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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Sep 08. 2024

애쁜은경

애쁜은경

철아! 오랜만에 불러 본다. 네 이름 후훗
나 어쩌믄 좋아... 잉~ 요번에도 휴가 못 가게 됐어. 20일부터 알바하거든... 쩝. 요번이 기회인데 요번에 못가믄 정말 언제 갈지 모르는데.. (너 속으로 좋아하고 있지?) 난 알바가 8월 17일부터 인 줄 알고 신청서를 낸 건데... 글쎄 합격하고 보니 7월 20일부턴 거 있지... 쒸이~ 그렇다고 정말 힘들게 얻은 일자리인데 휴가 가느라고 그만둘 수 없는 거잖아. 건강한 미인이 되고 싶었는데... (나 선탠 언제 하지?)

그래서 심란하다. 난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나 하고... 하늘은 나만 미워하나 봐. 꼭 맨날 나야. 가서 따져야겠어. 평생 일 잘 풀리는 사람 많은데 왜 하구 많은 사람 놔두고 꼭 나여야만 하는지... (유치하다 쫌)
내가 봐도 네가 어리다고 하는 말을 좀 수긍해야겠다. 이런... 내가 그렇게 나잇값을 못해? 너한텐 물어보나 마나 일 테 구... 맞아, 너 나 대하는 태도가 내가 누나가 아니라 네가 꼭 오빠처럼 그랬었지...
정신연령은 낮은 게... 너 말야 인마!

근데 내가 보기엔 넌 애인 없는 게 다행인 거 같어. 군대 가면 다(거의 십중 팔구는) 깨진대. 남자가 맘이 변하겠냐. 여자가 변하지. 일병 때까진 애틋하다고 그러더군, 다들. 그러니 너는 맘 안 아픈 게 오히려 더 잘된 거지...
괜히 애인이 고무신 꺼꾸로 신어봐. 그럼 군대에서 미치겠지, 정말. 그러니 넌 얼마나 좋아. 속 편하구, 편지 자주 보내는 맘씨 착한 이 누나도 있고...

걱정 마! 너 제대하고 나오면은 내가 참한 색시 하나 소개시켜주께... 네 말대로 착하고 아기를 좋아하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그런 여자. 또 내조를 잘하구... 호호 나 너무 착하지? 그럼 그럼.
뭐? 제대하고 나면 여자가 줄을 섰다구??! 그렇담 할 수 없고...

지금 밖에서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비 엄청 많이 온다. 억수로. 마지막 장맛비인가 봐. 이제 장마도 곧 끝날 거 같어. 거기도 비 많이 와? 아니 많이 왔어? 답답하다. 이렇게 나만 편지 보내니 전화도 못하고. 나 혼자만 일방적으로... 너의  사정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궁시렁.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이래도 되는 건지 몰라...
근데...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담에 또 편지 쓰께.


1998. 7. 28.



이 다르고  다르다.

게다가 한 달 이상의 시간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은이누나는 큰 착각을 하셨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사한 일은 무수히 많았기에 신선한 느낌은 적다.


즐거운 휴가를 통해 구릿빛 피부로 거듭나 건강미인이 되고 싶었던 바람이 여름바다 파도처럼 물거품 된 현실에 마음은 아프지만, 난 왜 선탠을 하려 했는지 해할 수 없다. 아내에게는 선탠보다는 화이트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이를 통해 일견 건강미가 있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미인은... 글쎄...


그런가 하면 딸 같은 아내의 누나행세 계속되고 있다.

이때나 지금이나 워낙 애라 딱히 어떤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오빠 같을 수밖에 없다. 나의 정신연령을 논한 막말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심지어 막말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애인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기라니... 급기야 제대하면 예쁜 색시를 소개해 준단다.


그녀는 자청한 이 약속지키지 않았다.

내게 예쁜 색시를 소개하지 않았을뿐더러 급기야 스스로 색시가 되. 작년까지 내 휴대폰에 아내는 '은경 색시'로 저장되어 있었다. 혼 직후 자발적으로 저장한 휴대폰 속 자신을 문득 확인하고는, 절대로 자신이 이렇게 입력했을 리 없다며 '은경 아내'로 수정했다. 경과 아내 사이의 핑크색 하트는 - 역시 자신이 스스로 입력한 - 특별히 유지해 준단다. 

어떤 훌륭하신 분께서 기억이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했던가. 상대가 매우 단호할 경우 사람은 나를 다시 돌아보기 마련이다. 읽고 나서 이 기억 앞에서는 충분히 거만해도 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우리 은경이의 허당끼, 그리고...  

'애쁜 은경' ^^


그랬다. 나의 이상형은 아기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착한 여자였다. 내가 아기를 좋아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강아지는 무서워한다. 아이와 내가 그토록 바라는 강아지의 입양을 아내는 오래도록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착한지의 여부, 내조를 잘하는지의 여부는... 글쎄...




뭣이 중하랴!!!

나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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