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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30. 2024

도살장 앞으로

12월 초 당장함께 단톡방에 하루님이 본인이 기획한 '동물이 되는 시간' 프로그램 링크를 올렸습니다. 12월 중순쯤 시작되는 프로그램으로 총 이틀 동안 열렸습니다. 첫날은 읽기의 집에서 하루님이 제작한 '검은 환영'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뒤이어 '동물이 되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한 초청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제 눈길을 끈 것은 다음날 행사였습니다. 그 행사는 바로 화성 축산물유통센터에서의 도살장 비질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질(Vigil)이라는 단어가 낯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애니멀피플] 르포/서울애니멀세이브 ‘비질’ 기사에서 따르면 비질은 캐나다 동물권단체 ‘토론토 피그세이브’(Tronto Pig Save)에서 시작됐습니다. 토론토 피그 세이브를 설립한 아니타 크라이츠(Anita Krajnc)는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도로 위에 도살장으로 가는 트럭이 밀려있는 것을 보고, 당장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달려와 굶주렸을 돼지들에게 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행동은 이후 돼지뿐 아니라 소, 닭 등 다른 농장동물들의 고통을 증언하는 집회로 확장됐습니다.

저는 DxE korea에서 진행한 비질 후기를 보고 처음 비질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팝케스트에서 듣게 된 DxE 활동가의 말에 따르면 비질에 참여한 이들 중 압도적인 규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무력감에 빠져 동물해방운동을 떠나게 된 분들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현재는 비질을 잠정 중단한 상태이고 참여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보살필 수 있도록 행사 진행 방식을 보완해 추후에 다시 진행할 계획이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비건 지향을 시작한 초반이었던 당시의 저는 더더욱 비질에 참여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비질은 제 관심에서 벗어났습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마주한 비질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짐을 마음에 지고 있었던 저에게 비질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킨 마음은 전과 사뭇 다랐습니다. 프론트엔드를 그만두는 것이 분명해졌음에도 그다음 걸음을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비질이라는 단어를 프로그램 소개란에서 봤을 때 제 안에서는 이 막막한 불안의 나날에 뚜렷한 경계를 그을 수 있는 일을 마주한 것 같은 설레임 같은 것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약간의 조바심과 기대감을 안고 이틀에 걸친 프로그램에 참여 신청을 했습니다.


회사에 연차까지 냈지만 비질 전날까지 망설임은 계속되었습니다. 같이 사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사놓은 감자도 삶지 못하고 당일이 왔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체감상 영하 11도 정도의 추위가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제 안에 남아있는 용기를 그러모아 약속한 시간까지 오산역에 도착하기 위해 빈 페트병과 간식을 담아 출근시간보다 이르게 집을 출발했습니다. 한파가 예상되는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약속장소에 5명도 안 모일 것이라는 저의 예상과는 달리 예상보다 두 배 되는 인원이 모였습니다. 

하루님의 지인이라는 뮤지션분도 있었고 충청도 지방에서 새벽부터 출발해 올라왔다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분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참여하게 되었다는 환경 관련 활동가분, 노동현장 관련 르포를 쓰신다는 기자분, 환경 글쓰기 모임에서 글을 쓰고 계신다는 도예가분도 계셨습니다.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분야의 분들에게 서로 궁금한 점들을 묻고 싸 온 음식을 나누어 먹자 제 몸에서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이끌이인 사이님은 한 달에 한 번 화성에서 비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지방의 도살장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직원들이 트럭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곳도 있어 최근에는 화성 센터만을 정해놓고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이곳 센터는 그래도 직원분들이 크게 적대적이지 않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도 했습니다.

12시쯤 도살장 앞 공원 정자에서 홍은전 작가님과 지인 두 분이 합류했습니다. 사이님께 비질에 대한 안내사항을 듣는데 방한부츠를 신었음에도 벌써 발의 움직임이 둔해졌습니다. 돼지들도 성격이 달라 활발한 성격의 돼지들은 물과 감자를 내밀면 먹으러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숨어버리는 돼지들도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겨울이라 추워서 물을 잘 안 마시려 할지도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다르게 돼지들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상하다고 한 지 10분 정도 지나자 돼지소리로 추측되는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큰 철문 건너편에 정차해 있었습니다. 눈짐작으로 10대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사이님은 저번 달까지는 없었던 철문이 도살장 건물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신 눈치였습니다. 아무래도 도살장 마당을 못 보게 새로 설치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불길한 예감처럼 트럭 운전사들은 저희가 트럭 가까이 다가가 물을 주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상당히 불쾌해하며 왜 사진을 찍느냐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왜 사진을 찍으면 안 되냐는 물음에 ‘안되지. 이건 영업 방해잖아’와 같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물을 주려고 하니 물 주면 나중에 고기 무게 재는데 문제가 된다며 창살 사이로 조그맣게 열어놓은 철문들마저 도로 닫아 버렸습니다.

