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390
채수아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채수아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최선희
제목: 새해 다짐
“늘 최선을 다하는 거야!”
연말이 지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1월 1일 아침.
하얀 서리가 낀 창문 틈새로 밝은 빛이 스며들었다. 아직 새벽 공기가 차갑지만,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소망과 기대감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기 딱 좋은 때였다.
선희는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사실 알람을 맞춰놓지는 않았는데, 웬일인지 자동으로 깨어나 버렸다. 기숙사에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알바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일찍 일어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바로 새해 첫날의 그 싱그러운 기분이 그녀를 강제로 깨운 듯했다.
“늘 최선을 다하는 거야!”
침대 위에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선희는 혼잣말로 외쳤다. 사실 선희는 늘 ‘새해 다짐’을 하곤 하지만, 번번이 삼일천하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헬스장을 끊어 놓고는 3일 다니고 이내 귀찮아진다거나, 영어 단어를 하루 50개씩 암기하겠다 다짐했지만 일주일 못 버텼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 듯한 새해 계획 노트를 예쁘게 꾸며 놓고, 굵직한 목표를 세우는 대신, 정말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 적어도 ‘하루에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말을 두 번 하자’ 같은 작고 단순한 목표라면, 삼일천하로 끝날 확률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거실로 나가보니, 혼자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김장을 끝낸 뒤부터 계속 김치로만 식사하더니, 이번에는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식단 변화를 주려는 모양이었다.
“어머, 우리 딸 이렇게 일찍 일어나네?”
“새해니까요. ‘새해 기분’ 내느라.”
선희는 식탁에 앉아 엄마가 썰어놓은 토마토 조각을 몰래 하나 집어먹었다.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고, 이상하게도 그 작고 평범한 토마토 한 조각이 ‘새해’라는 느낌을 더 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하루를 준비하던 중, 선희는 스스로에게 세 가지 작은 다짐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어느 사이트에 돌아다니던 글에서 ‘매일 아주 사소한 다짐을 세 가지씩 하고, 그것을 실제로 이룰 때마다 하나씩 체크하라’고 한 아이디어를 본 적이 있었다. 번거롭지 않고, 잔잔한 성취감을 느끼기에 좋을 것 같았다.
맛있는 아침 먹기
즐거운 점심 먹기
신나는 저녁 먹기
“하하… 이게 뭐람.”
선희는 스스로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새해 계획’이라 하면 멋들어진 문장과 고상한 다짐이 떠오르는데, 자기 계획은 고작 하루 세 끼 맛있게 먹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아주 작은 성공’을 반복하며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 않던가. 선희는 이 사소한 세 가지 목표에서 출발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첫 번째 다짐부터 실천. 엄마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무척 맛있게 먹었다. 빵 사이에 도톰한 햄과 상큼한 채소가 자리 잡은 평범한 샌드위치였지만,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마음속에 뭔가 포근한 온기가 채워졌다. ‘아, 오늘 아침은 확실히 맛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아침을 ‘맛있게’ 먹어낸 선희는, 침대에 누워 잠깐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새해 첫날이라 SNS가 온통 축하 메시지와 각종 다짐 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올해는 꼭 토익 900점 넘기겠다!’, ‘운동해서 10kg 감량해야지!’ 같은 거창한 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반면 선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 계획은 하루 세 끼 맛있게 먹기.’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 있겠지만, 선희에게는 바로 그 작음이 주는 ‘지속 가능성’이 중요했다.
그날 점심. 선희는 친구와 가볍게 파스타 가게를 찾았다. “즐거운 점심 먹기”라는 목표를 위해, 조금 색다른 메뉴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만 고집하던 선희였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 ‘봉골레 파스타’를 시켰다. 달콤짭짤한 조개 육수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예상 외로 그녀의 입맛에 딱 맞았다.
“야, 너 원래 해산물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아?”
“응, 근데 오늘은 왠지 해보고 싶어서.”
“별거 아닌 데도, 엄청 신나 보이네?”
친구는 선희가 파스타 한 젓가락을 맛보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즐겁게’ 점심을 먹고 있다는 만족감을 증폭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선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매끼에 집중해서 먹으면, 정말 소소한 행복도 느껴지는구나.’
