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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Feb 26. 2024

CCTV로 감시당한 아지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아지야 네가 아주 어릴 때의 일인데 기억나니?

내가 집에 검은색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일을 갔었어.

보이지 않는 곳에 두어서 너는 몰랐으려나?

하긴 카메라에 네가 다가와 나와 눈이 마주친 적이 없으니 몰랐던 게 맞았던 거 같아.


나는 네가 내가 없는 집에서 홀로 하루종일 무얼 하는지 너무 궁금했어.

사람이야 하는 행동이 가지각색이고 분주하게 움직이니 보는 맛이라도 있지,

웬걸 너는 하루종일 잠만 자는 거야.

일어나서 어디론가 가는가 하면 그냥 자리를 조금 옮겨 다시 쓰러져 자기를 반복했어.


나는 내가 근무해야 해서 네 밥을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

그런데 사람보다 기계를 구하는 게 더 쉽잖아.

그래서 나는 자동급식기를 사서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타이머를 맞춰뒀지.


너는 급식기에서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더라?

일어나는 건 벌떡인데 밥통까지 가는 길은 호랑이가 먹잇감 찾았을 때 걷는 것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었어.


나는 카메라를 통해 밥을 먹는 네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아지야~'하고 불렀더니

네가 카메라가 아닌 현관문을 쳐다보는 거야.

자세는 굳어서는 한참을 그렇게 서있어서 내가 다시 한번 '아지야~'하고 불렀지.

그랬더니 현관문으로 걸어가서 문 앞에 서서는 한참을 또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 있지.

'나를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나를 기다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순간에 나도 표정이 굳어서는 눈물이 글썽거렸어.

생각해 보니 나도 웃기네.

너를 데려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정이 들어서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말이야.


아무튼 너는 그 자리에 한참을 멀뚱멀뚱 서있더니 결국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어.

나는 그때 '현관문 바닥이 얼마나 찬데 저기서 자!!' 하며 찬 바닥 때문에 네 배가 아프지 않을까 엄청 걱정했어.

그때는 강아지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 몰랐는데 강아지들은 원래 시원한 곳을 좋아해서 찾아간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너도 여름보다는 겨울을 좋아하잖아.

시원한 물이 아니면 먹지도 않고. 웃겨 정말.


또 나중에 안 사실인데 강아지는 사람과는 다르게 시각보다 청각과 후각에 의존하잖아.

그래서 카메라로 소리를 내는 건 강아지들한테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눈앞에 사람은 언 보이는데 소리는 계속 들리니까.

다행히 나는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슬쩍슬쩍 본 게 다라 몇 마디 걸어본 적 없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알아두면 좋을 거 같아.


네가 어린 나이에 이갈이 한다고 물건을 이것저것 다 뜯어놓으니까,

집을 아무리 깨끗하게 정리하고 위험한 건 치운다고 해도 걱정되는 건 사실이잖아.

네가 물어뜯은 게 한두 가지여야지...


노트북 충전기, 네 밥이 나오는 밥통과 같은 각종 전선은 물론이고 소파, 벽지, 신발...

아니 신발에 있는 기본 깔창은 어떻게 빼서 뜯은 거야?

나 일할 때 반드시 신어야 하는데 네 덕에 다 닳아서 새로 샀잖아!

이뿐인가 18만 원짜리 애플펜슬 2세대... 나 진짜 화가 너무 났잖아 저 때...

펜 주제에 18만 원인데 또 사기는 얼마나 아까워?

그리고 내 핸드폰... 핸드폰은 대체 왜 무는 거야? 덕분에 액정이 와장창 나가다 못해 회생불가였어.


뭐 덕분에 이런저런 걱정과 네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으로 CCTV를 설치한 거였는데

며칠 지켜보니 네가 하는 건 밥 먹고 잠자는 거밖에 없어서 금방 흥미를 잃고 나는 카메라를 치웠어.


그런데 직장에서 아이를 둔 엄마들은 꼭 자기 아이를 그렇게 카메라로 보더라.

틈만 나면 꺼내서 카메라를 보고 자기 아이 자랑을 하는데,

나는 너를 통해 이미 경험한 적이 있잖아.

그 마음이 뭔지 100번도 더 이해가 가더라고.

틈만 나면 보고 싶고 틈만 나면 확인하고 싶고 궁금한 그 마음.

그리고 아이를 두고 일터에 나와 마음이 편하지 않은 그 모습.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만은 집에 있는 그 모습 말이야.


그래서인지 나까지 괜히 마음이 찡하더라고.

그런데 그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 아이를 향한 눈과 떨어져 있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아이를 보며 행복을 감출 수 없는 그 입이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듯했어. 직장에서 버티는 이유말이야.


물론 사람의 생명과 강아지의 생명은 몸 안에 품은 시간부터 시작해서 절대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는 너를 내가 낳은 자식처럼 키우고 있으니 더 그 마음들이 이해가 가고 공감되었던 거 같아.

이제는 너를 카메라가 아닌 내 옆에서 24시간 붙어있게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해.

옆에 있어줘서 오늘도 고마워 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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