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입고, 오은 시인, 5월 28일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 5월과 특별히 더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이름 ‘오은’ 시인의 ‘초록을 입고’를 읽고 있다.
매일의 시, 에세이, 생각을 한 편씩 읽을 수 있으니 좋다.
아이도 아직은 나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나이이고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유독 더 내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내 육아와 일, 모두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독립’이었던 것이다.
내 아이도 내가 직업으로 만나는 아이들의 목표도 온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여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원대한 목표라면 목표다
내가 생각하는 ‘도와주세요.’는 무엇인가 과제를 수행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길을 터 달라는 요청 아닌 요청으로 받아들였다.
독립이 목표인 나란 사람은 그 요청을 모두 받아들이기보다는 조금 더 단단하게 세운다는 원대함으로
“혼자 해보렴. 할 수 있어.”라고 되돌릴 때가 많다.
오늘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도와주세요.”는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대신해주세요.’가 아닌
‘함께 해주세요.’ 임을.
잘하던, 못하던. 그 결과가 아닌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해 달라는 말이었다.
대신이 아닌 함께라는 말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나는 이제야 배운다.
요즘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잠깐’이다.
‘잠깐만요.’라는 아이들의 요청은 흐뭇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즉답을 원하는 눈빛을 보내는 나에게 아이들은 ’ 잠깐 만요.‘를 말한다.
‘잠깐’이라는 말은 기다려 달라는 말. 시간을 달라는 말. 잠시 여유를 갖으라는 말.
결국 스스로 해 보고 싶다는 말인 것이다.
아이들과 나 사이의 마음 사전은 이렇게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