그날 저녁에는 집 근처 순두부찌개 전문점에 갔다. 조그마한 가게였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했다. 오랜만에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까지 한자리에 모여 외식을 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선희지만, 가족들도 새해 첫날만큼은 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앉자마자 선희는 “신나는 저녁 먹기”라는 목표를 회상했다. 그래서 음식을 받기 전에 먼저 분위기를 띄워보기 위해, 식탁 위에서 가족을 향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빠, 새해 다짐 같은 거 하셨어요?”
“글쎄, 올해는 술 좀 줄여볼까…?”
“엄마는요?”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샐러드랑 과일만 먹으려고. 올해 건강 챙겨야 하잖니.”
“오빠는? 형수가 필요 없나?”
오빠는 갑자기 입을 삐죽 였다.
“어휴, 나 대학교 가면 로망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여자친구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더라.”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피어났다. 별것 아닌 소소한 수다였지만, 선희는 ‘이게 바로 신나는 식사구나’라고 생각했다. 요리 자체도 맛있었지만, 사실 주위 사람들과 말 한 마디가 음식의 맛을 배가시키는 법이었다.
그렇게 하루 동안 세 끼를 의식적으로 ‘맛있고 즐겁고 신나게’ 먹자, 이상하게도 선희의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묘한 확신이 들었다.
‘뭔가 내가 마음먹은 대로 작은 소원을 이뤘더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물론, 아직 그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무언가 인과관계처럼 작용해서 ‘맛있게, 즐겁게, 신나게’ 먹으면, 그만큼 긍정적인 일이 나한테 찾아온다고 느끼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 “등가교환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였다.
며칠 뒤, 선희는 방에서 과제를 하고 있었다. 이맘때 고등학교 2학년들이라면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 ‘방학’에 가까운 시기를 즐기고 있을 터이지만, 선희가 다니는 학교는 휴일에 할당되는 독후감이며 방학 과제가 많았다. 교복을 입지 않는 날이 늘어났을 뿐, 여전히 해야 할 숙제는 많았다.
그때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SNS 메시지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천선아’님이 새 글을 업로드했습니다.’
선희는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다. 천선아는 연예계로 최근에 데뷔해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신인 배우였다. 사실 선희가 그녀의 팬이 된 건 천선아가 스타가 되기 이전 시절부터 였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연기 연습 영상을 보고 반해 버렸다
“이 사람, 뭔가 신비롭고 청초한 매력이 있네?”
아직 대형기획사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적도 없지만, 선희는 천선아를 ‘참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하며 응원해 왔다.
새해 들어 천선아가 자신의 SNS에 글을 종종 올리고 있었다.
-올해부터는 작은 목표를 매일 세우고, 달성했을 때 기록으로 남기겠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감사 인사를 한다든지, 매일 아침 물 2컵을 마신다든지 하는 자잘한 목표 말이다. 선희는 그걸 보면서 자신이 세운 ‘맛있게 먹기’ 같은 작은 목표가 생각났고,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처럼 소소한 다짐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선희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마치 둘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물론 천선아는 자기 존재를 전혀 모르겠지만.
그날 밤, 선희는 침대에 누워 천선아가 올린 글을 다시 펼쳐 봤다. 오늘의 작은 다짐이 올려져 있었다.
-이른 아침에 공원 산책하기, 친구에게 진심이 담긴 편지 쓰기, 밤 10시 이후로 휴대폰 안 보기.
천선아는 이 모든 걸 실제로 해냈고, 짧은 후기까지 남겨놓았다.
-아침을 밖에서 맞이하니 몸도 마음도 상쾌했다. 친구에게 직접 손편지를 써 보니 내 감정도 정리되었고, 밤 10시 이후 휴대폰을 안 보니까 숙면에 성공했다.
선희는 은근히 자극받았다.
‘저 사람은 또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도 뭔가 꾸준히 해야지.’
자기 나름의 작은 다짐들, 예컨대 ‘맛있는 아침 먹기, 즐거운 점심 먹기, 신나는 저녁 먹기’를 앞으로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1월 1일부터 시작한 선희의 ‘하루 세 끼’ 다짐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1월 한 주가 훌쩍 지난 시점까지 중도 포기하지 않았다. 보통 선희에게는 큰 의지력을 요하는 목표(예: 다이어트, 영어 100단어 암기 등)는 늘 사흘을 넘기지 못했는데, 이번엔 무려 일주일이나 해내고 있었다.
