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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Dec 28. 2020

오지랖이 넓어서 너무 힘들다

내 인생에나 참견해라

난 사실 슈퍼 오지라퍼다.

오지랖이 아주 태평양급이다.


남한테 참견하고 간섭하기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누군가 나에게 고민을 얘기하거나 아니면 대화중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꼭 도와줘야 직성이 풀린다.


내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은 큰 원안에 아주 작은 원이 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는 한두 명에 불과하지만 가볍게 이어진 지인의 폭은 굉장히 넓다. 다들 문제가 있을 때는 나를 찾는다.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그 이야기들이 내 지식을 더 방대하게 만들어주고 있음이 너무나 분명해서 나는 오지라퍼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보거나 영상을 보고 그 정보들을 받아들이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토요일 과음을 하고 새벽 2시 넘어서 겨우 잠들어서는 아침 7시 반부터 그대로 월요일 새벽 6시 반까지 웹툰과 웹소설을 읽었다. 30 분자고 출근해서 일을 하면서 얻은 정보들을 또 몰아넣고 퇴근길에 또 소설을 읽고 집에 와서 블로그에 책 리뷰와 상품 리뷰를 작성하고는 그 정보들을 쏟아낼 곳이 없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오지라퍼다.


나한테 고민을 얘기하는 종류는 상당히 다양한데 가벼운 연애상담이나 친구, 가족 간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법적인 조언이나 세금 관련 문제, 자동차, 책, 영화 정도가 제일 많다. 그만큼 내가 아는 정보가 많으니 나를 통해서 정보를 얻어가려는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이야기도 있지만 내가 조금 긴가민가한 고민을 이야기할 때면 나는 또 새로운 정보를 찾아서 습득할 수 있음에 즐겁다. 그래서 나는 오지라퍼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내게도 힘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그 지식들이 단순히 글로 흡수가 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글들이 영상화되어서 머릿속에 들어오는 데 글을 읽기 시작하면 그걸 멈추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가끔 패닉 상태에 빠지곤 한다. 가령 지금 읽고 있는 웹소설의 경우 2년 정도 연재가 된 550화 정도 되는 분량의 판타지+무협 소설인 <전지작 독자 시점>이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 사람으로 영상화해서 장면들을 영화 보듯 익혀가는 데 이번 소설은 웹툰으로 시작해서 소설로 넘어가다 보니 이미 2D 캐릭터로 형상화된 그 인물들이 사람으로 실체화(?)가 되질 않는다. 그래서 이미지가 자꾸 끊어져서 물 흐르듯 인지하는 게 힘들고 감정이입을 너무해서 밤새 읽는 내내 심장이 벅차서 터질 것 같았다. 어제 하루에만 230화 정도를 읽었는데 아직도 캐릭터들이 머리에서 뒤죽박죽거린다. 사실 글도 빠르게 읽고 이렇게 영상화해서 본다는 건 굉장히 좋은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가끔 아주 끔찍한 장면들이 눈 앞에서 실체화되는 느낌을 받다 보니 한참을 그 글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잡아먹히기도 한다.


두 번째, 내게 도움이 되고자 남들을 돕기 시작했는데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

뭔가 정보를 정리해서 알려주고 그 정보를 흡수하고, 그 후에 정상적으로 해결되는지까지 확인하는 부분에서 내 감정들을 전부 쏟아붓는다. 마치 내 일을 해결하 듯 열과 성을 다해 그들을 돕느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를 학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하는데 지쳐버린 나를 돌보지 않는다. 남들의 일에는 발 벗고 나서서 해결을 해주고 나의 일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건지 며칠 동안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지금도 머릿속이 너무 뒤죽박죽 한 혼돈의 상태인데 결론은 난 내가 선택해서 오지라퍼가 되었지만, 나 자신에게는 하나도 간섭하지 않는 이중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친한 친구는 가끔 얘기한다.

내 일도 남의 일처럼 좀 해보라고.

본인 관련된 일은 그렇게 귀찮아하면서, 왜 남의 일은 그렇게 챙기느냐고.

그렇게 남들을 챙기고 나서 결론적으론 몸도 마음도 다 상하면서 왜 그러느냐고.


나는 스스로 선택한 오지라퍼가 되었지만, 오지라퍼이고 싶지 않다. 오지라퍼가 즐겁지만 나만을 위한 오지라퍼이고 싶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난 죽기 전까지 오지라퍼일 것 같다. 그래서 슬픈데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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