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캠퍼스 커플과 짧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나는 스스로 고립시켰다. 폐쇄된 의대 사회에서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안부를 묻는 지인들에게 일일이 ‘우리가 이러저러해서 헤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할 용기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시 모교에서 인턴 수련 중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구를 제외하고는 이혼 사실을 비밀로 했다. 누가 볼까 꽁꽁 싸맨 수치심은 자존감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슬프고 외로웠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절시켰다.
아주 많은 사람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무인도에 살고 있었다.
나의 비밀은 전문의를 따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사람들에게 거짓말 해야 하는 것이 싫어서 첫 봉직도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시작하였다. 수치심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자존감의 싹을 무자비하게 말려버렸다. 나는 숨 쉬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에너지가 회복되자 어릴 때부터 지속했던 자존감에 대한 탐구를 다시 시작했다.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건강한 습관을 지니려고 노력하고 사이버대학교 심리학 과정에도 등록했다.
그때 나에게 전환점이 된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 수치심 권하는 사회 >에서 브레네 브라운은 완벽을 강요하는 문화가 수치심을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어딘가에 속하고, 사랑받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뿐이다. 하지만 가족, 배우자, 친구, 나 자신, 동료, 지인, SNS를 보는 불특정 다수 등 수치심 거미줄에 있는 사람들의 기대를 합한 모습이 우리가 되고 싶은 ‘완벽한 모습’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기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쏟아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귀여워야 하고 청소년기에는 똑똑한 모범생이 되거나 특출한 재능을 뽐내는 영재가 되어야 한다. 성인이 되면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야 하며 건강한 아이를 낳아 기르며 조화로운 가정을 꾸려야 한다. 너무 가난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탐욕스러워도 안 된다. 호감 가는 외모에 건강한 몸을 갖고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워킹 맘이라면 직장에서는 유능해야 하고 집에서는 자녀도 잘 돌보는 똑소리 나는 원더우먼이어야 한다. 물론 남편과의 사이도 좋아야 한다. 사회가 제시하는 표준에 어긋나면 사람들은 자신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안감은 비밀을 만들고 수치심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바로 그러했다.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비밀을 만들고 스스로 만든 수치심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것이다.
브레네 박사는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수치심을 극복하고 자신의 부족함까지도 사랑할 용기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자기 가치감을 바탕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부족함까지도 사랑할 용기’를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브레네 박사는 수치스러운 비밀까지도 이해해 줄 ‘좋은’ 친구에게 솔직하게 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사실 나도 이혼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안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날 정도로 부끄러웠었는데 나를 이해해 주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나를 보여주기 시작하고 나서야 치유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아들러가 말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보여줄 수 있는 용기. 놀랍게도 타인과의 진솔하고 건강한 관계는 미움받기로 한순간 싹트기 시작한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회에서 나답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나답게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