사실 그 비결은 목표가 너무나도 작고 구체적이어서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걸 해냈을 때 기분이 꽤 좋아진다’는 보상 심리가 작용한 것도 크다. 선희는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도 맛있게 먹었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먹었네, 저녁에 신나게 대화했네’ 같은 식으로 체크했고, 그때마다 작은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선희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언제까지고 ‘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과연 의미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밥을 먹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진작 알았으면 진작했지’ 하는 자괴감도 살짝 생겼다. 여기에 엄마, 아빠, 오빠의 존재도 어느 순간부터는 시큰둥하게 느껴졌다. 늘 집안에서 한 번씩 함께 식사를 하다 보니, 연말연시에는 좋았던 분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의무감처럼 바뀐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해 다짐이라는 게 어차피 한 번 크게 결심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더해졌다.
“지금은 작은 목표라 재미있게 하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잖아.”
회의감이 슬슬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희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바라는 건 뭘까? 그냥 하루하루 즐거운 밥상을 차리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나? 아니면, 좀 더 ‘큰 소원’을 빌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자 딱 하나, 떠오르는 소원이 있었다. 첫사랑 상현에게 마음을 전하고, 그의 마음도 얻는 것. 선희가 좋아하는 남자애는 같은 학교 2학년인 신상현이다. 오래전부터 짝사랑 중이지만, 한 번도 고백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이런 거창한 소원… 이룰 수 있을까?”
선희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작은 다짐들이 작동해서 작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노력의 크기가 커지면 정말 커다란 소원을 이룰 수도 있을까? 마치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선희가 진지한 고민에 빠졌을 무렵, 가족들은 각자 식탁에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아빠가 뜬금없이 기사 한 줄을 읽어주며 말을 꺼냈다.
“야, 선희야. ‘등가교환 법칙’이라는 게 사실 만화나 소설에서 자주 나오잖아. 네가 말한 그거. 작은 노력이 있으면 작은 결과가, 큰 노력이 있으면 큰 결과가 따른다는 건데, 정말 그럴까?”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엄마도 드라마에서 그런 대사를 들은 적 있어. 무언가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오빠는 방에서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근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잖아. 가령 엄청나게 노력해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운이라는 것도 있지.”
이런 대화가 자칫 오래 이어지진 않았지만, 선희에게는 무언의 깨달음을 주었다. 아, 노력한다고 다 되진 않는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만, 세상에 확실한 등가교환법칙도 없는 거지. 당연히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선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나 정말 자신의 커다란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 노력은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선희가 집안일을 돕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장을 보고 돌아오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선희에게 손수레 가방을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선희는 얼른 나가서 손수레를 안으로 들여놓고, 거기에 실린 채소와 과일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고마워, 선희야. 근데 너 요즘 뭘 그렇게 열심히 고민해?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아.”
엄마가 물었다. 선희는 얼버무렸다. 첫사랑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부 털어놓는 건 조금 쑥스러웠다. 그러나 엄마는 마치 눈치채기라도 한 듯,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새해라 그런가? 너도 고민이 많을 테지. 근데 엄마가 생각하기엔, 네가 진짜 원하는 게 생겼다면 그만큼 마음도 단단히 먹어야 돼. 알고 있지? 남들 보기엔 사소해 보이지만, 정작 해보면 진짜 어려운 게 있거든.”
“예를 들면요?”
“예를 들어 매일 연습하거나, 꾸준히 기록을 남기는 것 같은 거. 혹은 상대를 배려하는 걸 내 습관으로 만드는 거. 이런 것들, 생각보다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해. 그게 쌓여야 진짜 소원도 이뤄지는 게 아닐까 싶어.”
선희는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매일 꾸준히, 습관처럼 배려하기.’ 상당히 추상적이지만, 뭔가 와닿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단지 “밥 맛있게 먹기”가 아니라, 그런 다짐을 통해 내 마음 자체를 바꾸는 거였지.’
