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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Feb 23. 2024

엄마 넷, 아빠 하나가 있는 아지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아지는 엄마가 4명이나 있다.

본인을 낳아준 엄마, 본인을 데려온 엄마, 본인을 키워준 엄마, 본인과 함께 사는 엄마.


아지를 낳아준 엄마는 안타깝게도 아지가 어릴 적 헤어졌다.

늘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측은한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보다 사랑 한 번 더 주는 게 낫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아지에게 더 잘해주기 위해 애쓴다.


아지를 데려온 엄마는 나다.

아지의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두 팔로 꼭 껴안으며 달콤한 약속을 했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약속을 저버리고 나의 엄마에게 아지를 보냈다.

처음 엄마에게 아지를 소개할 때, '아지야! 할머니야~'라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경기를 일으키며

'내가 지금 이 나이에 할머니 소리를 들어야겠냐!!! 할머니 하기 싫어!!!'라고 강력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엄마도 엄마가 되고, 아빠는 아빠가 됐다.

그리고 우리 아지는 아들 소리를 듣는 장남으로서 애교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인과 함께 사는 엄마는 나의 언니다.

'내가 엄마니까 이 사람은 이모라고 불러!' 그랬더니 언니 또한 경기를 일으켰다.

'아니 이 사람들이 명칭을 구분 짓기 위해서 그냥 갖다 붙이는 것뿐인데 굉장히 예민하네!'라고 하면서

'그럼 누나라고 불러. 이모는 나이 들어 보여서 싫은가 봐.' 그랬더니

'싫어! 나도 그냥 엄마 할래!'라며 엄마라는 명칭에 욕심을 부렸다.

그렇게 아지에게는 3명의 엄마가 생기게 되었다.

언니를 본인과 함께 사는 엄마라고 설명하게 된 이유는 언니는 딱히 아지와 함께 사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엄마가 너무 많아서 읽기 헷갈리는 분들도 꽤나 있었을 거 같다.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쓴다고 했는데 만약 불편했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문득 우리 아지가 제일 헷갈리지 않았을까 싶어 '너네 아지한테나 사과해!'라고 하고 싶다면 걱정 마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아지에게 '엄마'라고 최우선으로 인식되는 사람은 '나'다.

그래서 '엄마'라는 말을 하면 '나'를 가장 먼저 쳐다본다.

그래도 부모님 댁에 다 같이 있을 때, 아지를 위해 바디랭귀지도 함께 하거니와 '00 엄마한테 가 봐!'라고 말하고 아지는 잘 알아듣고 쏜살같이 달려간다.

단, 엄마와 나 그리고 아지 셋이서 있을 때는 그냥 '엄마한테 가 봐!'라고 말해도 괜찮다.

어차피 이 엄마 아니면 저 엄마 둘 중 한 명일 테니.


나는 문득문득 다른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지처럼 이렇게 똑똑한 강아지가 있을까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다.


우리 아지는 가족들이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아챈다.

엄마는 '아빠 오셨다!'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언니이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그렇게 엄마는 틀리지만, 아지는 보란 듯이 맞춘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할 거 같으니 또 말해보자면,

아지가 현관문으로 달려가는 속도가 다르다.

나는 사실 이 부분에서 아지가 네 사람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알아챌 수 있다.

물론 그 순서는 가족이 알면 속상할 수 있으니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가도록 할 것이다.


아지도 사람처럼 속물이라고 느낀 적이 꽤 있다.

상황에 따라 순위가 가끔 뒤바뀌기 때문이다.


아지는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신나게 현관문까지 뛰어갔다가 아빠가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되돌아온다.

아빠는 그렇게 아지가 본인을 맞이하면 '아지~'하고 반기고

아지가 딴짓을 하고 있으면 '이노무 자슥이 아빠 오셨는데 인사도 안 하고 말이야!'라며 혼낸다.

그래도 아빠가 오면 꼭 하는 아지의 통과의례가 있는데, 아빠의 양말부터 벗기는 것이다.

아빠가 반쯤 양말을 내리면 아지는 양말의 끝부분을 물어 양말을 쏙-하고 빼낸다.

나도 가끔 아지에게 양말 뺏김을 당해봤는데, 쑥-하고 한방에 빠지니 왠지 모를 시원함이 느껴졌다.

'이 좋은 걸 아빠만 하고 있었다니...'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아빠가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신고 있던 양말이니 구수한 냄새가 나서 인기가 있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아지가 양말 벗기는 걸 좋아하면서도 하지 않을 때는 때마침 간식이나 식사를 먹어야 하는 타이밍 이어서다.

