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없으면 네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은 넣어 둬.
3월부터 나를 긴장 속에 살게 했던 출장이 있었다.
바로 우리 지역 옆동네 교육청의 배움 자리 강사로 서게 된 것이다.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는 시간은 빨리 다가왔으면도 싶다가, 또 오지 말았으면 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체험을 했다.
강의 준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나는 올 한 해 정말 아쉽지 않게 아이들과 함께 눈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만기 근무로 옮겨야 하기에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도 있지만
어디에서 나의 교실 이야기를 했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그것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나는 더 열심히… 아이들과 눈 맞추고 있다.
오전 수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출장지로 향하는 일정이었기에 통합반 선생님들께는 미리 메시지로 안내를 드렸다.
“제가 오늘 오후 출장이 있습니다. 아이들 잘 부탁드립니다.”
“네, 파이팅! 잘 다녀오세요.”
“걱정 마세요.”라는 응원을 받으며 준비할 수 있었다.
나의 짝꿍 은미는 나에게 비타민과 편지로 응원을 해주었다. 그 마음이 너무 크고 고마워, 바로 “고마워”라고 메시지를 남길 수도 없어
2교시가 끝나고 은미교실로 가서 한번 꼭 안았다.
그렇게 서로 힘을 주고받은 시간이었다.
다만 나의 일정은 우리 아이들이 모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힘찬이만은 모르게 비밀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힘찬이는 내가 없는 날은 기가 막히게 알고
친구들과의 다툼, 선생님과의 충돌 등으로 꼭 나의 빈자리를 학교에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출장을 가더라도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없어도 있는 사람처럼 학교에 존재해야 한다.
마치 유령처럼.
그런데 이 싸인이 힘찬이의 새로 바뀌신 담임선생님과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복도를 지나오다 보니 힘찬이의 같은 반 친구가
“너 자꾸 그러면 소화 선생님한테 이른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응? 나? 뭐지????’
인기척 없이 가만 교실 뒷 문에 서서 교실을 바라보았다.
힘찬이가 안이를 툭툭 볼펜으로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힘찬~~~~~!!!!” 하고 큰 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주 낮고 굵은 목소리로.
힘찬이가 갑자기 볼펜을 바닥에 툭 집어던지고는
“아, 뭐야! 아 C, 선생님 출장 간다고 했는데 왜 저기 있어.” 한다.
세상에…. 우리 힘찬이 정말 다 아는구나?
바쁜 일정 속에서 양치할 시간도 없었지만 힘찬이에게 또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선생님이 없는데 힘찬이가 이렇게 행동하면 선생님이 걱정이 돼서 가서 회의를 잘할 수 있을까 선생님이 회의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오면 힘찬이랑 재미있는 것도 못하고 힘찬이 공부도 더 못 알려줄 텐데 어쩌지?”라고 좋게 말하면서도 나의 눈빛은 ‘너 자꾸 이럴래?‘라는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힘찬이가 주먹을 꽉 지고 이야기 한다.
“아, 선생님 출장 빨리 가라고요.”
목소리를 착 가라앉혀 이야기했다.
“힘찬 아, 힘찬이가 선생님 없는 동안 우리 풀잎반 동생들도 잘 지켜주고, 제선생님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지만 선생님도 걱정 없이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올 것 같은데. 선생님은 힘찬이를 믿는데 힘찬이도 선생님이 믿는 거 알지? 도와줄 거지?”
힘찬이는 대답할 여유 없이 아직 내가 이 학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황한 기색이다.
‘미안해 너의 계산이 틀렸지?’
힘찬이가 눈물을 꾹 참고 “네…. 알겠어요.” 대답한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터득한 것 중 하나는 오히려 이렇게 한바탕 파도가 일고 난 뒤에는 평온의 시간이 뒤이어 찾아온다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있을 때, 친구와 충돌이 있었으니 그 자리에서 내가 중재하고 해결하고 타이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어 다행이다.
오늘의 바람이 한바탕 지나갔다.
이제 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가 강의에 힘을 쓰고
너는 너의 자리로 돌아가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렴.
그것이 우리의 몫이란다.
애당초, 선생님이 출장 가면 네 시간이 올 거라는 환상은 넣어두렴.
선생님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