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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Feb 28. 2024

5. 할머니의 귀염성에 대하여

[할머니의 손] Ⅱ. 나를 이룬 것의 팔할

할머니의 말버릇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옌장’이다. 또박또박 한 음절씩 발음한 적은 거의 없었기에 굳이 글자로 적자면 ‘이에엔-장’정도. 독립적으로 사용될 때는 ‘장’ 발음을 뚝 떨어뜨리는 형태로, 타박의 말이 더 붙을 때는 중간 정도 높이에서 마치며 재빨리 뒷말을 이어하는 식이었다. 온갖 부정적인 상황에서 두루 사용되는 감탄사였고 그런 말을 뱉는 할머니는 누구의 엄마나 할머니나 형수가 아니라 온전한 개인, 한 사람 같았다. 왠지 더 정다워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면 할머니는 그 말을 섞어 상대든 상황이든 함께 욕해주었다. 그러면 거듭 실패해도 남 탓하며 함께 욕해 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쉽게 마음이 풀어졌다. 이 말을 흔하게 듣게 되는 날들이 영원할 순 없다는 걸 알면서도 흔한 영상 하나 촬영해 놓지 않은 것이 후회될 때가 있다. 물론 카메라를 들이대는 데에다 대고 남 타박을 길게 늘어놓지 않으셨을 분이지만. 그 다정하고 안전한 말은 발음과 억양까지 꼼꼼하게 익혀 내 속에 담아 두면 될 일이다.     


 할머니는 집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딸네 집에 나를 데리고 종종 갔었다. 거기에는 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이 있어서 할머니가 고모 집에 가자고 할 때마다 신이 났다. 버스를 갈아타고 또 한참을 걸어 고모 집에 도착하면 고모가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거나 사촌들과 밤늦게까지 놀게 해 주었다. 그 집에서 불량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 불량한 것들은 늘 재미있었다. 한 번은 고모가 영화관을 예매해 두었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사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은 또 그거대로 재미있었다. 고모는 스크린 속의 외국 배우를 보면서 ‘야, 쟤 너무 잘 생겼다. 진짜 잘 생겼다.’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할머니는 ‘응.’, ‘그래, 잘 생겼네.’하고 건성으로 답했다. 모녀가 외국 배우에 대해 평가하는 모습이 웃겨 나는 킥킥거렸다. 스크린에서 뱀이 나왔을 때 모녀는 약속이라도 한 듯 황급히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가렸다. 어이구, 저 뱀 어떡해. 무서워, 징그러워. 둘이 똑같이 말했다. 뱀이 화면에서 사라졌다는 걸 알려주자 그제야 할머니와 고모는 눈을 떴다. 그게 재미있어서 집에서 뱀 사진이 나오는 자연책을 찾아다가 ‘할머니, 이거 봐!’하고 갑자기 들이대며 놀래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눈을 가리고 저리 치우라고 했다. ‘할머니가 뱀을 무서워하니까 고모도 뱀을 무서워하지!’ 나는 뱀이 그 정도로 무섭진 않았고, 나에게까지 유전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고모네 딸들도 고모에게 똑같은 장난을 치며 놀았다. 잘 생긴 서양 배우한테 큰 감흥이 없고 뱀을 무서워하던 우리 할머니.     


 한 번은 할아버지가 풍물 시장에서 말린 지네를 얻어 왔다. 나와 할머니는 경악했다. 다음에는 소주 몇 병을 사 왔다. 아들 내외가 퇴근하기 전에 모든 작업을 끝낼 심산이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큰 플라스틱 통에 소주를 콸콸 부어 넣고, 거기에 자기들끼리 뭉쳐 굳어있는 말린 지네를 하나씩 뜯어 넣었다. 이후에는 뚜껑을 온 힘을 다해서 닫아 밀봉하고 책장 가장 높은 곳에 그걸 올려놓았다. 이렇게 한참을 기다리면 약주가 된다고 했다. 대체 지네에 어떤 효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다 한들 알코올에 숙성시킨 식품(?)이 과연 얼마나 영양가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할아버지의 주장은 한결같이 ‘몸에 좋다’였다. 흔한 쟁반이나 신문도 깔아놓지 않고 맨바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잔해가 바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그곳은 가족들이 이불을 깔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할머니는 경악하는 표정을 풀지 않고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고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는 뒤처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외출했다. 그때 할머니의 표정은 고통스러움보다는 짜증이었는데, 할아버지에 대한 온갖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옌장. 이거 지네 다리 수두룩하게 떨어진 거 어떡하냐.”     


