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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Feb 19. 2024

가족과 외식할 때 강아지는 어떡해요?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어디를 갈 때, 꼭 나오는 필수질문이 있다.

'그럼 아지는 어떡해?'

아지를 집에 두고 갈 것인지, 데리고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늘 직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냥 집에 두고 다녀오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가볍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다.

나가서 계속 아지 얘기를 하고 아지가 함께 왔으면 좋았겠다라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지가 기다리니 빨리 집에 가자고 서두른다.

막상 집에 가면, 아지는 잠에 취해 우리를 쳐다도 안 보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지가 우리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1. 우리 가족이 단체로 밖에 나갈 채비를 하면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2. 현관문까지 쫓아 나온다.

3. 현관문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으로 쳐다본다.

4. 결국 같이 가자고 하면 신난 발걸음으로 뛰쳐나와 웃음을 짓는다.


매번 똑같이 짜인 이 레퍼토리를 다 알면서도 아지의 기다림을 무시할 수 있다면,

그건 가족이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가족은 외식을 가면서도 늘 한켠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놓은 듯하다.


집에 돌아오면 현관문까지 달려 나와 꼬리를 치며 반기는 아지,

한 명씩 돌아가며 무슨 음식을 먹고 왔나 확인하는 아지를 보면서

함께 이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특히 산책도 안 시키고 우리끼리만 나간 경우에는 그 감정이 더해진다.


지금 내가 말하는 건 단순히 강아지와 가족의 모습이지만,

사실 대상을 가족 구성원 중 누구를 대입해도 모두 공감할 내용이 아니던가?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면 우리 부모님과 오고 싶다는 생각을 꼭 한다.

나뿐만이 아니라고 느낀 건, 엄마가 타인과 식사할 때 들었던 생각을 공유할 때 알았다.

'우리 가족이랑 다음에 꼭 같이 와서 먹어야겠다.'

'우리 딸들이 이거 참 좋아할 텐데.'라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를 데려갈 때 꼭 얘기한다.

'엄마가 저번에 여기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었어!

너네도 먹으면 분명 좋아할 거야!'


우리 언니는 여행을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뽈뽈 돌아다니는 편이다.

하지만 혼자 쏙 여행 가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많이 없다.

꼭 한 손에는 짐을, 한 손에는 음식을 들고 집에 들어온다.

음식을 식탁 위에 툭- 얹어놓고는 '이거 유명한 맛집에서 사 온 거니까, 내 거 조금만 남겨놓고 먹어.' 하고선 쿨하게 방으로 들어간다.


사실 안 쿨하다. 나중에 꼭  생색을 내니까.

‘야! 그거 어땠어? 맛있었지!',

'엄마! 다음에 가면 또 사 올까?',

'아빠 저거 엄청 비싼 거야! 나는 먹어서 또 안 사도 상관없었는데 내가 가족 주려고 사 온 거라니까?'

한명씩 돌아가면서 한줄평 후기를 남기도록 한다.


생색내도 된다. 돈 쓴 사람이 생색내지 그럼 누가 내나.

우리 가족은 다 안다.

우리 가족의 리액션에 따라 그다음 여행지의 음식 배달 여부가 결정된다는 걸.

하지만 난 절대 열심히 호응하지 않는다.

그야 언니가 나 때문에 삐지는 게 너무 재밌으니까.

이게 바로 자매로 태어난 재미 아니겠나.



아지를 함께 데리고 외식 갈 때의 일이다.

애견 동반이 되는 식당들도 많이 생겼다지만,

아직은 반려동물이 허용되지 않는 곳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아지를 함께 데리고 나가도 아지를 차 안에 두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지를 차에 두고 갈 때는 반드시 차의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나가는데,

우리 가족은 아지와 함께 밖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편안해져야 할 마음을 기어코 씻지 못한다.

그래서 아지를 차 안에 두고 갈 때, 차 안에 아지가 먹을만한 간식이나 식사를 두고 간다.

그런데 먹을 거에 환장하는 아지가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방안을 냈는데, 그것은 바로 한 명은 아지와 있고 나머지는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다.

아지와 함께 있는 한 명은 한 손에는 목줄을, 한 손에는 핸드폰을 꼭 부여잡는다.

근처에서 아지의 볼일들을 해결하고 가족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면 가족은 밖에 나와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그제야 아지를 차 안에 두고는 밥을 먹으러 간다.


다른 가족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밥 먹는 시간이 15분이면 끝난다.

그런데 아지 때문에 더 급하게 먹어서 10분 만에 먹는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돌아와도 아지는 오래 기다렸다는 반응이나 반가운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식사를 급하게 끝내고 아지에게 가면 자리를 잡고 앉아 멍 때리는 모습을 발견할 뿐이다.



아마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강아지가 상전이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이러는데 아니라고 차마 입을 떼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아지에게 매여있지는 않는다.


이전에는 우리 가족이 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없었다.

아지는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외에 거의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산책도 자주 하지 못했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엄마인 내가 아지와 함께 살지 못했었으니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24시간 중 24시간을 같이 있다.

그래서 어디를 가더라도 이제는 마음 편히 가는 것 같다.

물론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긴 하다.

성인 강아지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최대 시간은 5시간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인지,

5시간 넘게 집을 비우는 일은 거의 없도록 한다.


어딜 가나 껌딱지가 되어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지를 볼 때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가끔은 좀 저리 가라며 귀찮아할 때도 있지만 내게는 크나큰 행복이 되는 존재이다.


최근 사람의 배신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우리 아지는 평생토록 살아가며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까지도

나를 배신하지 않고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하니,

아지는 정말 강아지, 반려동물, 가족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네게 나도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을 오늘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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