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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Feb 21. 2024

으악! 어떻게 쉬를 이렇게 싸!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글을 작성하기에 앞서, 이 글은 아지의 배변 이야기라는 것을 알립니다.

따라서 배변과 관련해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읽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전합니다.


아지는 어릴 적 배변훈련을 마쳤다.

처음 배변훈련을 했을 때, 아지는 곧잘 훈련을 따라줬다.

양궁선수가 과녁에 명중시키듯

아지는 패드 한가운데에 정확하게 소변을 보고는 했다.


패드에 깔끔하게 소변을 보면, 나는 아지에게 박수를 치며 달려가 잘했다고 간식을 줬다.

그래서 그때 아지는 없는 소변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쥐어 짜냈다.

패드는 노른자가 없는 계란후라이처럼 하얗기만 한데, 당당하게 내게로 와서 간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지 쉬야했어?"

"헤헤 ^^"

"아지야 근데 너가 패드를 봐봐. 그냥 하얀색이지! 너는 뭐가 나온 줄 알았나 본데, 아무것도 없어!"

"헤헤 ^^"


내가 말하는 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아지에게 '네가 한 행동은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해봤자 의미 없는 짓이었다.

간식을 생각하며 해맑게 웃는 아지에게 실망을 줄 수도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간식을 하나 입에 물려주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것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아지는 매번 소변을 볼 때마다 간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지야, 소변을 패드에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야. 그러니 이제 간식은 그만이야!"

여러 번 계속 간식을 주지 않으니 다행히 내 자취방에서는 이 나쁜 버릇을 고쳤다.

하지만 문제는 부모님 댁이었다.


엄마는 아지가 패드에 소변을 잘 눌 때마다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한다.

"아이고 잘했어요! 우리 아지가 이렇게 소변을 잘 쌌어요?! 엄청 예쁜 강아지네!!"

아지는 내 자취방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엄마한테 가서 재롱을 부리며 간식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간식 주지 말라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내 말을 걸러듯는 필터기를 귀에 탑재한 듯 내 말을 싸그리 무시했다.

아지는 간식을 맛있게 베어 물고는 보란 듯이 나를 쳐다보며 잘근잘근 씹었다.

"야 좋냐?"라고 묻는 내 앞에서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고 말하면, 이건 그냥 기분 탓이겠지.


차라리 간식을 주던 때가 좋았다.

아지는 이제는 50:50 확률로 배변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아서 참았다가 가는 나쁜 버릇이 있다.

그런데 강아지 패드를 매번 치워야 한다니...

패드만 치우는 것도 솔직히 귀찮은 일인데 배변 밖으로 다 새어 나간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아지의 배변 실수를 고치기 위해서 유튜브고 인터넷이고 다 찾아봤다.

패드의 양끝 접기.

세로로 길게 4개 연결해 놓기.

가로로 길게 4개 연결해 놓기.

정사각형으로 4개 만들기.

배변 장소 바꿔보기.

심지어 4만 원짜리 새로운 배변판을 구매하기까지 했으나, 배변판은 패드와 다른 촉감이라 그런지 절대 하지 않았다.

이외에 많은 시도들을 해봤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소변을 볼 때, 아지의 특징이 있다.

두 뒷발은 패드에 올려놓고 두 앞발은 장판을 디뎌야 한다는 것.

그런데 아지도 엄마인 나를 닮아 소변을 잔뜩 모았다가 배출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양이 매우 많은 탓에 패드 밖으로 다 흘러가는 것이다.

그가 집에 만든 하천은 어디까지 흘러갈지 몰라 빠르게 달려가 닦아줘야 한다.


강아지가 변을 볼 때 놀라게 하거나 당황스럽게 하는 등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아지가 변을 볼 때 다른 일에 집중하는 척을 하고 아지에게서 눈을 돌리는데,

사실 온 신경은 아지가 실수하는지 여부에 쏠려있다.

아지가 배변을 끝내고 자리를 옮기면 그제야 빠르게 처리하는데, 이 과정이 굉장히 힘들다.


아지는 내가 본인의 배변을 치우고 있으니 잘했다고 생각하고 간식을 달라고 당당하게 표현한다.