 할머니는 오래된 동무를 타박하는 말투로 짜증을 냈었다. 허술한 친구를 대신해서 뒤처리를 도맡아 해 주는 착실한 학급 반장 같았다. 할머니는 뱀이고 지네고 보는 것만으로도 경악하는 사람이었지만 바닥에 떨어진 지네 다리는 손으로 모았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다른 쪽 손바닥에 모은 다음에 쓰레기통에 버렸다. 할머니가 몇 번 움직이자 방은 금세 깨끗해졌다. 평소 가부장의 호통 소리에 잔뜩 위축되어 떨던 할머니였지만, 그때만큼은 모든 것과 무관한 자연인처럼 보였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예쁜 옷을 갖추어 입는 날은 할머니의 잔칫날이었다. 나와 동생이 비슷하게 생긴 모자를 쓰고 나가던 날, 할머니는 우리 뒤를 지켜보며 노래를 불렀다.     


 “예쁜 모자~ 내 모자~ 예쁜 모자~ 내 모자~”     


 어느 동요의 한 구절이었고 그 뒤의 가사가 이어지지 않은 채 무한 반복됐다. 나는 할머니의 경쾌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갔다. 책가방에는 학예회 때 쓸 부채춤 공연용 소품이 들어있었다. 손목에 힘을 조금만 실으면 멋진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펼쳐지는 예쁜 부채였다. 집에 오면 가방이나 준비물을 아무렇게나 부려놓곤 했기 때문에 그건 거실이든 방이든 어디에서나 발견됐다. 집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부채를 보며 할머니는 손녀가 예쁜 옷을 입고 많은 친구 앞에서 부채춤을 추는 모습을 그려 보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 무렵 할머니는 부채를 이리저리 만지며 소일하곤 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건 늘 기대와 분노가 비슷한 크기로 함께 오는 과정…. 매일 방을 엉망으로 해 놓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자기 논다고 도망가는 손녀들에게 화가 났던 할머니는 기대에 가득 차 만지작거리던 부채를 조금 세게 놀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크게 소리쳤다.     


 “옌장! 밥 차려 놨는데 먹고 놀아야 될 거 아니야?!”     


 아침에는 웃으며 노래하며 우리를 배웅했던 할머니가 한순간에 괴물이 되었다! 할머니는 화가 나서 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벽을 향해 던졌다. 순간 할머니의 손목 스냅에 의해 부채는 촤르륵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우아하게 펼쳐졌다. 고풍스러운 호를 그리며 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동안 부채는 깃털 몇 개를 바닥에 흩뿌리기도 했을 것이다. 나와 동생, 할머니는 멈추어 그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제일 크게 웃었다. 할머니의 ‘깔깔’하는 웃음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동생은 나와 생각이 달랐는지 조용히 내게 말했다.     


 “근데, 언니. 할머니 좀 이상해.”     


 아니야. 할머니는 즐거운 거야. 내가 운동장에서 부채춤을 출 거니까! 할머니가 크게 웃는 날은 무조건 좋은 날이었다. 그럴 때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고, 소녀 같았다. 내 친구 같았다.


 할머니가 태어나 할머니가 되기까지 분명 소녀의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할머니의 옛날 사진에는 렌즈를 뚫고 나오는 ‘고움’이 있었다. 주름살이 하나도 없지만, 표정 또한 없는 그 얼굴은 고모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사진 속 할머니가 말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고모에 대입하여 상상하면 재미있었다. 할머니는 사랑스럽고 겁 많은 소녀였을 것이다. 우스운 일이 있을 때는 높게 호호호, 깔깔깔 웃었을 테고. 친구가 속상해하는 일에 함께 욕 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었을 테고. 어쨌든 귀여웠을 것 같다. 귀여운 건 시대를 불문하고 최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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