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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Apr 23. 2024

엄마의 부재

엄마가 2박 3일 이모들과 여행을 갔다.

혼자 살다가 집에 들어와 엄마의 부재를 느껴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학창 시절에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늘 혼자 집에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 큰 공간을 홀로 채웠었는지 가늠이 안된다.


어릴 땐 감정이라는 걸 잘 모르니, 외로움을 못 느꼈다고 생각한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아직도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릴 때이다.

애기 목소리처럼 앵앵 거리며 부모님에게 치댈 때, 나이만 먹었을 뿐 아직 부모의 사랑이 고프구나 느낀다.

어릴 때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지금이라도 많이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고개를 든다.


물론 부모님이 평생도록 내 얼굴만 쳐다보며 집에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집을 나가 골프도 치고 근교에 드라이브도 다녀오고 하면, 나만 좋은 곳을 다니는 건 아니구나 하고 마음이 놓인다.

어쩔 때는 부모님이 알아서 여행을 다니시니, 내가 해드릴 필요는 없겠구나 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엄마의 부재를 느끼면서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나는 홀로 자립할 수 있을까 하고.

7년을 혼자 잘 살아온 나였지만, 고작 며칠 엄마 곁에 있었다고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는 꼴이라니.


엄마가 없는 집안은 고요하다.

툭하면 성질내고 화를 내는 엄마이지만, 그 잔소리가 이 집을 가득 메울 때 사람 사는 느낌이 들었는데 오늘은 창밖에서 가벼운 바람만이 스친다.


매번 끼니를 챙겨주던 엄마가 없으니 바삐 움직이는 건 나여야만 했다.

전자레인지에서 밥을 데우고, 미리 준비된 제육볶음을 인덕션에 올린다.

이때 옆에서 쳐다보고 있을 아지를 위한 간식을 준비하는 것이 빠져서는 안 된다.

조리 기계들이 바삐 움직이는 동안, 나는 수저를 세팅하고 물을 따른다.


혼자 먹는 식사에는 역시 유튜브가 최고다.

적적한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빵빵하게 소리를 틀어놓고 한 두 입 먹다 보면 빈 그릇을 마주할 수 있다.

식사 후에 설거지까지 마치면 벌써 1시간이 흘러있다.


평소에는 엄마와 함께 걷던 산책길을 오늘은 아지와 단 둘이 걸었다.

왠지 종종걸음으로 '아지를 잡으러 갑니다~'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메가 커피에 들러 커피를 사 마실 때도 '엄마는 안 먹어'라며 손사래 치는 환영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살던 원룸은 공간이 작아서 나 혼자만 있어도 아득하니 좋았는데, 부모님 댁은 정신없이 놓여 있는 가구들이 있는데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아지 산책도 시켰겠다 너는 잠이나 자라 하며 집을 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몇 시간 뒤 집에 온 아빠 또한 외로움을 느꼈을 터, 아빠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아지가 분명 마중을 나갔겠지만 '오셨어요?!' 하는 나와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기분이 오묘했을 테다.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내 말에 빨리 집에 오라는 아빠.

괜히 신경 쓰여 목표한 시각보다 앞당겨 집으로 달려왔다.


고요한 집안이 어색한 건 나뿐이었을까.

쓸데없는 말을 잔뜩 늘어놓으며 아빠 앞에서 아지와 함께 재롱을 피웠다.

평소 같았으면 시끄럽다고 했을 아빠지만 오늘은 그 말마저도 쏙- 들어간다.


매일 집을 늦게 들어와 부모님의 주름살을 늘렸던 언니도 웬일로 일찍 집에 들어왔다.

언니도 아빠의 마음을 읽었던 건지 아빠에게 한마디 던진다.

"아빠, 엄마 없어서 심심하겠네?"

아빠 역시 피하지 않고 되받아친다. "응"

짧고 단호한 한마디에 우리 가족 모두는 엄마의 부재를 느낀 듯하다.


<응답하라 1988>에서 보면, 정봉이 엄마가 집을 비우는 날이 있었다.

정봉이 엄마는 가족들에게 밥 하는 법, 연탄 피우는 법, 변기 뚫는 법 등을 알려주며, 자기 없이도 잘 살고 있으라고 단단히 이른다.

가족들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기 싫은 모양이었는지, 엄마가 되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알려준 대로 말끔히 세팅을 해둔다.

그걸 본 엄마는 우울증을 앓는 듯 보였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없어도 가족이 잘 살 거 같아서'였다.

즉, 자신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는 가족 때문에 슬펐던 것이다.


이 타이밍에서 나도 궁금하다.

우리 엄마는 자신의 부재를 느끼는 가족들이 좋을지,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알아서 잘 살았으면 좋겠는지.

분명 엄마는 쿨한 척 '나 신경 쓰지 마!'라고 할 테지만 거짓말이겠지.


+ 이 글을 보고 있을 엄마에게.

엄마, 이모들이랑 같이 있는데 전화하면 신경 쓰일 까봐 연락 안 한다.

도착 잘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고 섭섭해하지 않길 바라.

다치지 말고 재밌게 다녀오시고, 맛있는 밥 잘 챙겨 드시고, 가족 걱정은 하지 마셔.

그리고 다시 집에 와서 엄마의 부재를 가득 채워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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