그럼 나는 "아지야! 누가 쉬를 이렇게 싸라고 했어! 엄마가 이렇게 가르쳤어?!"라며 혼내고

나의 큰 소리에 놀란 아지는 의자 밑으로 쏙- 들어가 숨기 일수다.


배변을 치우고 물티슈나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고 나서 한숨을 쉬면,

아지는 의자 밑에서 슬그머니 나와 나를 보고 다시 꼬리를 흔든다.

"바보야, 엄마한테 혼나고서 꼬리를 또 흔들고 싶어? 도대체 쉬야를 왜 이렇게 밖에 못 하는 거야 ㅠㅠ"

아지를 껴안고 혼자 중얼거리듯 한탄해 보지만, 이다음에도 나아지는 건 사실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차라리 배변 밖으로 흘러나가 하천을 이루는 게 더 낫다.

아지는 늘 본인이 배출한 소변을 뒷발로 밟고는 집 사방팔방을 돌아다니곤 하니까.


집안 구석구석에 찍힌 아지의 노란 발도장은 햇빛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하필 장판이 갈색이라 노란색 물방울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내가 밟을 수도 있는 트랩 같은 존재였다.

나는 밟고 나면 "으악!"하고 표정이 일그러지며 한발 뛰기로 화장실에 뛰어가니까.


아지는 이미 내 "으악!" 소리에 어디론가 쏜살같이 뛰어가 숨어있고

그 덕에 온공간은 쉬밭이 되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내 발을 닦고 나오면 아지를 찾아 뒷발 모두를 닦고

아지가 지나간 길을 헨젤과 그레텔처럼 거꾸로 돌아가며 걸레로 훔친다.


한때는 내가 산책을 하루에 3번씩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차피 본인이 밖에 나갈 걸 알아서였는지, 집에서 절대 대소변을 보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지금까지 엄청나게 참았다는 듯 어찌나 많이 다리를 드는지,

그 작은 몸에서 그 많은 양이 나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또 이때는 제법 비슷한 시간에 산책을 나갔기에 아지도 본인의 산책 시간을 알았다.

그런데 인간사가 어떻게 늘 한결같을 수 있을까.

어느 날 내가 오전 산책을 건너뛰고 오후에 산책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지가 오후가 될 때까지 배변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실외배변을 습관 들인 강아지는 실내에서 배변을 하지 않는다더니 딱 그 모습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아지를 데리고 밖에 나갔는데,

나는 폭포를 마주한 줄 알았다.

아니 이 정도면 그냥 집에서 좀 하는 게 어떨까 아지야?


그리고 아지는 집에 사람이 없으면 배변활동을 하지 않는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그때까지 참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보고 조금 반겨주고는 바로 패드로 달려가서 배변을 하고 다시 달려와 반긴다.

내가 자기를 버리고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올 거야'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그러다 보니 저녁이 되어버린 걸까?

그냥 하루종일 쥐 죽은 듯 잠만 자다가 내가 와서 벌떡 깨고 까먹었다는 듯 배변을 본 것이었으면 좋겠다.


문득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실외에서는 꼭 한쪽 다리를 들고 소변을 보는데,

집에서는 여자처럼?이라고 해야 하나, 앉아서?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바닥을 향해 배출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지는 소파, 이불, 침대, 카펫 등에서 하면 안 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아는 거 같다.

그런 실수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친구네 집에 아지를 데리고 갈 때도 그런 걱정은 없다.


아! 차나 대중교통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절대 소변을 누지 않는다.

혹시 몰라 패드를 깔아줘도 내릴 때까지 참는다.

그래서 가족여행을 갈 때는 아지 배변활동을 위해 휴게소에 들러 반드시 산책을 해준다.


이렇게 보니 배변 훈련이 잘된 강아지 같기도 하네.

이런 건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잘하고, 가르친 건 제대로 안 하고...

청개구리가 따로 없구먼!


왜 내가 소변 얘기만 하는지 궁금할 테다.

대변은 어릴 때부터 훈련할 수 없었다.

아지는 대변을 배출할 때 원샷원킬이 불가능한 강아지다.

자세를 잡고 힘을 주고 그 자리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게 아닌,

자세를 잡고 힘을 주고 앞으로 조금 걸어가 또 자세를 잡고 힘을 주고 또 걸어가 자세를 잡고 힘을 주고.

그렇게 세 덩어리를 나눠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드에 대변을 완벽하게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대단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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