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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파랑 Oct 07. 2024

Day 2: 용궁댁과 소나무길, 고양이 레오와의 첫만남

#지역살이 #생각 #아산여행

2024.09.24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닫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인데도 바깥공기의 상쾌함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비타민을 안 먹어도 될 것 같은 아침! 새로운 곳에서 맞이하는 하루의 시작이 가뿐해서 ‘뭐든 잘 해낼 수 있는 오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시에 모여 세계꽃식물원을 가기로 했는데 화, 수 정기 휴무였다. 모두 당황했지만 곧바로 용궁댁과 소나무길로 향했다. 용궁댁은 조선 후기의 기와집으로 예전에 부잣집이 사서 지금은 사유지이지만 국가 민속문화재이기도 한 곳이다. 공공의 문화재이지만 사유지. 두 가지 상반되는 특징을 모두 가진 장소라니. 용궁댁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별주부전이 연상되어 동화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름도 장소 자체도 흥미로운 곳이었다. 외롭게 덩그러니 놓인 집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과 함께 있어서 정겨운 느낌이 났다. 역시 집은 사람이 살아야 하나보다. 사유지라 출입을 막거나 입장료를 받는다거나 제한할 수 있는데 모두에게 열어둔 소유주의 마음에 고마웠다. 얼굴도 보지 않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일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며칠 전 비가 많이 와서 소나무길로 향하는 길에 작은 물길이 생겼다.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오랜만에 밟는 흙이라 반가웠다. 그동안 걸었던 산길은 내가 올라가고 있으면 항상 등산복을 든든히 챙겨 입은 분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나무길은 우리뿐이었다. 발소리, 대화소리, 새소리 외에 다른 사람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아서 신기했다. 사실 도고가 아니라 경기도 어느 산, 서울의 어느 둘레길이라고 해도 자연스러울, 평범한 둘레길이었지만 사람이 없다는 점이 도고 마을이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 조용한 곳에 있으면 내 목소리가, 내 발자국이 얼마나 큰지 느껴진다. 괜히 새들을 피곤하게 하는 걸까 싶어 소리를 낮추게 된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말고도 자동차, 공사장, 상점에서 틀어두는 음악 등 아우성치는 것들이 많은데 말이다. 도시가 조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지 않고 조곤조곤 말할 수 있을까? 


 저녁을 먹고 소화시킬 겸 혼자 걸었다. 숙소에서 마을회관이 가까운데 회관 옆에 도더지굴이라는 1층짜리 공유 오피스가 있다. 오피스 문 앞에 ‘뽀시래기’라고 적힌 고양이 집이 있는데 그 앞에 누워있는 치즈고양이가 레오다. 레오가 내게 와서 다리에 몸을 부비고 꼬리로 감쌌다. 한참 쓰다듬어 주다가 가볍게 내 손등을 앙 하고 물었는데 고양이가 익숙지 않아 내 손을 무는 줄 알고 조금 놀랐다. 레오가 기분이 좋아 장난으로 문 것을 바로 알고 안심했다. 이렇게 고양이여도 알 수가 있다. 얘가 내게 공격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직관으로 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적의를 표했다면 모든 감각으로 알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종종 일부러 적의를 내비치고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면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그런 적 없다, 오해다’ 갖가지 말로 변명하는 사람을 본다. 이의를 제기한 사람을 속좁고 이기적이고 피해의식에 잠식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마음들이 다치고 있다. 언젠가 엄마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억울한 사람만 생기지 않아도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거짓말은 하지 말자. 사람을,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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