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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16. 2024

장애해방은 동물해방으로 가는 입구

장애학 공부가 제 삶과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매주 당장함께 모임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웹접근성에 대한 공부는 크게 진척이 있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어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간다는 느낌이 무엇보다 제 삶에 활기를 되찾아주었습니다. 영어공부와 방통대 수업까지 더해져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 가장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시즌 4에서는 '횡단과 교차: 소수성들은 어떻게 만나는가'를 다룬 책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장애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였던 장애와 동물 해방의 교차성을 다루게 되는 시즌이라 시작 전부터 설렜습니다.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부심>, 수나우러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 엘리슨 케이퍼의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순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읽은 책의 작가는 모두 장애 당사자였고, 그동안 제가 읽은 책에서는 보지 못한 경험들이 가득했습니다. 시즌3에 시간에 치이듯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는 지치는 마음도 없지 않았던 때 논문 형식이 아닌 에세이 형식의 글을 읽게 되자 조금쯤 숨을 돌리는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책들도 이야기하자면 할 말이 한가득이기 때문에 따로 글의 꼭지를 따서 다루어야 할 만큼 이야깃거리가 풍성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짐을 끄는 짐승들>만을 다루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글 쓰는 일로부터 멀어진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글은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써야 한다는 생각 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우리 사회가 신성시하는 ‘능력주의’에 기초한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이 책에서는 다른 말로 ‘비장애중심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비장애중심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이 의심의 여지없이 동물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믿게 된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동작, 사고, 존재 방식이 동물들보다 정교할 뿐 아니라 우리를 [동물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든다는 생각에 불을 지핀다. 열등한 야만 상태에 있는 동물은 별다른 윤리적 고려 없이 이용될 수 있다. 동물을 연상시키는 인간들(유색인종, 여성, 퀴어, 빈민 그리고 장애인 등) 또한 지적으로 모자라고, 가치가 적은 존재로, 때로는 심지어 인간 이하의 존재나 비인간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특정한 능력이나 역량들이 인간을 정의할 때 핵심 요소가 되고, 인류와 나머지 동물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 된다.

121쪽, 수나우러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글쓰기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싶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같은 강하고 아름다운 신체를 가지고 싶다는 저의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의 기반을 비장애중심주의라고 부를 때 이 신념은 저의 삶을 옥죄고 있었고 제 주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장애중심주의가 그은 경계선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 속에 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버둥조차 허락되지 않아 경계선에 들어갈 기회조차 얻지 못한 존재들 중에는 대부분의 경우 장애인과 비인간동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경계선의 근거를 파헤치는 일은 따라서 장애와 동물 모두의 해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자 핵심임을 수나우러는 집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처음 다 읽어냈을 때 저는 수나우러가 자신이 다루려는 주제가 얼마나 오해받기 쉽고 다루기 어려운지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장애와 동물운동의 교차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치열한 논쟁들로 처음부터 바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장애인은 소나 개, 돼지가 아닌 인간이다’라고 주장하는 장애운동 진영과 이러한 주장이 가진 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동물운동 진영의 대립, 피터 싱어가 <동물해방>에서 주장한 ‘쾌고 감수능력’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해야 하는 기준이 됨에 따라 이 주장에서 파생된 안락사와 동물복지 논쟁, 자연과 독립에 대한 신화가 어떻게 돌봄과 상호의존을 평가절하하는 사회를 만들었는지 등이 그것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가 이러한 문제의 본질에 차근차근 접근할 수 있도록 <짐을 끄는 짐승들>은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나우러는 이 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본론으로 들어가지 전 충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인간이 이성과 논리보다 감정과 기분이 우선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대화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말의 내용보다 대화하는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그 이유가 상대의 비언어적인 태도에서 내가 나의 진심을 말해도 공격받지 않고 수용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하면 대화는 상대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뻔한 말들로만 채워집니다. 좋은 대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대화 참여자들의 성숙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의 기본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경험이 따라야합니다. 가치 있는 일에는 그만한 시간이 따르게 마련이니까요.

이런 이유로 저는 수나우러의 글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다루는 내용 이전에 느껴진 어떤 태도 같은 것에 감동했습니다. 장애와 비인간동물에 대한 성숙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태도가 절실하다는 것을 비건 지향을 실천하며 끊임없이 접해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짐을 끄는 짐승들>에 대한 저의 감상을 간단히 소개하는 차원에서 넘어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장애와 동물의 교차성은 많은 공을 들여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음으로써 저는 근래 들어 읽어온 책들에서 얻은 퍼즐조각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듯했습니다. 제가 마주한 현실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품은 질문은 ‘세상을 움직이는 비장애주의 시스템 앞에서 나라는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나아갔습니다. 웹접근성 전문가가 되는 것이 그 하나의 방편이라는 마음으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냈습니다. 더디게만 느껴지는 저의 공부 속도가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나 혼자 애쓴다고 세상이 바뀔까 싶은 마음은 여전히 들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제가 개인으로서 느끼던 무력감을 넘어서게 도와준 두 번의 북토크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농장 동물과 공장식 축산 농장, 도살장의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동물 착취에 의존하며, 동물은 바로 이 사람들에 의해 다치고 살해당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산업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동물의 취약성은 이 산업이 인간, 동물, 환경을 그야말로 얼마나 처분/해고 가능하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기는지 폭로한다. 종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이런 취약성은 노동자, 동물, 환경주의자 그리고 생명에 무관심한 식육산업을 문제제기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연대를 위한 강력한 기회를 만들어낸다.

317쪽, 수나우러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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