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좋은 질문, 나쁜 질문은 없다."
예전에 존경했던 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은 그 당시 억울함으로 터질 거 같던 내게 나의 의문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위안이 돼주고 희망이 돼주었다. 그리고 현재 이 말은 내 안에서 새롭게 가지를 뻗어 또다른 곳을 가리킨다.
"좋은 질문, 나쁜 질문은 없다"라는 문장은 한 번도 질문을 해본 적이 없거나,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자가 우선적으로 가져야 하는 말이라고 알려준다. 질문하고 싶어도 아무도 기회를 주지 않아서, 또는 해봤지만 전해지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돌려받아야 할 기본권이라고 말이다.
저 말을 가져선 안 되는 자들도 있다고 알려준다. 나부터 그렇다. 나는 적어도 질문할 수 있는 자가 됐기 때문에 좋은 질문을 해야만 한다. 동시에 호기심을 빙자한, 사실은 못난 열등감을 교묘하게 배설해 내려고, 아니면 저열한 1차원적인 쾌락을 즐기려고 '단순히 호기심'인척 던지는 칼날들,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자 무기로 삼는 나쁜 질문들을 알아차려야 한다. 나쁜 질문은 상대방의 마음과 나의 인격을 동시에 베어내지만 부상의 정도는 공평치 않다. 상대방에게는 평생 갈 흉터가 남을 수 있고 자칫 그의 영혼도 죽일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질문을 품고 살아야 하며 최소한 무해한 질문을 건넬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해가 될 나쁜 질문들을 단순히 '질문'이라는 두 글자로 포장하려는 건 나태함이고 위선이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질문은 필히 좋아야 한다. 무심할 때 나쁜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고 무심함은 무식함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