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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애 Oct 03. 2024

참 고마운 하루

아침 일찍 일어나 내 몸 상태를 확인한다. 어제 아침 갑자기 어지럽더니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오늘은 다름 아닌 우리 합창단에서 실시하는 찾아가는 연주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필 이런 때 아프다니 난감하다. 파트장에게 전화했더니 남은 하루동안 몸조리 잘하고 웬만하면 나오라고 한다. 조금 있다 파트장에게 연락받은 단장이 전화를 했다. 얼른 병원에 가서 영양주사라도 맞고 꼭 참석하라고, 그리고 이번에 연주할 곳이 병원이니 여차하면 응급실로 가면 되니 걱정 말고 자리를 꼭 지키란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거기에는 단원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합창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합창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소통과 조화가 중요하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내 목소리가 전체와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합창에서 각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각 파트가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적인 소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빠져도 전체의 밸런스가 깨질 수 있으니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합창이기 때문에 나 하나쯤  빠져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서로 각자의 역할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 팀워크와 소통을 통해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존중하는 과정이므로 각자의  목소리 위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합창단원으로서의 의무는 우선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행히 자고 나니 어제보다 몸 상태가 좋아졌다. 부지런히 샤워하고 평소보다 정성 들여 화장을 한다. 항상 친절을 베푸는 같은 파트의 단원이 집 앞까지 픽업을 왔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오늘의 찾아가는 연주회는 용인 세브란스 병원이다. 지정된 장소에 도착해 드레스로 갈아입는다. 연주 장소는 병원로비,  환우와 보호자를 위한 연주회다. 병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병원로비는 항상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이 긴장된 얼굴로 오가는 곳이다. 


용인 세브란스 병원은 다른 병원에 비해 로비가 넓어 쾌적했다. 정문 옆에 피아노가 있는 무대가 있고. 무대 앞에 청중을 위한 의자도 마련해 놓았다. 환자와 보호자가 편히 우리의 연주를 들으며 잠시나마 걱정과 시름을 내려놓길 기원한다. 병원 로비의 차가운 공기가 우리의 연주로 인해  따뜻한 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차길 기대하며 무대에 오른다.

환우들과 보호자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기대감과 따뜻한 시선은 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노래를 부르며 그들께 작은 희망의 메시지라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나도 오래전에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겪었던 힘든 순간들과 그때의 아픔이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 오늘은 환자가 아닌 연주자로 무대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감사의 마음이 북 바쳐 울컥 코끝이 찡해져 몇 번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소리에 무척 예민하신 지휘자님이시지만 이런 경우는 용서해 주시리라 믿는다. 

모든 환우들이 하루속히 회복되길 기원하며 연주회를 마무리한다.


연주회를 마치고 정기 모임을 하기로 한 카페로 향한다. 일명 '소프라노의 식탁'이라 불리는 카페이다. 성악작곡가 김한준 선생님과 소프라노 송윤재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으로 맛있는 음식과 차,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는 곳이다. 오늘은 특별히 두 분이 우리 단원들을 위해 직접 연주를 해주었다. 특별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오늘 이 처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아팠던 곳이 사라졌다. 역시 예술은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 아름다운 하루를 기억하며 음악으로 연결된 소중한 우리 단원들, 지휘자 선생님, 반주 선생님과의 공동의 경험을 통한 예술활동이 좀 더 넓고 깊은 자아 발견의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예술은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 참 고마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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