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민수석, 우물밖 세계에 눈을 뜨다.

부동산 투자 시작함.

by 민수석 Jan 27. 2025

40대 초반에 이직을 하고, 조직의 분위기와 업무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해오던 업무스타일과 내가 속한 팀에서의 업무스타일이 상이했고,

내가 해오던 업무를 하는 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 자리를 만들어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회사 돌아가는 사정과, 업무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고,

조직도를 펼쳐 놓고 각 업무의 담당자를 파악했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서 업무파악이 힘들면,

조직도를 펼쳐놓고 각 조직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각자가 어떤일을 하는지 

파악해보면 전체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준다. 


그런 다음에 내가 어느 곳에, 어떤 사람과 일을 하면 되는지 파악하고

그 사람이 하는일을 유심히 살펴본 후에 부족한 부분을 매워주면서 내 자리를 찾아 갈 수 있다. 


이곳으로 이직한 후 내가 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없고 공백이 많아 보여서

업무에 대해 깊이있게 파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업무의 영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팀장과 협업부서에 나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있어 보였다. 


업무관련 이메일을 보낼 때는 관련있는 부서의 사람들을 무조건 cc list에 넣었다. 

특히 해외연구소와 협업하는 경우에는 직접 메일을 보내면서 조금씩 나의 업무 영역을 넓혀갔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 잡브레인 제공 연봉상위 1%(2021년 0.95%, 2022년 0.99%)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연봉이 얼마인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보다 내가 어떻게 자리잡고 경력을 쌓아가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연봉에 대한 의미는 두지 않았었다. 수입이 늘면 지출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체감하는 수입의 크기는 크기 않았다. 


코로나가 지날즈음, 딸아이의 절친 아버님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평소 나와도 절친한 사이였기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혈액암 투병한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장례식을 다녀와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형도 회사에 올인한 상태로, 평소 술자리와 골프약속으로 항상 바쁘게 살았었다. 

골프약속 중 한자리가 비면 나를 초대해줄 정도로 나를 생각해주던 형이었는데... 


그 해 임원으로 진급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가정적이고 자상하고 건강한 사람이었지만, 

한순간에 젊은 나이에 가족들과 작별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무엇을 위해 이리도 힘겹게 앞만보고 

달려가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 시기를 겪고, 회사에서는 나의 성과에 대해 더이상 보상을 안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외국계 회사와 달리 다른 직원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물가상승률보다 연봉인상률이 작아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상승을 겪게 되었다. 

이직 후 연봉협상시 매년 나올것이라 확신하던 보너스도 안나올 지경에 이르러 

그야말로 나의 연봉은 거의 10년 전으로 돌아갈 상활에 이르렀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나의 열정과 동기부여는, 현실앞에서 좌절되었다. 

직장내에서의 보상에 회의감이 들었을 무렵, 앞으로 무엇으로 현금흐름을 만들까를 고민하다가 

부동산 경매에 빠지게 되었다. 


 부동산 모임에 나가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졌다. 


나는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야 지금의 월급을 겨우 받는데, 

모임에서 투자와 사업을 하는 분의 경우, 

무인매장 셋팅으로 월 1,000만원의 수익을 벌고, 아이들을 캐어하며 집안일 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첫번째 부동산 모임을 참석한 후 닥치는 대로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다. 

그야말로, 민수석 프로수강러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전 12화 10년간 외국계 회사생활 후 만난 국내 대기업 생활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