그날 저녁, 아빠가 갑작스레 말을 걸었다.
“선희야, 혹시 네가 뭘 간절히 원한다면, 그만한 시간을 들여본 적 있어?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게 바로 시간이잖아.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지만, 노력도 안 하면서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 말은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 같았다. 선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드물게도 방에서 게임만 하던 오빠가 선희 방을 두드렸다.
“야, 너 요즘 뭘 그렇게 곱씹고 있어? 혹시 첫사랑 있냐?”
“에이, 그럴 리가…”
선희는 얼굴이 벌게졌다.
오빠는 히죽거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뻔해. 고등학교 2학년이면 원래 그런 고민이 많을 때거든. 근데 내가 팁 하나 알려줄까? 네가 바라기만 하면 절대 안 돼. 상대방은 너를 모를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네가 먼저 다가가야지.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신호는 보내야지.”
무심한 듯 하지만, 오빠의 말은 의외로 정확한 요점을 찔렀다. 선희는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엄마의 조언: ‘습관처럼 매일 배려하고 기록하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아빠의 조언: ‘그만한 시간을 들이는 노력이 공짜로 오지 않는다.’
오빠의 조언: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기다린다고 되지 않는다.’
이 조언들이 합쳐져서, 선희는 자신의 ‘큰 소원’을 이루기 위한 작전을 새롭게 구상하기 시작했다.
작은 결심 → 중간 결심 → 큰 결심
학교 수업이 시작되는 1월 둘째 주 월요일. 아직 정식 개학은 아니지만, 보충 수업을 위해 학교에 모였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선희는 우연히 신상현과 마주쳤다. 상현은 키가 훤칠하고, 놀랍도록 따뜻한 미소를 지닌 소년이었다. 선희는 늘 그의 옆모습을 보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려서, 얼른 시선을 피하곤 했다.
“어, 선희야. 방학 잘 보내고 있니?”
“아, 응… 잘, 보내지 뭐.”
“복도에서 갑자기 마주쳐서 놀랐네. 그래도 이렇게 보면 방학이 끝나가는 기분이다.”
상현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선희는 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장 교실 쪽으로 달려갔다.
‘이건 아니잖아.’
선희는 생각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는커녕, 인사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달려버렸다. 그러면서 오빠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다가서야 한다.’
하지만 다가서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문득, 새해 첫날 결심했던 ‘작은 목표 → 작은 성취 → 큰 목표 → 큰 성취’라는 공식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첫 단계로 조금 ‘큰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그래, 중간 정도의 결심부터 해 보는 거야.”
선희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우선 하루에 세 끼 맛있게 먹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매일 한 사람에게 배려하는 말 건네기’와 ‘하루에 30분은 상현이와 관련된 일을 생각해보기’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두 번 째는 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상현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를 알아본다든지, 같은 동아리에 친구들에게 슬쩍 물어본다든지, 아니면 상현이 올린 SNS 게시물을 조용히 살펴본다든지 하는 식이다.
마치 등가교환의 법칙이랄까. 이 정도의 ‘중간 노력이’ 쌓이면, 상현과 조금 더 가까워질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선희는 잊지 않고 하루에 한 번씩,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말을 건네려 애썼다. 식당에서 줄을 설 때는 “저 앞에 분이 먼저 오신 것 같아요”라며 먼저 양보한다거나, 날씨가 춥다며 떠는 친구에게 “내가 핫팩 예비로 하나 더 챙겼어, 이거 줄게”라고 하는 작은 배려였다. 사소한 말과 행동이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사이에 선희는 훨씬 마음이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하루 30분씩 상현이와 관련된 것들을 떠올렸다. 직접 대화를 시도하기엔 쑥스럽지만, 친구들의 대화를 엿듣거나 SNS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상현은 농구를 좋아해 농구 동아리에 가입해 있다. 종종 주말에 학교 체육관에서 연습 경기를 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볶음밥 계열이라고 한다. 매콤한 볶음밥이라면 뭐든 좋아한다는 소문이었다. 최근에는 스페인 음악에 빠져서, 관련 플레이리스트를 공유받아 듣는다고 했다.