이게 바로 음식에게 순위가 밀린 아빠의 모습이자 아지의 속물인 부분이다.


또 다른 사례는 우리 언니에게 해당된다.

언니는 평소에 아지한테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지 왜 이렇게 못생겼어?!'라는 말이 10번, '아지 안녕~'이라는 인사말이 1번인 사람이다.

그래서 아지도 언니가 집에 들어오면 현관문으로 쪼르르 인사하러 갔다가도, 내키지 않을 때는 잘 가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무덤까지 가져가겠다던 비밀을 밝혀버린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언니는 아지에게 사랑을 독차지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건 언니의 업보라고 생각한다.

'나도 날 좋아하는 강아지를 좋아하지, 나 안 좋아하면 나도 싫어!'라고 하고

'나도 못생긴 강아지 싫어!'라고 하는데 아지가 언니를 좋아하면 이상한 게 아니겠나.


하지만 언니가 무슨 속셈인지 아지에게 갑자기 잘해줄 때가 있다.

뜬금없이 산책을 데리고 간다던가, 간식을 챙겨준다던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지는 그 속셈에 넘어가 언니 방에 자꾸 기어들어간다.

나와 자다가도 언니에게 가서 잠을 자고, 내 옆에 붙어 있다가도 언니를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고, 어슬렁어슬렁 가던 현관문에도 오도도도 달려가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나 같으면 이왕 이렇게 아지한테 점수 딴 거 계속 잘해줄 텐데,

언니는 목적을 달성하면 아지에게 다시 관심을 꺼버린다.

아지가 돌변해버린 언니의 모습에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괜찮다.

아지도 그때 당시에는 좋았을 테니.

그러니 저 순간들만큼은 최우선 순위에 있는 나를 두고도 언니에게로 간 게 아니겠나.

아주 그냥 간식 준다고 하면 엄마 버리고 갈 놈이여!!!



아지에게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해 가장 속상한 건 다름 아닌 우리 엄마다.

지를 데려온 엄마는 본인에게 넘기고 가서 오지도 않고 자기가 다 키웠는데,

맨날 나한테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자식새끼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며 '저리 가!!!'라고 꽥- 소리 지르지만,

아지가 엄마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면 그 즉시 엄마는 하트 눈이 되어 또 행복해한다.


나한테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가도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열거나 요리하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턱을 괴고 고양이 눈으로 쳐다본다.

무엇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이렇게 보고 있으면 무어라도 주지 않을까 하는 갸륵한 마음이다.

고양이도 아닌데 고양이 눈을 하고 쳐다보면, 엄마는 또 마음이 약해져 꼭 하나씩 간식을 던져준다.

아지한테 자꾸 간식을 주면 요리할 때마다 올 걸 알면서, 그렇게라도 아지가 자기 옆에 있길 바라는 걸까 싶기도 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엄마는 요리하다가 걸리적거리는 걸 싫어하는데 아지가 진짜 걸리적거리게 할 때는 나한테 큰 소리로 '니 새끼 데려가!! 걸리적거려서 밥을 못 하겠어!!'라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밥 먹을 때 내 식사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아지를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그런데 부모님 댁에서는 엄마가 아지를 계속 신경 쓰면서 간식 던져주고 자기 한 입 먹고 이러는데,

그래서인지 아지는 우리 가족이 식사할 때만큼은 나를 아예 쳐다보지 않고 엄마한테 몸과 얼굴을 고정하고 있는다.


부모님 댁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엄마뿐이기에 아지는 엄마가 일어나 어디론가 갈 때마다 '뭐 먹나?'하고 관심을 끄지 못한다.

그래서 자다가도 엄마가 일어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엄마를 쳐다본다.

따라서 몸은 나와 있어도 눈은 엄마에게 항시 향해 있고,

몸이 엄마와 있다면 눈이 나에게로 향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제대로 따로 노는 우리 아지 너무 귀엽다.


나는 책임감 없는 견주지만 나름 걱정했다.

내가 아지를 부모님 댁에 두고 나와 따로 살면, 아지의 엄마는 어느 순간 우리 엄마로 변해있지 않을까 하고.

만약 그렇다 해도 나는 아지를 똑같이 사랑했을 거고 책임 의식을 느꼈겠지만,

아지는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라는듯 나를 늘 선택해 준다.


아지야 이것도 가져야겠고 저것도 가져야겠는 나쁜 엄마지만 선택해 줘서 고마워.

엄마는 너를 통해 배우는 게 많아.

이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지를 꼭 끝까지 책임지는 엄마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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