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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01. 2024

개물림 공갈단에 가입한 아지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아지는 자기도 강아지면서 강아지를 무서워한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두 다리 번쩍 들고 반기면서,

강아지는 천적을 만난 것마냥 소스라치게 놀라 경계 태세를 보인다.

1미터? 아니 2미터 떨어져 있을 때부터 경계 태세를 보인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지는 5미터 밖에서부터 경계 태세를 보이기 때문에,

나는 그 멀찍이서 5미터 밖에 보이는 그 강아지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 보면 공격성을 띄는 강아지들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주인들은 공격성을 띄는 강아지를 소리쳐 혼내거나

늘 그렇다는 듯 두 손으로 강아지를 둘러업고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이때 그 강아지는 우리 아지가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짖는 것이 포인트다.


그래서 나도 아지가 경계 태세를 보이면 두 손으로 아지를 들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경계를 당하는 강아지가 지나갈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지는 온몸에 힘을 꽉 주고는 돌덩이가 되어 6키로인 몸무게가 10키로가 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괜한 힘을 소모하기보다는 다른 강아지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강아지가 지나갈 때까지 내가 아지에게서 시선을 떼어 딴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아지는 강아지의 크기에 따라 하는 행태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작은 강아지면 달려드는 척이라도 하지, 큰 강아지를 만나면 반대쪽으로 줄행랑을 쳐버린다.

갑자기 뛰어드는 녀석 때문에 나는 목줄을 꼭 부여잡아야지만 사달이 나지 않는다.


나는 아지가 작은 강아지는 무서워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렇기에 저보다 작은 강아지에게 달려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아지는 주인인 나보다 목줄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작은 강아지에게 달려드는 줄 알았다.

혹은 본인보다 몸의 크기가 작으니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목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었다.

아지가 달려들면 내가 목줄을 잡아끌어 달려들지 못하도록 막을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것이다.

'아지가 그 정도로 똑똑하다고요?'

'지어내지 마세요. 목줄을 확인하는 강아지가 어디에 있어!'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래서 그날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지를 데리고 애견카페를 간 날이었다.

수많은 애견카페를 갔지만 그곳은 강아지의 크기가 극과 극이었다.

골든 리트리버처럼 엄청 크거나 미니푸들처럼 아예 작거나.


아지는 작은 강아지는 무서워하지 않으니 미니푸들 앞에 내려놓고 둘이 놀게 했다.

하지만 아지는 바로 옆에 내가 있음에도 미니푸들의 뒤꽁무니를 쫓아 냄새를 슬쩍 맡은 후 내게로 돌아왔다.

본인의 냄새는 맡을 수 있도록 절대 허용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계속 내 무릎에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분명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작은 친구였는데 내려놓으면 올라오고 내려놓으면 올라왔다.


나는 겁쟁이 아지 때문에 다른 강아지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6키로의 무게가 계속 내 다리를 짓누르고 있으니 슬슬 다리가 저려왔다.

그래서 나는 아지를 잠깐 내려놨는데 그 사이 큰 강아지가 자신의 주인을 찾다가 아지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지는 큰 강아지가 자기를 공격하려는 줄 알았는지,

몸이 닿지도 않았는데 깨갱깨갱깨개갱- 소리를 내며 개물림 사고를 당한 척을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길었는지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였다.


나는 분명히 큰 강아지가 우리 아지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안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강아지를 탓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아지의 신음소리에는 놀라서 발을 동동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큰 강아지의 주인 또한 자기 강아지가 무슨 짓을 했는 줄 알고 놀라서는 계속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어머!! 죄송합니다!! 얘가 물었나요?!! 너 무슨 짓 한 거야!!!"

"아니에요!!! 얘 그냥 혼자 그런 거예요 겁이 많아서 ㅠㅠ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놀라게 해 드려서 제가 더 죄송해요 ㅠㅠ "

 라고 말하며 손은 우리 아지에게, 눈은 큰 강아지와 그 주인을 번갈아 보았다.

아지는 다리를 절며 바들바들 온몸을 떨고 있었고

그 큰 강아지는 억울하지만 당황했다는 듯 얼음이 되어 멀뚱멀뚱 주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해 강아지야... 너도 많이 놀랐지 ㅜㅜ 너 아무것도 안 한 거 내가 다 봤어...ㅠㅠ 이모가 얘 이제 무릎에서 절대 안 내려놓을게.. 편하게 놀아!!"


상황은 종료되었고 그렇게 아지는 내 무릎 위에서 자리를 지켰다.

고장 난 줄 알았던 아지의 다리는 멀쩡하게 걸어 다녔고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야 너 자해 공갈단이냐? 개물림 공갈단에 가입했지 아주!!"

"연기자해도 되겠어!! 연기견 할까? 개물림 사고 나는 오디션 한번 보러 가?"

라고 하며 계속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거 같다.


카페 사장님께서는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지의 안부를 한번 더 확인하면서도 아지에게 줄 멍푸치노(강아지가 먹을 수 있는 커피음료)를 준비해 주셨다.

안 그래도 즐거운 카페에서 소란스럽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챙겨주시기까지 하니 감사함이 잊히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저 날 이후로 아지를 데리고 애견카페에 가지 않는다.

혹시라도 개물림 공갈단 연기를 하다가 실제로 다칠 수도 있고

다른 강아지가 놀라서 다치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사람이 조심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원이 아-주- 넓어 모든 강아지가 목줄을 풀고 산책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갈 때도 다른 강아지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도록 하고 목줄을 풀어놓는다.

만약 강아지가 많아지면 아지에게 목줄을 해서, 아지도 나도 서로 안정감을 느낀다.

아지가 사회성이 없는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욕심을 단번에 접은 사건이었다.


아지야 네가 어릴 적 무슨 일 때문에 강아지들을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강아지들도 너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야.

무서운 친구들이 아니라는 걸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만약 모르고 네 목숨이 다한다고 하더라도 괜찮아.

엄마만큼은 무섭지 않게 네 곁을 꼭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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