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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령 Oct 21. 2022

기억의 그림자

이별 그 후

이별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함께했던 추억, 잘해주지 못했던 기억, 그 모든 것들이 문뜩 떠올라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2017년에 나는 두 번의 이별을 겪었다. 15년을 함께해온 두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이다. 바람이 매서웠던 2월의 어느 날, 출근한 사이 조용히 떠난 대지. 그리고 같은 해 9월, 쇠약해진 까미마저 대지의 뒤를 이어 내 곁을 떠나버렸다. 나의 유년 시절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두 아이와의 이별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그 슬픔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괜찮아, 나는 어른이잖아’라는 말을 나 자신에게 전하며, 그렇게 슬픔을 이겨내려 애써보았다. 




슬픔은 억지로 이겨내려 할수록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까미와 대지가 없는 아침이 밝았다. 포근한 이불 그 틈 사이로 내 다리를 베고 자는 대지의 모습, 침대 밑에서 ‘타다닥’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고 있는 까미의 모습, 나는 그 모습들을 상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이 떠난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생활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고는 한다. 사실,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바라볼 때면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떠오르는 거지만 말이다. 슬픔을 억눌렀던 것에 대한 후유증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거의 매일 아이들의 모습이 그린 듯이 떠올랐다. 밥을 먹을 때면 식탁 밑에서 낑낑거리며 음식을 탐내는 까미의 모습이 떠올랐고, 화장실에 갈 때면 화장실 문턱에 두 발을 올린 채 나를 바라보는 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

어느 일요일 오전 나는 회사로 출근했다. 직무교육의 일환으로 멘탈 관리 강의를 들으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교육은 역시나 굉장히 지루했다. 그러던 중 명상을 위해 눈을 감으라는 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 심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나는 눈을 감고 강사님의 말소리에 따라 명상을 시작했다. 왠지 심장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심장의 깊숙한 곳으로 점점 들어가는 느낌을 느껴보세요”

여느 명상들처럼 이해하기 힘든 요구 사항이 강사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는 명상을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강사님의 이야기를 점점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나요? 그것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해보세요”

‘간절히 바라는 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앞에 까미와 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내 방에서 나를 바라보면 뛰어다녔고, 나는 아이들을 쓰다듬어주었다.


“원하는 바를 이미지화하다 보면 분명 그 일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자, 이제 눈을 뜨세요”

강사님의 입에서 명상 마무리 멘트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바람을 상상해버린 나는 두 눈을 더 질끈 감으며 울음을 참아냈다.    




요즘도 나는 아침마다 까미와 대지의 사진을 보며 인사를 건넨다. 쉽게 잊을 수 없었던 이별의 고통은 큰 흉터로 남아 내 안에 자리 잡아있다. 살다 보면 또 다른 수많은 이별을 맞닥뜨리겠지만, 내가 능숙하게 새로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겁이나기도 한다. 부모님과 반려묘, 나의 동생, 나의 남편, 나의 친구들... 소중한 것들이 늘어갈수록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간다. 매일같이 떠오르는 까미, 대지의 모습을 언제쯤이면 웃으면서 바라볼 수 있을까? 이별 앞에서는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그리운 그 모습들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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