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장도 못 받아쓰던 아이

언니의 방학일기를 훔쳤다

by 피글레미안



초등학교 1학년.
나는 늘 알림장이 비어 있었다.


선생님께서 불러주시는 알림장을 받아 적지 못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알림장을
다시 받아 적는 게 일상이었다.


“너 성희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 시절 알림장도 제대로 못 써오던 나를 기억하는 우리
집 식구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친구 성희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예전에는 1, 2월생은 조기 입학이 가능했기에,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얘가 생일이 빨라서 학교를 일찍 간 거잖아.
그래서 또래보다 느린가 봐.”


나처럼 학교를 일찍 갔던 언니는 알림장을 잘 써왔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냥...
엄마의 위로였던 것 같다.


하하.




그때의 나는,
글쓰기가 정말 어려웠다.


방학 숙제로 내주는 ‘방학 일기’는 특히 더 힘들었다.

나는 어김없이
“(나는) 오늘..” 이라는 문장으로 일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육하원칙에 따라 써야 한다고 배웠기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를
열심히 꼭꼭 눌러 담아 썼건만..

“너는 왜 맨날 똑같이 쓰냐”는
언니의 말이, 그땐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언니의

지난 방학일기를 훔쳤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한 번은 언니의 지난 일기장에 견출지를 붙여
내 이름을 적고, 그대로 방학 일기를 낸 적도 있었다.


견출지 뒤로 비치는 선명한 언니의 이름.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를 떠올리면
지금도 참 깜찍해서 웃음이 난다.


내가 엄마가 되어 돌아보니,
그건 당돌함이었을까, 똘끼였을까.
우리 딸이 그런 일을 했다면..
와우......!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랬던 내가, 스스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느낀 건 20대 즈음이었다.


한창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이었고, 나도 그 바람을 따라 한 번쯤 떠나보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호주행 항공권이 걸린 공모전에 응모하게 되었고
그렇게 얻은 기회로 나는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 여행 속에서 나는 일기를 썼다.


배낭여행비를 아끼느라
피시 앤 칩스와 누룽지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컸던 날들.


그 하루하루의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아
기록으로 남겨두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온라인 연재를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나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다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소중한 시간들을 지나오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좋아했던 것들을
조금은 멀리 두고 있었더라.






지금 나는,
그 시절의 마음을 다시 꺼내려 한다.

아주 조용하게,
아주 솔직하게.




이 마음이
누군가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ㅡ 다음 이야기 ㅡ

시드니로 가는 횡단열차는 사막을 달리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문득 말했다.
“이 여행, 꼭 글로 남길 거야.”

그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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