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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04. 2024

나는 생존을 위해 수영할 뿐이다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이번 글은 아지의 시선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오래전, 어느 여름날의 일이다.

엄마는 나를 기차에 태워 가평으로 데리고 갔다.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가평은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배를 타고 남이섬이라는 곳에 함께 들어갔다.

배는 움직임이 차보다 훨씬 강렬해서 내 위가 꿀렁꿀렁거렸다.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뿌- 하는 소리도 나기 시작했다.


"아지야! 이건 배라는 거야! 뿌- 하면서 소리 나는 게 너무 신기하지?"

"처음 배를 타는 기분은 어때? 바람 엄청 많이 불어서 시원하지!!"

엄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만,

나는 엄마에게 안겨 완전히 기대 있었음에도 엄마의 몸이 안정되지 않아 무서웠다.

그런데 엄마는 배의 끝자락에 가서 나를 데리고 사진을 찍으며 신나 하는 모습을 보이니 더 무서웠다.

'이 엄마를 믿어도 되는 거야? 나는 너무 무섭단 말이야!'


다행히 승차한 곳과 남이섬은 멀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이라는 말을 곧 취소해야 했다.

엄마는 배에서 내려 곧장 나를 자전거에 태웠고 섬 곳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릴 때 내 크기가 작아 자전거 앞에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지금 내 몸이 얼마나 큰데!

억지로 나를 자전거 바구니에 넣어 돌아다닐 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런데 나는 차라리 자전거에 타고 돌아다니겠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물속에 들어가는 것...

나는 물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집에서 샤워할 때도 어떻게든 도망가서 숨고 안 하려고 빽을 쓴다.

그러나 여기는 내가 모르는 곳이니 도망칠 수도 없었다.


엄마는 어디서 이상한 말을 주워듣고는 나를 물속에 퐁당 빠트렸다.

"강아지는 수영을 안 배워도 할 수 있다며! 너도 해봐!"

그렇게 나는 물 위에 떠서 열심히 다리를 휘저었지만, 물속으로 가라앉을까 봐 너무 무서웠다.

엄마는 닿을 듯, 닿지 않을 거리에서 나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오!! 진짜로 수영하네?! 엄마한테 와 봐!! 위험하면 엄마가 잡아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아지야!!"

나는 다리로 물장구만 칠 뿐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소리를 내기 위해 목에 힘을 내려고 하는 순간 물장구치는 법도 까먹고 물속으로 빠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겁먹은 표정을 지으니, 무서워하는 걸 알았는지 물속에서 나를 꺼내주었다.

그리고는 유아들이 사용할 만한 튜브를 가져와 나를 그 위에 올려두었다.

'그래... 다리는 빠져있지만... 그나마 이게 낫겠다...'하고 체념을 하고 있을 때,

엄마는 사진을 찍더니 곧장 나를 빼내어 젖은 내 털을 바짝 말리더니 다시 집으로 데려갔다.

이것으로 나의 끔찍한 수영 체험은 끝난 줄 알았다.

엄마는 내가 물을 싫어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내가 수영할 줄 아는 것도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 어느 날 여름, 우리 가족은 다 함께 한 펜션으로 여행을 갔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인데, 엄마처럼 나를 물속에 데리고 간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엄마가 내가 수영하는 걸 무서워하는 사실을 가족에게 전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펜션 내에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고, 가족이 다 함께 수영을 하는데 어떻게 아지가 빠질 수 있겠냐며 물속에 함께 들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아지 수영하는 거 싫어해!"

엄마는 가족들을 향해 외쳤고 내가 어차피 수영장에 자진해서 들어가지 않을 것 알았는지 선베드에 나를 올려두었다.

하지만 문제는 수영장에 있었다.

다른 강아지들이 수영을 하면서 너무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주인이 공을 던지면 강아지가 수영해서 가지러 갔다가 가지고 오고, 주인과 물속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등의 놀이들 말이다.

우리 가족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지도 같이 들어가 보자며 재차 보채기 시작했다.


이 수영장이 더 문제였던 것은 강아지를 올려놓을 수 있는 튜브도 있었고 강아지 맞춤형 구명조끼도 있었다.

강아지를 물속에 넣기 위해 온갖 준비가 다 되어있는 곳이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는 가족의 호기심에 만류하지 못하고 구명조끼를 입고 천천히 물에 입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엄마에게 살려달라는 애원의 눈빛을 보내며 엄마를 찾아갔고

가족들은 핸드폰으로 몇 번의 사진 촬영과 동영상 촬영을 하더니 이내 물속에서 나를 꺼내주었다.


사실 이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1시간처럼 느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물이 싫다. 수영이 싫다.

나에게 수영이란 생존하기 위한 물장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 가족아, 두 번 다시 나를 물속에 넣지 말아 줘!!!!


*아지 시선에서 적으니, 우리 가족이 되게 못돼 보이는 효과가 있는 거 같아요.

아지를 괴롭힌 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

절대로 위험하게 하지 않았고 바로바로 아지를 물속에서 구출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아지를 그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아지가 무서워하는 건 다 안 하고 싶어 하는 가족이에요.

저 이후로 아지를 물속에 넣은 적도 없고, 냄새가 나도 강아지용 향기 나는 스프레이를 뿌릴 뿐 최대한 샤워시키기 않으려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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