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Maf Sep 11. 2023

감정은 소망을 현실로 만든다.

감정은 소망의 질을 결정한다.


감정이 어떻게 소망을 만들까?


끌어당김의 법칙은 내 생각이 아니라 내 감정에 반응한다. 만약 감정에 반응한다면 내 소망은 도대체 어떻게 현실화가 되는 것인가?



생각은 의도를 만들고,

감정은 상황을 만든다.



생각은 의도를 만들고 그 의도는 행위를 유발한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유튜버가 되고 싶은 사람은 동영상 만드는 법을 찾으며,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부자가 쓴 책이나 영상물을 찾는다.


우리의 생각은 창조적이다. 우리의 의식은 양자장의 파동함수를 붕괴시켜 입자로 만들고 그것을 현상으로 경험한다.


그런데 그 현상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감정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자연 현상이다. F=ma와 같다. 자연은 인간의 사회적인 소망이나 반복하는 워딩에 반응하지 않는다. 내 소망이 무엇이든, 내가 어떤 확언을 매일 하든 그때의 감정상태와 유사한 현상들을 펼칠 뿐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감정이 불안하면 불안한 곳으로 가고, 아무리 감정 상태가 좋아도 의도가 없으면 실행하지 않는다.







소망은 나의 의도다


내 소망에 다가가는 것은 내 생각에 따른 의도다. 하지만 그 소망을 안배하는 것은 내 감정에 따라 펼쳐지는 현상들이다.


내가 내 의도에 따라 행위를 할 때 내 감정과 유사한 현상들이 펼쳐진다는 것이 끌어당김의 법칙의 본질이다. 그렇게 펼쳐지는 현상들은 다시 새로운 행위를 유발하고, 그 행위를 할 때 내 감정은 다시 새로운 현상을 만든다.


내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위해 즐겁게 글을 쓸 때 그것과 유사한 현상들이 펼쳐진다. 나는 언제나 즐겁게 글을 쓰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현상들을 경험한다.


구독자 급증 작가

완독률 높은 브런치북

오늘의 작가




작가가 되겠다는 의도가 있어도 글을 쓰지 않으면 작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작가가 되는 방향으로 세상을 안배해 나가는 것은 내 감정이다.


그래서 끌어당김의 법칙이 감정에 반응한다고 하는 것이고,



감정은 끌어당김의 법칙의 핵심이다.








감정은 소망의 질을 결정한다.


부자가 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매우 좋은 감정으로 사업체를 만들고 확장해 나간다면 끌어당김의 법칙은 그 감정에 상응하는 현상들을 펼친다. 창업하는 과정에 잠도 거의 못 자고, 일에 매몰되서 몸은 극도로 피곤하지만, 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면 내 감정 상태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즐거운 현상들을 만난다.


내가 부자가 되겠다는 의도로 스타트업을 시작했는데, 매일 망하지 않을까 불안하고, 힘들어 미치겠다면 그 감정에 상응하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같은 소망과 같은 의도로 스타트업을 시작해도 그 결과는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부자가 되겠다는 의도로 생각만 하고, 아무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 또한 아무 현상도 벌어지지 않는다.


즉, 생각이 의도가 돼서 행위로 이어지면 그때의 감정과 유사한 현상들이 펼쳐진다. 의도는 내가 만들지만 현상은 내 감정이 만드는 것이다. 내 의도에 따라 무언가를 하고 그 결과는 감정에 따라 받는다.  


내가 세 개의 기술사를 꿈꾸다가 작가로 소망이 바뀐 것도, 대학 때부터 소망했던 작가라는 내 의도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기술사뿐이라서 기술사를 소망했지만, 그것이 이상한 형태로 안배되면서 작가라는 원래의 소망으로 돌아왔다. 감정만 잘 조절하면 소망은 이러한 형태로 안배가 된다.


내 의도는 행위를 만들고, 행위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감정에 따라 현상들은 안배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경험하는 현상들이다. 결과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의도를 실천해 나갈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감정을 좋게 유지할 수 있을까?


감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절대 같지 않다. 타인에게 맞는 방법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내가 추천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감정을 분별하지 않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맞는 만트라를 찾는 것이다.



  





감정은 분별하면 감정은 커진다.


즐거운 감정이 즐거운 현상을 만든다면 즐거운 감정만 유지하면 끝나는 것 아니냐? 맞다. 즐거운 감정만 유지하면 끝난다. 문제는 그 즐거운 감정은 절대 유지되지 않는다.


고타마 붓다가 깨달은 자연의 세 가지 특징인 Tilakkhana(띨라카나)의 anicca(아닛짜, 무상)는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상태는 결코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dukkha(두카, 고)라는 괴로움에 빠지고, 결과적으로 절대 불변하는 무언가는 찾을 수 없다는 anatta(아낫따, 무아)가 결론이다.





