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신 선택한 시간

웹기획자에서 셀러로, 그리고 엄마가 되기 전

by 피글레미안



꿈의 시작


라떼는 말이야~
고등학생 시절, 아날로그 모뎀의 '삐비빅' 소리에 설레던 세대였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10살은 어린 내 동생은 ‘모뎀이 뭐야?’라고 물을지도)

컴퓨터와 빠르게 친해진 덕분에 수업 시간마다 친구들의 학습을 돕는 ‘선생님 보조’로 나서곤 했는데, 내가 잘하는 걸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일이 어쩐지 참 뿌듯했다.

그즈음, 언니가 '인터넷정보학과'에 입학을 했다.
온라인에서 메일을 주고 받거나 검색을 하는 것 정도면 충분했던 시절에 수업 과제로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다니!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유레카!!


'나도 저런 일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그때 마음속에 또렷이 자리 잡았다.
그 후로 대학교도 관련 전공으로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웹 기획자의 길을 걷게 됐다.








기획자의 삶, 그리고 결혼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도 일은 쭉 이어졌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때 신랑은 정말 사기결혼 인 줄 알았단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까지 아플 수가 있지?” 이런 마음이였다고.

IT 업계의 야근 문화는 지금보다 훨씬 심했고,
밤 10시 퇴근이면 “오늘은 일찍 가네?”라는 말을 듣던 시절이었다.
20대 후반, 야근과 철야를 당연하게 여기며 버티던 내 몸은 이미 꽤 많이 망가져 있었다.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잠든 날도 있었으니까. 퇴사를 결심했던 마지막 프로젝트 때는 한 달 동안 하혈을 할 정도였다.

결국 신랑과 상의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체력을 회복하며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두 번째 시작, 나의 브랜드



결혼을 했을 당시, 셀프웨딩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따라 셀프웨딩 소품을 중심으로 인테리어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

내 감각을 좋게 봐준 MD분들 덕분에 디자인 전문 쇼핑몰에 입점도 하고, 오프라인 매장 한 켠에 내가 만든 소품들로 공간을 채우기도 했다.
곳곳의 매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제품을 세팅하고,
‘내 공간’을 만든다는 게 꽤 짜릿한 일이었다.

기획자의 감각과 셀러로서의 성취가 만나는 그 지점에서, 나는 다시 ‘일하는 사람’으로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였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물건들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나가는 장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설렜다.







그 겨울, 마지막 시즌


그해 겨울, 나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위한 소품과 공간을 기획하고, 그 결과물을 손으로 하나하나 진열하며 눈앞의 계절을 공간에 담고 있었다.

출산을 한 달 앞둔 만삭의 몸으로, 홍대, 명동, 동대문을 오가며 매장을 셋팅했다. 반짝이는 오너먼트, 따뜻한 전구, 작고 예쁜 리스로 꾸민 공간이 마치 나를 위한 무대 같았다. 배는 무거웠지만 마음은 들뜨고, 몸은 피곤했지만 손끝은 설레었다.

그리고 그해 마지막 셋팅을 마친 날, 매장을 나서자마자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졌다.

차에 올라탔을 때, 도로는 이미 눈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하얗게 눈이 퍼부었고, 평소라면 한 시간 거리인 집까지 세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그 여정이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랬다. 하지만 그 날, 그 눈, 그 순간. 마치 겨울이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눈 속을 천천히 가로지르며 나는 생각했다.

'수고했어. 멋지게 마무리했어'
'아가야, 우리 곧 만나'

그날 내리던 함박눈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아 있다.




눈발 사이로 번지던 불빛,
서서히 느려지던 마음,

뱃속에서 조용히 꿈틀대던 작은 생명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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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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