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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Sep 11. 2024

처음 부친 편지


은경

철이에게...
오늘 네 형한테서 어렵사리(?) 너의 주소를 알아서 이젠 정말루 네가 받을 수 있는 편지를 보낸다.
네 주소 알기 전 쓴 편지도 같이 보냈는데, 어떻게 잘 알아서 읽었는지. 궁금하네.
넌 요즘 어떤지. 훈련은 잘 받고 있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쉬는 시간은 있나? 그럼 쉬는 시간에는 머하나? 여러 가지로 궁금.

......

참, 너 특박 나올 거라며? 네 형한테 들었어. 다음 달 20일쯤께 나온다구. 좋겠다. 그래도 군댄데 너 너무 편한 대로 간 거 아냐? 하하. 웃기다 그냥 넌 없구 꼭 벽에 대구 얘기하는 거 같애. 물론 네가 읽을 테지만.
근데 지금도 좀 애매한 게 정말 내 편지가 너에게로 갈 수 있을까? 내가 주소는 잘 받아 적은 건지. 혹은 가다가 딴 길로 새진 않을런지... 여러 가지 걱정...

특박 나와서 딱히 할 일 없으면(그렇지만 물론 바쁘겠지?) 연락해. 진주서 설 올 때 내가 마중 나갈 수 있으면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구. 너 못 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이상한 거 있지. 우리가 정말 아는 사이인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몇 가지나 있나? 이런저런 생각. 근데 어쨌든 여하튼 특박 나와서 연락 못하게 되더라도 내 편지 받았는지 연락은 꼭 해줘? 궁금하잖아. 그래도 다른 데로 새 버리면 열받지. 편지가 말야.

내가 너무한 건지 아니 내가 지극히 정상인지는 모르지만 네 얼굴 생각나질 않는다. 그냥 안경 쓴 거 하구 입술 쫌 두꺼운 거. 얼굴에 점 많은 거. 곱슬머리.
하하. 다 연결시키니까 이제야 생각이 나는구나. 읽다 보니 이 편지지에 이 색깔 글씨가 눈이 아플 거 같애. 그럼 이만 쓸께.
그럼. 안뇽. 잘 지내...


1998. 7. 28. 새벽에



이 편지의 소인은 7월 29일로 찍혀있다.

주소조차 알지 못했기에, 같은 날짜에 쓴 전편의 편지 그리고 적기만 한 다수와 함께 처음 부쳐졌을 것이다.


다시 읽어 미안함이 앞선다.

공군은 큰일이 없다면 6주마다 2박 3일의 외출(특박)한다. 첫 외출은 보라매 용사답게 대한항공을 이용한다. 이때만 해도 내 소식도 정확한 날짜도 전하지 못했다. 실재 수 주후에야 나올 수 있었다. 편지의 문구처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벽 보고 얘기한 것이 사실이다.


'딱히 할 일 없으면 연락해'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정쩡한 우리의 사이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연인이었다면 첫 외출로 허락된 그 짧디 짧은 시간을 함께할 분 초를 다투는 계획들이 빽빽하게 지면을 채웠을 것이다. 친구라 하더라도 식사든 술이든 나누며 얼굴을 마주 하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약속을 정했을 것이다.


우리가 정말 아는 사이인지 되새겨볼 만큼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보다 나를 대할 자세조차 고민하게 되는 그녀가 안타깝다. 마중이라는 앞서는 에 반해 관계 재 확게 되는 이성적 뒷걸음...


짧았 만남에도 많이 추억하고 많이 걱정하고 많이 궁금해했던 그녀인데, 마주한 서로의 재회 앞에서는 움츠림이 느껴진다. 자꾸만 뒤로 가는 걸음을 멈추기 위해 애써 떠올린 나의 모습었을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보아도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아내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는 없지만, 마중 나가 조금이라도 빨리보고 싶었다고...  

편지의 안부를  핑계로도 꼭 락해 함께 시간을 보내며,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고 한다.



내 어찌 이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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