이런 사소한 정보들을 차곡차곡 메모해두면서, 선희는 속으로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자신은 농구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고, 볶음밥을 좋아하긴 했지만 정작 잘 만들 줄은 몰랐다. 스페인 음악도 어디서부터 들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선희에게는 묘한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 놀랍게도 선희에게 작은 행운이 찾아왔다. 학교 게시판에 농구 동아리에서 주최하는 친선 경기 안내 공고가 붙었고, 참가자와 관람 희망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평소라면 농구에 관심 없는 선희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이번에는 눈빛이 반짝였다. 왜냐하면 그 동아리에 분명 상현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관람 희망자는 별다른 자격 제한 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을 움직였다.
‘이거다! 이 경기를 보러 가면, 자연스럽게 상현이와 접촉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선희는 곧장 신청서를 써냈다. 이름, 학년, 반, 그리고 “농구 동아리에 관심이 있어 경기 참관하고 싶습니다”라는 짧은 이유를 덧붙였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뭐라도 해야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농구 경기는 1월 말 토요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선희는 관람 신청을 접수한 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상현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경기 때 구경 갈 예정이야. 너도 나오니?’ 하고 말이다. 평소라면 가슴이 떨려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쓱’ 묻지 못했겠지만, 이미 몇 주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라는 중간 노력을 실천해온 터라 의외로 문장을 쓰기가 수월했다.
그 결과, 상현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어, 맞아! 나도 출전해. 와서 응원해 주면 진짜 힘 날 것 같네. 고마워~”
선희는 핸드폰 화면을 보고 얼굴을 파묻었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쿵쿵 뛴다. ‘이제 드디어 상현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건가?’ 싶은 설렘이 번졌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확정적이지 않았다. 그가 단지 “와서 응원해줘”라고 한 것은 예의일 수도 있고, 선희가 가려고 한다니까 한 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선희는 작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등가교환의 법칙’이 실제로 있다고 믿을 수 있다면, 이제 그만큼의 노력으로 큰 소원을 향해 갈 수 있으니까.
그 ‘큰 소원’이란 바로, 상현의 마음을 얻는 것. 막연하지만, 선희는 ‘이것이 사랑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갑작스러운 한파가 찾아왔다. 뉴스에서는 곳곳의 도로가 얼어붙었고,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린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선희네 학교 역시 이른 아침부터 주차장에 염화 칼슘을 뿌릴 정도로 비상 대책을 세웠다.
그날, 선희는 SNS를 뒤적이다가 천선아의 근황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산책이나 편지 쓰기 같은 작은 목표가 아니라, ‘영어 회화 연습’이라는 다짐을 했다고 했다. 새해 목표 중 하나가 글로벌 오디션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 꿈을 위해 매일 유튜브로 영어 회화 영상을 보면서 연습하고 있다는 글이었다.
‘역시 부지런하네…’
선희는 감탄했다. 그리고 댓글창을 살펴보다가, 여러 팬들이 “수아님 덕분에 저도 자극받아서 공부 열심히 하게 돼요!”라는 말을 남기는 걸 보았다. 그때 선희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와, 이 사람은 진짜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구나. 그게 바로 큰 성공으로 이어지겠지 싶었다.
문득, 선희는 자기 자신도 한 번 영어 회화 도전에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난 아직 그럴 의욕은 없고… 일단 눈앞의 목표, 상현에게 더 가까이 가는 거에 집중하자.’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이상하게도 ‘조금 더 큰 노력을 해야 할 때가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가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건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얻으려면, 스스로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더 크고 멋진 사람이 되어야, 그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 테니까.