불교에서 Samadhi(사마디, 삼매)는 깊은 명상 상태에서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태가 되면 감정이 고요해진다. 문제는 이 상태를 일상생활에서 계속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고타마 붓다가 제기한 문제도 깊은 명상 상태로 Samadhi에 들어도 다시 명상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모든 것이 변한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으려면 Samadhi 상태를 계속 유지한 채로 일상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고타마 붓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고타마의 목표는 그 당시 모든 수행자의 꿈인 참 자아 아트만을 찾아서 자신의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라, 현상계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그런 고타마 입장에서 보면 계속 명상만 유지하고 있는 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중생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리도 똑같다. 마음공부를 하든, 유튜브를 보든, 자기 계발 서적을 읽든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문제는 그 깨달음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원래 특정 상태는 지속되지 않는다(anicca).


그래서 좋은 상태만 유지하려 하면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을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dukkha).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면 좋은 상태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좋든 싫든 크게 상관이 없는 상태가 돼야 한다.


좋든 싫든 상관이 없는 상태는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유쾌한 감정도 느끼고, 불쾌한 감정도 느끼는데, 유쾌한 감정은 좋고, 불쾌한  나쁘다는 분별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감정을 거부한다는 것은 불행이 예상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방어기제다. 그 감정에 따라 자신도 나빠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감정은 평생 피해 다닐 수 없다. 감정은 매일 보는 가족과 같다


팀장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마음이 팀장을 피하게 만든다. 잔소리를 안 듣기 위해 귀를 막을 것이 아니라, 그냥 잔소리를 듣더라도 기분이 나쁘다는 분별이 줄어들면 잔소리에 대한 고통도 줄어든다. 그래서 분별을 줄이기 위해 자신과 타인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팀장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다면,



팀장의 욕구는 무엇일까?



라는 이 질문이 팀장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해를 하면 분별이 줄어들고, 분별이 줄어들면 자신의 고통도 같이 줄어든다.


좋은 감정만 유지하겠다는 생각도, 나쁜 감정은 느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버리고, 그냥 감정을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껴야 나쁜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만트라를 찾아라.




만트라(mantra)는 영적 또는 물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발음, 음절, 구절을 말한다. 송과체가 열리면서 내 몸에서 잡히는 주파수 옴(Ω)도 만트라지만, 자기 암시나 확언도 큰 의미에서 일종의 만트라다.


내 감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반복하는 만트라와 평소 때 가장 많이 하는 만트라는 이것이다.



대수롭지 않다.

나는 신이다.


    

이 두 가지 만트라는 나에게 최적화된 만트라다.


내 정신은 신이다. 내 정신은 펼쳐지는 모든 현상을 창조한다. 그래서 펼쳐지는 모든 현상은 내가 만든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 이런 형태로 평소 때 한 번씩 무의식에 각인을 한다. 매일 일정하게 되뇌지는 않는다. 그냥 한 번씩 내가 신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명상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신이라서 현상계의 모든 현상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서 본인이 신이라는 말 자체가 거북하면,


“나는 하나님의 일부다. 그래서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 로 하면 된다. 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일부로 하나님과 같은 영능을 지녔기 때문에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신과 같은 능력으로 무언가를 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 신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현상을 보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내가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가장 강력한 주문이



 대수롭지 않다



라고 말한 것이다.


이걸 깨닫는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나쁜 감정이 일어났을 때 “대수롭지 않다”라는 만트라로 나쁜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점점 줄어나갈 뿐이다.


그러니 평소 때 “대수롭지 않다”처럼 자신에게 맞는 만트라를 만들어서 한 번씩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유튜브의 한 구독자가 댓글로 남긴 “신으로서 OO 하다”도 같은 맥락이다. 신으로서 밥을 먹는다. 신으로서 글을 쓴다. 이런 형태로 하다 보면 자신이 신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각인이 되고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느끼는데 도움이 된다.


만트라는 자신에게 맞는 것을 만들면 된다. 그냥 절대자가 되어 현상을 보든, 절대자의 능력을 얻어 현상을 보든,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자신에게 맞는 무언가를 찾아라.


“대수롭지 않다”, “나는 신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반야반라밀” 그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반복했을 때 감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데 도움이 되는 만트라를 찾으면 감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이 된다.


나는 신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대수롭지 않다.



이것이 내가 찾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만트라다. 그래서 다음 편의 제목은 이것이다.



우리의 정신(精神)은 신(神)이다  





라이킷 & 댓글 & 응원하기는 작가에게 엄청나게 많은 힘이 됩니다 :)





Youtube 더마프 The Magnetic Life
더 자석 같은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