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어요.
"자, 부를게. 1번. 선생님."
"음... 음... 자 잠깐만요. 선생님 기다려 주세요."
"그래 알겠어. 생각해 보자."
2학년 타조는 한글이 서툴다.
나는 타조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배워가는 시간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니, 타조는 타조의 속도대로 배우면 된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마음이 급하다.
하루빨리 더 많은 글자를 알려주고 싶고,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4시까지 학교에서 생활하다가 집에 가면 피곤할 텐데 숙제를 성실하게 해 왔다.
획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꼭꼭 눌러쓴 것이 보인다.
"타조야~ 글씨가 타조처럼 반듯하고 예쁘다. 엄마랑 했어?"
"아니요. 형아랑 했어요."
타조뿐 아니라 타조의 숙제를 봐주느라 가족들도 고생이 많겠지?
숙제검사를 마치고, 어제 숙제 했던 단어를 중심으로 받아쓰기를 해본다.
내가 들려주는 낱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던 타조는 이야기한다.
"기다려 주세요. 생각할 수 있어요. 기다려 주세요."
기다렸다.
정말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고, 무언의 눈빛으로 강요하지 않고
너그러운 미소와 할 수 있다는 지지를 보내며 기다렸다.
타조는 정말 곰곰이 생각하며 정성껏 적어 내려간다.
어제 숙제로 내 준 낱말들은 타조의 학교, 가족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엄마, 아빠, 형, 가족, 친구, 선생님, 학교 이름.'
받아쓰기 10문항을 보는데 시간이 15분이 걸렸지만 타조는 10문제 모두를 아주 신중하게 적어내려 갔다.
중간에 슬쩍 도움을 주기도 했다.
지금 타조에게 필요한 것은 100점 보다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나를 기다려 주고 믿어주는 선생님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공책에 큰 하트를 요란하게 그리고, 처음 받아보는 100점 표시와 별까지 두 개 그렸다.
가족 호칭을 알았으니, 간단하게 카드도 써보자고 했다.
한글이 늦은 아이가 저녁 늦게까지 숙제를 하고, 학교에 가서 받아쓰기도 하고,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카드를 만들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돌아보니 아이가 한글을 막 읽고 쓰기 시작하며
처음 적어 준 엄마, 그리고 내 이름 세 글자. 이 것을 끄적인 날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한글을 시작하며 늘 처음은 '엄마, 아빠'로 시작한다.
이 아이가 힘들게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엄마'에서 전해지는 그 사랑을 느끼며
아이의 부모님도 힘과 용기를 얻으시라는 응원이 담겨 있기도 하다.
아이는 정성스럽게 카드를 완성 했다.
'엄마 사랑해요.' 여섯 글자가 적혀있지만 이 안에는 무한한 꿈과 성장이 담겨있다.
"기다려 주세요. 할 수 있어요."
아이가 이야기했다. 기다려 달라고.
나는 아이가 해 달라고 하는 것을 해 주면 된다.
기다리면 된다.
곧게 성장하기를, 흔들리지 않으며 너의 색깔을 뽐낼 수 있기를
믿고 기다리고 지지하며 그렇게 기다리면 된다.
"타조야. 선생님이 기다릴게. 너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