그렇게 며칠간 고심한 끝에, 선희는 새해에 또 다른 ‘큰 결심’을 더했다. 일명, 하루 2시간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 쓰기. 여기서 말하는 발전은 여러 의미를 포함했다. 학업이든 운동이든, 어떤 분야든 좋았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첫날, 선희는 곧장 영어 교재를 꺼내 들고, 2시간 동안 회화 연습을 시도했다. 평소라면 30분도 못 버티고 지루해졌겠지만, 새해 목표가 생긴 뒤에는 묘하게 의지가 생겼다. 그리고 그날은 오빠에게 농구 룰과 포지션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기도 했다. “너 농구 동아리 였었지? 포워드, 센터, 가드 이거 어떻게 구분해?”라면서. 오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왜 이걸 공부하고 있나?’ 싶지만, 선희의 목표는 분명했다. ‘상현이의 농구 경기를 더 잘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대화거리도 만들어보자.’ 결국 이것 역시 자기 발전의 일부다. 이렇게 한 발씩 더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의 마음도 열릴지 모르는 거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 2시간씩 무엇인가에 몰입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선희 스스로도 조금씩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늘 귀찮아하던 타이핑 숙제나 과외 과제가 더이상 괴롭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습관’을 몸에 익히게 되면서, 할 일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이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 꼭 상현과의 대화에만 쓰일 거라는 법도 없다. 그저 자신이 몰랐던 영역에 조금씩 발을 들이게 되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이것이 정말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일지도 몰라.’ 선희는 점점 더 열심히 2시간 공략을 이어갔다.
하루는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며, 선희를 부르더니 무언가 노트를 내밀었다.
“이거 좀 봐봐라. 우리 회사에서 올해 신입사원들에게 기획 아이디어를 공모한다는데, 나도 슬쩍 도전해보려 해. 근데 PPT 이런 게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다. 너 요즘 뭘 공부한다며? 그래서 좀 도와줄 수 있니?”
“음, 해볼게요.”
선희는 고민하다가하고 흔쾌히 수락했다. 자신이 PPT를 잘 다룬 적은 없었지만, 요즘 2시간 자기 발전 시간에 컴퓨터 사용 방법도 조금씩 익히던 터라,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 작업을 같이 하면서, 선희는 생각보다 ‘기획’이라는 분야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심지어 아빠가 생각한 아이디어에 대해 인터넷 자료를 조사하고, PPT 슬라이드를 만들고, 이미지나 그래프를 추가하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이런 작업도 다, 내 성장의 일부가 될 수 있구나.’
그렇다면 ‘이건 상현이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아냐, 그건 중요치 않아. 이 자체가 즐거우면 되는 거지.’ 하고 자각했다. 엄마도 그런 선희를 보며 흐뭇해했다. 그리고 식사 중에 말했다.
“선희야, 너 요즘 뭔가 많이 달라졌어. 매일 새해 다짐 때문에 애쓰다가 며칠 만에 지쳐서 늘어져 있던 너를 생각하면, 지금은 엄청 열정적이잖니. 이게 다 큰 목표가 생겨서 그런 건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선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즐겁게 대답했다. 엄마는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그럼, 그 목표가 무엇인지는 묻지 않을 테니, 계속 그렇게 해 봐. 엄마도 말했잖아. 하루에 조금씩 습관으로 노력하는 게 정말 어려운 거라고. 지금 넌 그걸 해내고 있잖아.”
그 말에 선희의 마음이 한껏 따뜻해졌다.
얼마 안 있어, 친구들은 선희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조금 무기력해 보이던 선희가, 요즘은 학교에서 뭔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하루 2시간 자기 개발’이라고는 했지만, 보충 시간 틈틈이 짬을 내어 책을 보거나, 교실 구석에서 PPT 관련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최선희, 너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시험도 끝났는데.”
“그냥… 올해는 열심히 살아보려구.”
“헐, 해 뜨는 서쪽에서 뜨겠네!”
친구들은 놀라면서도, 어딘가 선희에게 호감이 생기는 듯 보였다.
학교 편의점에서 간단히 요기를 할 때면, 선희는 이전과 달리 좀 더 적극적으로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잔돈이 모자라 카드로 계산해야 하는 친구를 위해, 자기 현금을 먼저 내 주며 나중에 천천히 갚으라고 했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쌓이자, 친구들은 선희가 한층 밝아졌다고 느꼈다.
‘어, 나 정말로 변하고 있는 건가?’
선희는 스스로 놀라면서도, 점점 자기 행동이 즐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가끔 상현과 마주쳤을 때도, 전처럼 눈을 피하거나 달아나지 않았다. 대신 “안녕? 요즘 추운데, 농구하기 힘들지 않아?” 정도의 안부는 자연스럽게 묻곤 했다. 그렇게 짧은 대화라도 나누면, 그녀의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드디어 농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 가까워졌다. 1월 말, 토요일 오후 2시부터 학교 체육관에서 친선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선희는 상현을 응원하기 위해, 간단한 응원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물론 대단한 건 아니고, 스케치북에 ‘신상현 파이팅!’이라는 문구를 예쁘게 색칠해 쓴 정도다. 연습장에 여러 번 밑그림을 그려보고, 친구의 컬러펜을 빌려 정성껏 꾸몄다.
