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낸 계절과 다시 만난 계절
엄마만 느낄 수 있는 기적
태.동.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라고.
세상 다정했던 사람과 평온한 나날을 보내며,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태동이 처음 느껴진 날, 그 작은 움직임이
나를 세상 가장 온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뱃속의 작은 존재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고,
그 움직임은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적이었다.
유산으로 아픔이 스쳐간 순간
세상 소중한 존재가 내 품에 안기기까지,
우리에게도 아픔의 시간이 스쳐간 적이 있었다.
결혼 3년 차,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석 달 만에 찾아온 아가.
입덧이 점점 심해지던 어느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속이 멀쩡해지고,
몸의 변화가 뚝 멈춘 듯한 그 고요가 낯설었다.
임신 7주 차가 되던 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네요. 수술 날짜를 잡으시죠.”
그 순간, 내 마음속 모든 빛이 꺼져버렸다.
신랑과 산부인과 주차장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함께 꺼이꺼이 울던 그 시간은,
아마 우리가 함께 살아온 세월 중 가장 깊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원망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이건 나만의 불행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을 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아픔을 겪었고,
그 후에 건강한 아이를 품었다는 이야기가 내게 작은 희망이 되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나는 소파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전날 복용한 약은 독했고, 밤늦게 몰려온 복통에 응급실로 실려가 진통제를 맞아야 했다.
수술을 위해, 나는 스스로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랐다.
수술실 한쪽에는 출산을 앞두고 대기하던 임산부들이 있었다.
같은 공간 안에서, 누군가는 생명을 맞이하고, 나는 생명을 떠나보내야 했다.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이별의 침묵이 함께 흐르던 그 순간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시간이었다.
훗날, 출산을 앞두고
다시 그 수술실 문을 들어섰을 때
그날의 슬픔보다 현재에 대한 감사가 더 크게 밀려왔다.
아이를 잃었던 그날의 내가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적을 꼭 지켜내겠다는 다짐이 함께 있었다.
쿵쾅 울리는 심장 소리
1년 후, 다시 찾아온 두 줄.
초음파 속,
쿵! 쾅! 쿵! 쾅!
힘차게 울리는 심장 소리를 처음 들은 날,
우리는 아이의 태명을 ‘쿵쾅이’라 지었다.
심장 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떠나보냈던 첫 아이를 떠올리니, 그 순간의 소리는 더없이 소중하고 기적처럼 느껴졌다.
마치 아이가 “이번에는 꼭 만나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는 초조함과 기도로 이어졌다.
아침마다 배 위에 손을 얹고 ‘오늘도 잘 있지?’ 속삭이며 잠들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소중하게 우리에게 다가온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나에게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출산의 고통쯤은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엄마니까.
그토록 기다린 만남이 이제,
단 한 걸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