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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Sep 04. 2024

처음이 아닌 첫 편지


은이가

역시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저녁께부터 비가 쏟아지고 있다.
비를 맞으며(물론 우산은 쓰겠지...) 걷는 것보단 창가에 서서 비를 바라보는 편이 내겐 훨씬 더 좋다. 그러니 생각나는 게 있어. 아마 한 3년 전쯤 그때도 장마 때였어. 7월초였으니깐. 그날은 날씨가 꽤 맑아서 아무런 대책 없이 종로로 나갔는데... 글쎄 장대비가... 비를 마땅히 피할 곳도 없고 어찌할 수 없어서 그냥 맞아버렸다.
여지껏 비 많이 맞아 본 적은 내 평생에 단 두 번, 고등학교때와 내 나이 스무 살 때... 산성비라 머리카락 빠질까 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얼마나 시원했는지 몰라. 이왕 비를 맞을 거면 찔끔찔끔 내리는 가랑비 보다야 양동이로 퍼붓는 장대비가 젤이지... 그땐 참 세상 사는 게 재미있었는데...

......

마을버스를 타고 롯데 앞에 내려서 우체국을 갔어. 왜냐면 우표를 사러 갔지. 네가 다 뺐어 갔잖어.
그래서 170원짜리 열 장하고 340원짜리 다섯 장 모두 3,400원어치를 사고 바로 밑에 있는 영등포 문고를 갔어. 우선 들어가자마자 잡지를 봤지. 근데 요즘 잡지가 다 그렇게 별 내용이 없드라구. 재미두 없구. 그래도 펼친 거니깐 잡지책 한 권을 다 보고, 예전에 너랑 본 영화 '편지'의 그 시가 떠오르는 거 있지. 그래서 황동규 님의 '즐거운 편지'를 찾으러 시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거 찾느라 아마 30분은 더 훑어봤을걸. 이 작은 눈에 띄어야 말이지. 여하튼 찾았어. 그걸 찾아서 한번 읽고는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네게 써 줄려고 열심히 적었다는 거 아닌교... 사람들 눈치 봐 가면서... 그런 거 적는 사람 아무도 없었걸랑. 하긴 내가 좀 희한한 짓을 많이 하지. 너 웃지 마. 너 웃는 거 다 알어. 버스 안에서 쏘세지 먹은 얘기 할려구 하지. 나쁜 것. 도움이 안돼. 넌...
근데 왜 얘기가 자꾸 딴 데로 새지? 이런 바보...


니가 그랬잖어. 내용이 중요하냐구 받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그래서 쓴다. 안 그랬음 국물도 없었다.

근데 내가 이 편지 보낼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그러는데 훈련소에 있을 땐 전화하기 힘들다고. 그런 내가 너한테 연락 못 받으면 보낼 수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옛날 편지 보낼 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가면 가는 거고 말면 마는 거지. 머.

공군은 훈련소가 진주에 하나밖에 없다며?
너 가고 나서야 알았어. 통신에 보니까 진주까지 같이 가자는 사람이 몇 명 있드라. 아무도 모르고 혼자 가느니 누구라도 알아서 같이 가는 게 좀 덜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했어. 내가 신경 좀 써줄걸. 누나가 되서리... 너도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금방 친해지던데 들... 너도 그렇지? 벌써 친구 사귀었겠네? 이 누나 소개시켜 주꺼지?
사진은 절대 보여주지 말고 얘기 잘해라. 알았지?
그럼 난 동생만 믿으마. (히히, 너한테 한 대 맞겠다.)

손이 아파서 즐거운 편지는 나중에 적어 보내 줄께...
더운 날에 고생이겠다. 비 오면 훈련 안 받니? 그럼 내가 비오라고 고사라도 지내줄께...
비 와라 비 와라 비 와라. 이럼 됐겠지?

나 참 어리지... 나잇값을 못한다. 주책이나 떨구...
여하튼 몸 건강히 훈련 마쳐라. 그럼 또 편지 쓸게...


1998. 7. 14.


나는 그녀의 첫 편지를 기억한다.

이 편지의 하루 전 나의 입대일에 쓴 편지로 그날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처음 받은 편지에 묻어있는 진심이 못내 안타까워 평생 잊히지 않는다. 1998년 7월 13일의 편지 다시 읽을 수 없고 여러 초기의 편지들을 찾을 수 없어 못내 아쉽지만, 아내의 그 마음은 내가 오롯이 간직하고 있기에 다행으로 여긴다.


26년 만에 펴 본 편지, 많은 단어들 중에 '은이'도 신선했지만 가장 생경한 것은 '누나'였다.

언제나 잊고 살지만 주민등록상 동갑일 뿐 아내는 나보다 한살이 많다. 그러나 26년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단 한순간도 그녀를 누나로 느껴본 적이 없다. 친구나 동생, 아이와 티격태격할 때를 보면 심지어 딸 같기도 하다. 스물여섯 해 전에는 이렇게 누나행세를 했는지 몰라도 긴 시간이 흘렀다. 공식적으로 아빠와 동갑이라 말하는 엄마에게 어김없이 "엄마가 한 살 많잖아" 팩폭 하는 아이를 향해, 이제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 어르곤 한다.

딸 같은 모습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입대 전 마지막 만남은 어땠는지 어떻게 이별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진 후에 어떤 말로 작별의 인사를 대신했는지도 억하지 못한다. 나는 어떤 자격으로 편지를 요구했고 그녀는 또 어떤 마음으로 적어 보냈던 것인지...


20일, 그 짧은 사귐동안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전했고 그녀는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 질문에 대해 아내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좋았나 부지. 잘 기억 안 나."



글의 준비를 위해 근래에 아내와 함께 편지들을 찾고 읽으며 많은 지난 추억들을 이야기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고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현재 진행형인 이 시간에 마치 둘 만의 유행어처럼, 우리는 이 말을 참 많이 하곤 한다.


오래됐어!!! 또는 오래됐는데? 


오래된 편지들이고 우리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도 참 오래되었다. 사실이지만 그 뜻은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으니 해달라는 의미로 내가 처음 한 말이다. 아내의 빈번한 무단사용으로 되로 주었다가 말로 받고 있다.



은이누나, 오래됐어~ 오래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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