경기 전날, 금요일 방과 후. 선희는 체육관 근처에 미리 가봤다. 농구부 친구들이 연습 중인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마지막 리허설 삼아 몸을 풀고 있는 듯했다. 그때, 저 멀리서 상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반짝이고, 빠른 드리블 동작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선희는 몰래 바라보다가, 조금 더 다가가서 지켜 보기로 했다.
‘와, 정말 멋지다…’
선희는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누가 봐도 상현은 멋지지만, 선희에게는 그 모습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치 농구공이 상현을 위해서만 튕겨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후, 공이 코트 밖으로 튕겨나다 선희의 발 밑으로 굴러왔다. 선희는 깜짝 놀라 얼른 공을 주웠다. 그 순간 상현이 달려와서 밝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오, 너 여기까지 왔네? 내일 경기 미리 보러 온 거야?”
“응, 그냥 살짝 구경해봤어… 방해 안 되려나?”
“전혀! 열심히 응원해줘. 나 내일 꼭 득점하고 싶단 말이야.”
상현은 웃으며 말하곤, 다시 코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선희의 가슴이 또 다시 두근거렸다.
‘나 정말 많이 변했네. 예전 같으면 여기까진 못 왔을 텐데. 그리고… 상현이가 이렇게 내게 편하게 말 걸어주다니.’
그녀는 스스로에게 작게나마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내일 경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올랐다.
농구 경기가 열리는 토요일 오후. 선희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해, 객석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학생들이 많이 왔다. 상현이 속한 팀을 응원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상대 학교에서 온 응원단도 있었다. 체육관 안은 유쾌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선희는 가져온 스케치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신상현 파이팅!’이라는 문구가 보이게 조심스레 펼쳐 두었다. 뭔가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작정하고 응원하러 온 이상 이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총 4쿼터로 진행되는 시합이라, 처음에는 다들 몸을 풀면서 차분한 플레이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선수들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선희는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지켜봤다. 상현도 집중력이 대단해 보였다. 가끔씩 코트 밖으로 나오면, 그는 선희 쪽으로 시선을 돌려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희는 속으로 ‘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경기는 치열해졌다. 3쿼터쯤 되니 점수 차는 거의 나지 않았고, 막판 뒤집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커졌고, 선희는 한 번도 그렇게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상현아 파이팅!”을 외쳤다.
결과적으로, 상현이 속한 학교 팀이 근소한 점수 차로 승리했다. 주된 득점원 중 하나가 바로 상현이었다. 마지막 3점슛을 성공시키며, 극적인 결승점을 올렸던 순간은 선희의 뇌리에 선명히 박혔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은 서로 악수를 나눈 뒤 간단한 정리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우르르 코트 안으로 몰려들어와, 친구들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희는 살짝 망설였지만, 친구들을 따라 코트 안으로 들어가 상현에게 다가갔다.
상현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얼굴에는 기분 좋은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런 상현에게 선희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정말 멋있었어, 마지막 3점슛도 대박이었고.”
“고마워. 네가 응원해준 덕분에 힘났어.”
“아, 아냐… 내가 한 건 별로 없는데.”
선희는 쑥스러워서 시선을 살짝 피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상현이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근데 선희야… 혹시, 내일 주말인데 뭐해?”
선희의 심장이 요동쳤다. 내일은 일요일. 원래라면 그냥 집에서 쉬거나, 한두 시간 과외 복습을 하는 게 전부일 텐데. 상현의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친구들과 단체 모임을 가자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정말 단둘이 만나서 시간을 보내자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아직 아무것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 한마디로 인해 선희의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이 펼쳐졌다. ‘등가교환의 법칙’이 실현되는 건가? 내가 그토록 노력했더니, 이제 작은 소원이 아니라 큰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 다가오는 걸까?
선희는 상현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서서히 입술을 뗐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