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꽤나 긴 회사 생활을 하며 당연히 힘든 날도 많이 있었다. 검토해야 하는 서류는 쌓여 있는데 시계는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어서 훌쩍훌쩍 울었던 적도 있었고, 다른 사람과의 갈등 때문에 화가 나서 잠 못 이룬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힘든 날들은 길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럽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좀 나아지곤 했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진 않아도 사그라들었고, 그러고 나면 내 정신 상태도 좀 나아지곤 했다.
그런데 퇴사하기 직전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는 도무지 나아지지가 않았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스스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 팀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같은 팀 사람들도 괜찮았고, 업무도 골치 아프긴 했지만 그렇다고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잘 적응하고 일해 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그래왔듯이, 이 짜증과 답답함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것이라고 믿어보려 했다. 하지만 참고 또 참아도 가슴속 무언가가 시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통탄할 노릇이었다.
나는 나름 메이크업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 화장품도 곧잘 사 모으는데, 기초보다는 색조 쪽에 훨씬 지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각종 아이섀도와 틴트를 화장대가 넘치도록 보유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회사생활 마지막 부서의 팀원들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과장님, 매일 맨얼굴로 출근하지 않았나? 하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일 년간 회사에 가면서 나는 화장이란 것을 일절 하지 않았다. 당연히 발라야 하는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다. 아니, 선크림뿐 아니라 기초 제품들조차 바르지 않고 말 그대로 '쌩얼'로 회사에 갔다.
당시 내 아침 루틴을 기억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나가야 하는 시간의 30분 전에 기상. 깨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하고 이 닦고 겨우겨우 머리를 감고(그 와중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린스도 생략했다), 대충 물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머리를 말린 뒤 옷 갈아입고 바로 출근.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 나는 산발한 머리에 정돈되지 않은 얼굴을 하고 매일매일의 회사 생활을 계속했다.
물론 머리를 덜 말리고, 화장을 안 하고 회사에 갈 수 있다. 누군가는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건강한 회사 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화장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정말이지 화장이나 머리 손질은 물론, 손톱과 발톱이 길어졌을 때 그걸 잘 다듬어 깨끗이 하는 것조차 귀찮고 힘든 지경이었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멀쩡한 척을 하고 지냈지만 사실 전혀 멀쩡하지 않았던 것 같다. 머리를 감고 손발톱을 다듬는, 그런 일상적인 몸의 정돈까지 하기 힘들 정도로. 외부에 이야기하기 그럴싸한 결정적 괴로움 소재가 없다는 이유로 '난 힘들지 않아. 난 힘들지 않아' 하고 되뇌었지만, 사실 힘든 게 맞았다. 나만 괴롭히는 이상한 상사와 매일 야근해도 쳐내기 힘든 업무가 존재하지 않아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런 자신을 경험하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그게 내가 퇴사를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