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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May 08. 2024

13. 먼 세대의 마지막 통화

[할머니의 손] Ⅲ. 할머니가 이상해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각각 효도폰 하나씩을 갖고 계셨다. 영민하고 정정한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사용법을 묻지도 않고 척척 잘 쓰셨다. 아침 운동을 하는 어르신들 모임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쓰는 것 같았다. 반면 할머니는 기계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몰랐다. 원래도 기본적인 기능밖에 없는 휴대폰이었으나 문자 기능을 사용할 줄 몰랐고 내가 미리 등록해 둔 아홉 개의 단축키만 사용하여 가까운 이들과 통화했다. 귀퉁이가 다 닳아진 낡은 수첩에 가까운 이들의 전화번호를 볼펜으로 적어둔 것을 내가 보고 할머니 휴대폰에 하나씩 저장해 놓은 것이었다. 할머니가 자주 쓰는 번호는 집, 할아버지, 아들들의 번호, 그리고 맏며느리의 번호였다. 


  할머니의 첫 휴대폰이 망가져 더는 쓸 수 없게 되자 두 번째 휴대폰을 알아보고 구매하는 것이 내 몫이 되었다. 오직 통화 기능만 사용하는 할머니께 이런저런 복잡한 요금제가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자 우체국에서 개통하는 알뜰폰을 찾아 거기에 딸린 휴대폰을 사 왔다. 지금은 사라진 그 통신사는 통화품질이 그리 좋지 못한 탓에 할머니가 자꾸 ‘안 들린다’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일이 잦았다. 그게 통화품질 탓인지 할머니의 보청기 탓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개통을 철회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좀 더 써 보시라’고 거듭 청했다. 할머니는 알았다고 하고 계속 그 휴대폰을 썼다.


  할머니의 휴대폰에는 온갖 광고 문자가 쌓여 갔다. 할머니는 문자를 열어 읽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내가 주기적으로 문자함을 비워 드려야 했다. 휴대폰의 주인이 구십이 넘은 노인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금리 대출 광고에서부터 음란 광고까지 한숨이 나오는 문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실수로라도 이런 문자를 눌러보지 말라고 당부하였으나 할머니는 문자함이 무엇인지도 몰랐기에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가다 마치 할머니의 성당 친구나 동생이 보낸 것 같은 다정한 안부 문자를 발견하고 삭제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끝이 멈칫거렸으나, 곧 아주 다정한 말투를 쓴 광고 문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할머니가 낳아 기른 여러 자식과 손주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도 그에게 다정한 문자를 보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나라도 문자 한 통을 남겨 놓고 할머니께 예상치 못한 편지를 받을 때처럼 반갑고 기쁜 마음을 선물해 드려야지 했었지만 나 살기 바빠 그 쉬운 일조차 하지 못했었다. 문자함의 존재를 모르는 할머니였으니 어차피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할머니의 단축키 1번은 ‘집’이었다. 집에는 오래된 집 전화기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70년대에 광화문 어디에 가서 한참을 줄 서서 기다려 개통한 전화라고 했다.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에야 시골에서 오는 온갖 전화를 그걸로 받았지만 모든 가족이 휴대폰을 갖고 나서부터는 집 전화가 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가 바깥에서 만난 웬 잡상인이나 친구 노인들과 하는 갑갑한 대화들이 이제는 가족들이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 더 나을 법한 대화였으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걸려 오는 전화가 없어도 기본요금이 달마다 꼬박꼬박 나갔다. 일이 년에 한 번씩 시골의 먼 친척이라는 어르신들 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옛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가 걸려 올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전화를 받기 위해 꼭 집 전화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언제 누구에게 걸려올지 모르는 전화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전화 때문에 땡볕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아냐? 그렇게 받은 번호여!”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할아버지의 진심이었다. 그게 진짜 이유였다. 몇십여 년 전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위해 했던 고생의 흔적을 할아버지는 치우고 싶지 않았던 거다. 전화기는 할아버지의 추억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거실에 장식품처럼 방치되었다. 할머니의 단축번호 처음이‘집’이었다 해도 1번을 꾸욱 눌러 거기로 전화할 일은 없었다. 할머니는 주로 고모와 통화했다. 집 전화가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휴대폰으로 할머니와 고모가 나누는 대화는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늘 한탄 같은 걸 했다.     

