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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령 Oct 21. 2022

타로술사와 인간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이 꿈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짜여진 시나리오는 아닐까?

나는 한 번씩 나의 삶이 실존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한밤중에 몽롱한 상태로 깨어나 화장실 거울을 바라볼 때면 매일 보는 나의 얼굴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마치 꿈을 꾸는 듯이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현실 같은 꿈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 꿈속에서 나는 바다마을에 사는 남자아이였고, 낚시를 즐겼으며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고 매일 어머니가 지어주는 가마솥 밥 냄새가 낡은 오두막 집을 감쌌다. 꿈속의 나는 굉장히 사랑받는 아들이었다. 그러던 중 알 수 없는 괴인들이 배를 타고 와 마을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그 괴인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한 곳에 모았는데,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리에서 이탈하여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분명 전속력으로 뛰었지만 다리는 굉장히 무거웠고 ‘퍽’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모래사장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순간 모래의 감촉이 나의 볼에 느껴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현실감 넘쳤던 그 꿈이 계속해서 잊혀지지 않았다. 볼에 느껴졌던 모래의 감촉이 너무나도 생생했고 꿈속의 내가 죽는 순간 현실의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내가 살았던 전생의 한 순간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지금이 꿈 속인 것일지도 모른다. 어는 쪽이 현실인지를 내가 판단할 수 있을까? 요즘도 나는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며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본다. 




코로나 블루

길어진 전염병으로 인해, 인생이 무료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나는 오랜 시간 서랍 속에 보관했던 타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타로카드 동아리에 들어갔었다. 말 그대로 친구 따라 강남 간 격이었던 나는 타로카드에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타로카드에 대한 걸 까마득하게 잊게 되었다. 그런 타로카드를 다시 꺼내 들게 된 건 코로나 블루 때문이었다. 나는 길어진 인생 노잼 시기로 인해 침체되어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 타로카드였다.


타로카드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잘 맞았다. 단지 재미로 시작했을 뿐이었는데, 회사에 내가 용한 타로술사(?)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타로카드를 보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내 자리에 서있는 괴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너무 잘 맞는다며 복채를 주고 가는 사람부터 감동받아서 우는 사람까지 생겨나자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섞은 카드를 뽑는 것뿐인데, 왜 잘 맞는 거지?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타로카드 마스터가 아니었기에, 정말 카드 해석을 그대로 읽었을 뿐이었는데 소름 끼치게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는 했다. 그렇다면 사실 모든 인간은 프로그래밍되어있는 것이 아닐까게임 심즈와 같이 우리는 인간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나는 그런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

회사 직원들에게 타로카드를 봐주던 중 나는 슬쩍 ‘인간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너무 잘 맞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사실, 우리는 짜여진 인생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심즈처럼 말이죠!”

“소름, 저도 그런 생각 한 적 있어요”

“저도요”

“오 나돈데”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더 많았다. 한 직원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주의 신비이고 그렇기 때문에 외계인도 있을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인간즈’라는 나의 상상에 점점 더 살을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1.‘생일’이라는 코드번호를 기반으로 성격과 인생 전반의 스토리가 랜덤 하게 설정된다. 

2.‘인간즈’는 본인의 특성을 ‘사주’나 ‘타로카드’라는 아이템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3. 특성은 고정값이지만 ‘인간즈’는 기본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캐릭터이다.

4. ‘인간즈’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우주를 프로그래밍 한 개발자이다.

5. 한 번 리셋을 하면 새로운 캐릭터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쯤 상상하고 나니 정말 인생이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살아서 숨 쉬고 존재하는 것이 맞을까?’, ‘자유도가 높은 게임 속 캐릭터 같은 것은 아닐까?’와 같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쉴 새 없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삼 ‘심즈’의 개발자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허황된 상상으로 끝날법한 이야기를 게임으로 실현시켜 두었으니 말이다. 만약 내가 정말로 ‘인간즈’이고 나의 인생을 설계하는 ‘신’이 따로 있다면 나는 그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저한테 돈 치트키 좀 써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이다.




정말로 짜여진 인생을 사는 것일지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것은 아마도 모든 이들의 바람이 아닐까? 타로카드라는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 나의 상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내 상상의 호수 속 ‘인간즈’라는 세계관은 날이 갈수록 그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다. ‘나는 언제쯤 돈 치트키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 오늘도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화두를 던져본다. 만약 내가 ‘인간즈’ 일지라도 결국 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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