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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whalemoon Dec 10. 2020

'암'일 수도 있단다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외쳤는데

"암이나 자가면역질환 일 수 있겠네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지만, 의사는 아주 친절하게도 메모장에 적어가며 나에게 설명을 해준다.


몇 주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식은땀이 흐르고 밥은 많이 먹고 있으나 체중이 감소했다. 몸에 열이 많아지고 땀 자체도 많아져서 남들 다 추워하는 퇴근길에 마스크 안의 인중은 땀범벅이었다. 갑자기 이유 없이 빨리 뛰는 심장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안 그래도 심하던 불면증은 더욱더 심해져간다. 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다가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주말 내내 잠을 자도 피로가 사라지지를 않았다.


주변에서 '갑상샘 항진증'이 아니냐고 물었다. 2주에 한 번 만나는 의사 선생님도 '갑상샘 항진증'이 의심되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직장인의 평일은 한가롭게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기 어렵다. 토요일에 병원에 가보려 했지만, 엄청난 피로에 못 이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시간은 이미 오후 4시를 넘어서있었다.


운 좋게 회사 근처에서 9시부터 하는 병원을 찾았고, 출근 전 30분 시간을 내어 병원에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증상을 듣고는 역시 '갑상샘 항진증'을 의심했지만 그 외에 다른 곳에 문제가 있거나 빈혈이거나 암 같은 종류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별생각 없었다. 그렇구나.


인터넷에서 찾아본 '갑상샘 항진증'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고 했고 술, 담배가 좋지 않다고 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술, 담배는 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단 중에 하나고, 나는 우스갯소리로 정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술, 담배를 끊는 것보다 목숨을 끊는 게 빠를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기보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을 잃어가는 게 더 힘들었을 뿐이다.


일주일 뒤, 결과가 나왔는데 '갑상샘 항진증'은 아니라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추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의사를 뒤로한 채 회사로 출근했다. 자꾸 '암'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다른 병원들을 찾아봤다. 큰 종합병원들을 찾아봤지만, 3차 병원이라 소견서가 있어야 한다거나 빨라도 2월은 되어야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그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다음 날, 그러니까 오늘. 병원으로 향했다. 전화로 예약할 당시만 하더라도 빈혈검사 정도 받으면 될 거라더니, 의사는 너무나도 친절하게 메모장에 적어 내려가며 나에게 설명을 한다. 나에게 '암'이라는 단어는 최근 지옥과도 같은 단어였다. 약 30년 전 외할머니가 유방암 수술을 했고 그 당시 나는 갓 태어났을 때라 기억이 없지만 한쪽 가슴이 없는 할머니를 보며 살아왔다. 3년 전쯤, 엄마는 뼈에 생기는 거대 세포종 판정을 받았고 뼈를 긁어내고 시멘트를 채우는 수술을 한 후에도 폐로 전이되지 않았나 꾸준한 검사를 받고 있다. 새아빠는 올해 담도암 판정을 받아 수술을 마친 뒤, 항암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근데 그런 나에게 '암'이라는 단어를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마치 분식집에서 김밥 주문하듯 얘기하는 의사를 보며 알 수 없는 두통을 느꼈다. 어쨌든 위내시경과 흉부 X-Ray, 자기 면역질환 등에 대한 피검사와 복부초음파를 진행하자고 했다. 머리가 지끈지끈했고, 회사에 얘기를 한 뒤 검사를 진행했다.


복부초음파를 찍을 때 유난히 셔터를 많이 누르는 느낌이었다. 봐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 나는 그냥 불안감에 계속 휩싸여갔다. 평소에 뇌에 관심이 많아서 뇌에 대한 건 자주 봤지만,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평범한 나는 왜 그렇게 사진을 찍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모든 검사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내시경을 한 의사가 나를 봐야 한다며 대기하라고 했다.


내 위내시경 사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였다. 식도는 죄다 갈라져 피가 있었고 잦은 구역질로 인한 상처라고 구역질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내가 구역질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위궤양을 잔뜩 앓은 흔적이 남아있고 십이지장에서 조직을 떼어내서 조직검사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저녁까지 금식하라는 말과 함께 포로 된 약을 하나 줬다. 금식하라면서 약은 처방받자마자 먹으라고 했다.


다음 주 결과 나오는 날 예약을 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단은 사실대로 말했다. 만약 다음 주 결과에서 정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거나,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한다면 엄마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내 옆에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사실 다음 주 결과를 받아보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며 다행이다, 괜한 걱정을 했구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불안해할 수밖에 없겠지.


애써 불안함을 감추려고 괜찮은 척하고는 있지만 썩 괜찮지는 않다. 올해는 정말 유난히 힘든 해였는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원망스럽지만 올해보다 더 끔찍한 날은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과가 좋게 나와도, 소견서를 받아 조금 더 검사를 해볼 심상이다. 나는 아직 조금 더 살고 싶으니까.


언제까지 나는 괜찮은 척을 해야 할까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척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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