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글을 쓸 수밖에 없네
밥을 먹고 있는데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겪는 일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사실 남들 다 하는 일인데, 그걸 처음 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신기하고 엄청나게 느껴지는 거지. 이미 그 일을 겪어본 사람 입장에서는 새삼스럽게 그걸 가지고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나는 조금 찔리고 말았다. 남들 다 하는 퇴사 관련해서 글을 쓰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브런치북 시리즈를 만들 생각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공공기관을 다니면서 끝없이 브런치에 징징거리는 글들을 남겼던 나는 끝내 퇴사를 선택했다. 브런치 글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퇴사를 고민한 기간만 일 년이 넘었다. 긴 시간 동안 고민하면서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아니, 다들 이 엄청난 과정을 거치면서 퇴사를 고민하고 끝내 퇴사를 선택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다고? 그간 주변에서 봤던 퇴사했던 사람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만큼 내가 퇴사를 고민했던 시간 동안 나는 정말 괴롭고 슬프고 답답했다.
약간 항변해 보자면 내 퇴사의 여러 상황이 좀 극단적이긴 했다. 첫째, 나는 서른여덟 인생에서 '퇴사'라는 이벤트를 이번에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스물다섯에 졸업예정자 신분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십삼 년을 일했다. 그러니 내게 퇴사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엄청난 어떤 것이었다. 이직을 거듭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들이 보면 황당하겠지만 공공기관에서의 삶이라는 게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간 회사에서 정년퇴직까지 다니는 것이다. 그런 회사에서 중간 이탈을 하는 것은 정말 특이한 경우였기에, 내 퇴사가 더욱 비상해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둘째, 나는 이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직업으로의 전직을 준비하기 위해 퇴사했다. 지금껏 내가 다녔던 회사(공기업이라 보통 공사라 부른다)에서 퇴사한 사람들은 드물지만 있긴 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는 것이었다. 연봉을 높여서, 또는 커리어를 발전시켜서 퇴사하는 것이었기에, 퇴사하는 사람은 상쾌하게 떠나갔고 남은 회사 직원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미래를 축복해 주며 미련 없이 안녕을 외쳤다. 하지만 나는?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정말 이루기 어려운 꿈에 도전해 보기 위해, 다음 직장 없이 퇴사를 선택했다. 그러니 퇴사하는 나도, 그걸 바라보는 주변인들도 당혹감과 걱정, 왠지 모를 불안을 가득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다 핑계다. 전 세계로 따져보면, 아니 한국 안에서만 해도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재직자가 다른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퇴사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퇴사하는 과정에서의 내 경험과 깨달음을 나누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관련 글도 넘쳐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주인공인 나에게 내 퇴사는 너무나 특별해서. 그래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는 이야기들은 '누구누구 때문에 퇴사합니다', '회사의 이런 썩은 문화 때문에 퇴사합니다' 식의 사회고발적 메시지는 전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어떤 생각의 흐름을 거쳤고, 퇴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중심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부디 내 글이 퇴사를 결심한, 또는 꿈꾸는 많은 분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