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나의 침대 머리맡에는 읽고 있는 책 몇 권과 수강생들이 써서 제출한 수필 묶음이 항상 놓여있다. 시간 날 때마다 수강생들의 수필을 천천히 읽어 본다. 글 솜씨가 점점 향상되는 것을 느끼며 보람을 느낀다. 지난번 수업 시간에 수강생 한 분이 ‘선생님 덕분에 인생이 풍요로워졌어요.’라는 말씀을 했다. 그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책임감을 느낀다. 나로 인해서 여러 사람의 인생이 좀 더 풍요롭고 의미와 재미와 보람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나 또한 이 교실을 통해서 좀 더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더욱더 지혜로운 인격을 갖추는 시간이길 바라본다.
처음에 글쓰기를 막막해하던 수강생들이 매주 한 편의 수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라 믿는다. 글을 쓰며 자기 안에 켜켜이 쌓아 놓았던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노년이 풍요로운 것은 당연하다. 우리 교실의 학생들은 60대에서 80대까지의 어른들이다. 격동의 세월을 통과한 시간들이 모여 쓰인 글이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이산가족의 안타까운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사연, 제자들과 애틋한 정을 오래도록 나누는 초등학교 선생님 출신의 따뜻한 이야기, 부부가 같이 사진을 찍으며 전국을 여행하는 정겨운 이야기, 손주들의 거름이 되고 싶은 할머니의 진솔한 마음, 투병하는 남편을 담담히 지켜보아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 같이 나이 들어가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순례자 같은 자매들의 사연, 70세 이상의 깊은 내공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아름다운 문구를 찾아내는 분의 여행 체험기, 집안의 기둥이었던 젊은 오빠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가슴 아픈 가족사, 음악회, 역사 탐방 등 여유 있는 문화생활의 글, 나는 이렇게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자기 다짐의 글, 젊었을 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과 공부를 하느라 바쁜 생활을 표현하는 글 등 다양한 글들이 나온다. 물론 수필다운 좋은 글도 있고 아직 투박하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고 뚜렷한 자기 철학도 없는 그저 생활 잡문 정도의 글도 있지만 솔직한 자기표현을 지면에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쓰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고 눌러 놓았던 자아를 해방시키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글쓰기를 하는 목적일 것이다. 나는 우리 교실이 글 솜씨를 자랑하는 교실이 아닌 마음으로 글을 쓰는 교실이길 원한다. 마음으로 쓰다 보면 독자들의 마음에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강사로서 솔직한 자기 고백을 안 할 수가 없다.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도 이 시간을 통해 독서량을 늘리고 공부의 참 맛을 느끼고 싶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좋은 책 한 권을 소개받았다. 작가 김 병완의 ‘공부에 미친 사람들’이다. 저자는 공부를 이렇게 정의했다.
‘공부는 우리를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이끌어 주기도 하지만 그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 설정한 내면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 생각의 벽을 허물어 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공부의 진정한 기쁨이 있다. 진짜 공부가 시작되면 자신의 무지가 보이고 아집이 보이며 편협된 생각들이 보인다. 끝없이 자만에 빠졌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비뚤어진 자아의 실체가 정확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렇게 억눌리고 뒤틀린 과거의 나를 뛰어넘어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이끌어 주는 수단이 바로 공부다. 공부로 인한 부자가 되고 공부로 인한 자부심에 넘치고 내 안에 있는 내가 쑥쑥 자라는 느낌을 여러분들이 가졌으면 한다.’
링컨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다. (우울증을 독서와 글쓰기로 이겨 냈다.)
피터 드러커 ; 사람이 호기심이 없어지면서부터 늙는다. 배우면 젊어지고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유다 리브 라제 로프 ‘늙음은 무지한 사람에게는 혹독한 겨울이지만 공부한 자에게는 수확의 계절이다.’
공자 ;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공부를 가장 수준 높은 인격을 갖출 수 있는 삶의 모습이라고 정의했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