동시킨다. 아 Q의 정신승리 역시 상황을 그럴듯하게 꾸미고 사실과 다르게 인식하여 자아가 상처받지 않도록 정당화시키는 ‘합리화라는 방어기제의 일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쩌면 아 Q는 흙수저로 태어나 겪게 된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든 무시와 모욕을 무의식중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서 스스로를 해방 시켜 준 것은 아닐까?
방어기제의 종류는 다양한다.
부정은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일단 그 상황을 거부하여 심리적인 상처를 줄여주고, 억압은 불쾌한 경험이나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욕구, 반사회적인 충동 등을 무의식 속으로 몰아넣거나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다. 투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 어려움에 대처하는데 자신의 욕구를 깨닫는 대신 남 탓을 하거나 진실을 왜곡시켜 문제를 더욱 커지게 하기도 한다. 방어기제는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자아가 붕괴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갈등과 갈등의 주체인 나 자신을 바로 직시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거나 묻어두게 한다.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정신승리로 상처받지 않는 데만 급급했던 아Q는 한 번도 자기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 보지 않는다. 삶에 대한 주도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끝내 비참하게 죽게 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잘못된 방어기제 가시를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방어기제가 다 자기 주도적인 삶과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조지 베일런트가 쓴 <행복의 조건>에도 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졌는지가 행복의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 성인 발달연구소에서 724명의 하버드대학생, 여성 천재들, 일반인들을 60년간 추적 관찰하며 연구한 결과를 담은 것이다. 조지 베일런트 박사가 제시한 성숙한 방어기제 4가지는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타인을 돕는 이타주의, 부정적 정서나 성향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전환해 표출하는 승화, 끔찍한 일은 잊어버리고 밝은 면만 보려고 하는 억제, 사태가 심각해도 지나치게 심각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희망적인 시각으로 보려 하는 유머이다.
브래들리 쿠퍼 주연의 < 더 셰프 > 라는 영화에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마약, 사채 때문에 얼룩진 과거로 인해 요리계를 떠난 아담 존스가 오랜 방황을 접고 런던으로 돌아와 미슐랭 별 세 개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요리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인지 영화 초반부터 보여주는 그의 행동들을 불안하고 괴팍하다. 목표를 위해 실력이 좋은 팀원들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만, 구성원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다. 유일한 소통방식은 소리 지르기. 화내기. 협박하기. 그는 돌아왔지만, 자신을 붕괴시키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부정적인 방어기제들로 인해 삶의 변화는 찾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미슐랭 별 세 개의 꿈을 잃어버리고 바닥을 쳤다고 느끼는 순간 그를 단단히 감싸고 있던 가시나무에 약간의 틈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하여 강박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함부로 대하던 태도를 바꿔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매일 최선을 다해 요리하는 셰프가 된다.
물론 사람의 성격이 고난을 겪었다고 해서 아담처럼 하루아침에 변화되기란 어렵다. 오히려 인격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아주 조금씩이라도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나는 어떤 부정적인 방어기제로 사람을 쳐내고 있나 살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