 

  집 전화기는 곧 내 아이의 장난감이 되었다. 그맘때쯤은 집 전화로 걸려 오는 일이 없다시피 하여 연결선을 빼놓아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그렇게 내버려 둔 것을 아이가 신기하게 여기며 자꾸 들여다보기 시작한 거였다. 옹알이를 시작하면서는 수화기를 들어 엄마와 통화 놀이를 하기도 했고,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사무실을 차렸다며 자기 장난감과 볼펜, 종이 등을 늘어놓고 전화받는 직장인 흉내를 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가족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그만큼 휴대폰 카메라 세례도 받았다. 영상통화로 멀리 떨어져 계신 친척과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것에도 익숙했다. 가끔 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나조차도 몰랐던 기능을 실행시키기도 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입원 즈음에는 이제 손끝이 꽤 여물어진 아이가 휴대폰을 자기 손으로 쥐고 영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는 할머니에게 특별한 처치를 하지 못했다. 워낙 고령인 탓이었다. 멀끔한 회복은 요원했고, 그저 할머니가 운신할 수 있게끔만 적절히 처치한 후 천천히 무너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무렵 넷째 며느리가 지인을 통하여 요양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치료가 무의미한 할머니를 대학병원에 계속 모시고 있느니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가 사전에 있었다. 


  가족들이 할머니의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할머니에게는 대학병원이 너무 비싸서 다른 작은 병원으로 옮긴다는 이야기가 전달됐다. 할머니는 이동을 위해 앰뷸런스를 탈 때까지 당신이 어디로 옮겨 가는지 정확히 몰랐다. 할머니가 입원 기간에 사용한 물건들이 그도 모르게 추려지고 포장되고 옮겨졌다. 할머니에게는 더는 휴대폰이 필요 없었다. 그건 있어봤자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이었다.     


  아빠가 할머니 면회를 가는 날을 알아두고 그 시간에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아빠께 일반통화를 영상통화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려 드렸다. 아이와 함께 아빠에게서 올 전화를 기다렸다. 할머니가 나뿐 안 아니라 이 아이도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을 함께 읽고 있을 때,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말로 오랜만에 화면 속에서 할머니 얼굴을 보았다.


  할머니는 익숙한 병원복을 입고 침대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건너편 화면에서 증손주를 보자마자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퍼져나갔다.      


  “할머니, 뭐 해?”

  “그래, 그래. 이쁘다.”

  “할머니, 다른 병원 가신다면서요.”

  “아이고, 아가 이쁘다.”

  “할머니, 애기 얼굴 보여요?”

  “애기야, 애기야.”     


  별다른 내용이 없는 정다운 말이 오갔고 여느 때처럼 메시지가 오가는 대화는 아니었다. 휴대폰 화면은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손이 심하게 떨리는 아빠의 병증 때문에 휴대폰이 고정되지 않고 자꾸 미끄러진 탓이다. 할머니는 손주와 증손주의 얼굴을 보려고 처음에는 고개를 틀어 바라보다 나중에는 아예 허리를 앞으로 쑤욱 굽혀 화면을 응시하였다. 나는 아이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게 하려고 한 손으로는 아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꽉 쥐어 고정했다. 아이는 왕할머니께는 별 관심이 없고 이제껏 읽던 그림책을 쳐다보는 데에만 열중했다.     


  “애기 얼굴이 작게 보여.”     


  할머니가 거듭해서 말해도 작은 화면을 물리적으로 키울 수가 없기에 영상통화는 조금은 안타깝게 이어졌다. 이제는 할머니의 얼굴 대신 무릎과 발과 침대의 텅 빈 아래쪽만이 화면에서 보였다.     


  “아빠, 전화기를 좀 들어. 할머니 얼굴이 안 보여.”   

  

  내가 말하면 화면이 미세하게 떨리며 위쪽을 향했고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잠깐 보이다 이내 뚝 떨어졌다. 할머니 얼굴이 조금 보이는 사이에 나는 화면을 캡처했다. 할머니가 너무 따스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내려다보는 아이의 통통한 볼살과 웃는 할머니의 얼굴이 한 화면에 담겨 남았다.     


  “이제 끊어야 돼. 오래 못 해.”     


  아빠는 옆 환자가 의식되었는지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할머니, 얼른 나아서 봐요. 다음에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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