듣던 것과 다르게 돼지들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계속 운전사들의 눈치를 보며 뒤이은 트럭들을 기웃거렸습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악취는 참을만했습니다. 난생처음 본 돼지들은 사진에서 본 것처럼 눈이 충혈되어 있고 입 주변에 토사물이 묻어있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다쳤는지 귀 근처에 피가 잔뜩 묻은 돼지도 있었습니다. 선뜻 손이 내밀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제지하러 달려올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악취와 오물로 범벅된 돼지의 몸을 보자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거부감은 쉽게 무시하기 어려웠습니다.

20분에 한 번씩 센터의 철문이 열리고 두세 대의 트럭이 연달아 들어갔습니다. 처음의 대치와는 다르게 뒤이은 트럭 운전사분들은 저희를 크게 저지할 의사가 없어 보였습니다. 같이 온 분들이 삶아온 감자를 꺼내 돼지에게 먹였습니다. 자연스레 돼지의 몸을 쓰다듬는 분의 모습을 보자 저도 용기가 조금 났습니다. 혹시나 손을 물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을 딛고 까치발을 한 채 제 키보다 조금 높은 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민 손이 민망할 즈음 조심스럽게 돼지 한 마리가 제 손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 만져본 돼지 코는 따뜻했습니다. 추위에 손의 감각이 사라져 가고 있을 때라 계속 그 부드러운 코에 손을 대고 있고 싶었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을 무서워하는 쪽보다 그렇지 않은 돼지가 더 많았습니다. 페트병 마개에 뚫어 놓은 구멍 새로 흘러나오는 물도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잘 마셨습니다. 감자를 천천히 씹어 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시나 그들의 앞에 어떤 일이 준비되어 있는지 떠올라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빨갛게 얼어붙은 손을 내미는 분 중에는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기도 했습니다.


1시간 정도에 걸쳐 줄 선 트럭들이 모두 철문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닫힌 철문을 지나쳐 바로 옆에 있는 축산물 직거래시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 당일 도축된 동물들을 정육해 판다고 했습니다. 건물에 화장실이 있어 온몸에 튄 오물을 급한 대로 씻어냈습니다. 손에서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평소보다 오래 비누질을 하고 나왔더니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건물 관리자 한 분이 저희 일행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보고 건물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시간이 남아돌면 집에서 잠이나 자셔요. 이럴 거면 대통령실 앞에서 할복을 하면 되지’ 같은 이해 못 할 말을 들으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당황스럽게도 제 안에서는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는 돼지들을 만난 지 불과 10분도 안돼 불과 하루 전 그들과 같은 운명을 미리 지나온 몸들에서 나온 피나 붉은 살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시 처음의 정자 아래로 돌아와 아무래도 센터 자체에서 직원들에게 지침이 있었던 것 같다고 사이님이 낭패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홍작가 님은 생각보다 직원분들이 화를 내지 않고 태도가 공격적이지 않고 정중해서 의외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각자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모두 저만큼 놀라고 슬퍼 보였습니다. 돼지들과의 만남에 집중하기엔 제 자신의 안전이 여러모로 불안했던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봤던 돼지들을 묘사하는 식으로 제 차례를 넘겼습니다.

10분 정도 후에 차들이 달리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도살장 철문 앞에 섰습니다. 사이님이 튼 음악에 맞춰 백팔배를 하는 동안 저희들은 그 곁에 서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철문 안에서 찢어질 듯한 돼지의 비명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차들이 그 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게 이곳에서는 일상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그제야 울음이 나왔습니다.


전에 <시설을 나온 몸들> 행사에서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가 비질을 하고 돌아오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직거래시장을 둘러보던 때 신발 바닥에 묻은 피를 채 닦지 못하고 지하철을 탔을 때의 심정에 대해서였습니다. 자신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수 백의 죽음을 마주하고 걷는 도시의 거리는 언제나 그랬듯 활기차고 고깃집 앞에는 손님들이 가득한 모습이 그렇게 이상해 보였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퇴근시간 사람들 사이에 끼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저를 둘러싼 세상이 낯설어 어쩔 줄 모르겠는 심정이었습니다. 서 있기도 버거울 만큼 피로했기 때문에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악취가 벤 옷을 벗어던지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은 뒤 밥을 먹는 제 모습을 머릿속에서 반복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후에 찾아보니 화성 도살장에서 하루 도축되는 돼지가 약 2천여 마리였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불과 3시간 거리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생명이 매일 죽어간다는 게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거짓말 같았습니다. 돼지들을 만졌던 손의 악취가 제가 꿈을 꾼 게 아니라는 걸 계속해서 일깨워주었습니다. 그 악취도 하룻밤 자고 나자 사라져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이번 연재에서 풀어보고 싶었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편의 만남은 특히나 읽기 불편하셨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썼습니다. 제 딴에는 이번 편에 소개한 비질이 제가 여태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데 영향을 준 통과의례 같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질을 경험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저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덜 망설이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과는 조금쯤은 다른 좌표에 위치하고 있는 현재의 저에 대해 다음 편에 이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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