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할머니

단단한 여자

by 민정애


‘단단한 여자’


프랑스에서 존경받는 저널리스트 ‘아닉 코장’ 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성 27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의 제목이다.

"지금의 나는 없을 거예요. 만약에....”로 시작한다.

그 인터뷰에 나를 대입시켜 본다.

오늘 아침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피아노 앞에 앉아 하루 루틴을 시작한다. 바깥 날씨는 영하라고 한다. 나는 반팔 차림이다.

겨울의 한 복판에 따뜻한 아파트에서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내가 피아니스트가 아닐까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대답은 전혀 아니다. 그저 중학교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아이들 장가보내고 늦게 시작해 거의 독학으로 틈틈이 연습하고 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니 웬만한 곡은 악보만 보면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머니가 된다. 같이 사는 남편도 이 느낌은 모를 것이다.


내 나이 올해로 70이 되었다.

결혼생활 46년째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연예인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꽃꽂이를 배워 플로리스트로 활동했고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 영어 강사도 되었다. 나의 스토리를 기록하다가 수필가로 등단도 했다. 장편 소설도 한 편 썼다. 노래하는 음유시인 ‘패티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깊은 슬픔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슬픔의 방향을 바꾸어 기쁨을 발견하는 행위’라고.


글쓰기를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마음을 닦아 그릇됨을 스스로 고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운 것 또한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뿐인가!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바쁘게 살다 보니 손이 빨라졌다. 정확한 레시피 용량 없이도 손대중 감각으로 웬만한 요리 한 접시쯤은 뚝딱 만들 수 있다. 간이 딱 맞는 근사한 요리 뚝딱 잘 만든다고 남편이 나에게 ‘뚝딱’ 이란 별명을 지어 주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 불가이다.

요즘 새로 하는 공부는 바로 블록체인이다.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디지털 시대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려면 할머니도 죽는 날까지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번 치른 블록체인 강사 자격증 시험에도 합격했다. 신지식인 상도 받았다.


거울을 본다. 할머니 한 분이 거기서 미소 짓고 있다.

얼굴에 주름은 주글주글 하지만 이 얼마나 멋지고 단단한 할머니 인가?

세상에는 나 보다 멋진 할머니가 너무 많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나는 나로 만족한다.

나는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 냈다.

나는 관계 부자이다. 남편과의 관계, 아들과의 관계, 며느리들과의 관계, 손자 손녀들과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친척, 이웃과의 관계 모두 원만하다.

이만하면 잘 살아 낸 것 같은데 그동안 수고했다고 상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라도 나에게 상을 주련다.

그 상은 바로 피아노 치며 노래할 수 있는 지족 한 시간이다.

오늘의 연주는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로 시작해 보자.

그럼 지금의 나는 없을 거예요 만약에... 의 대답은?

돈 잘 버는 남편이 있었더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존감 없는 할머니가 되어 있지 않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