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렴 어때
적당한 배움 속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어도 때가 되면 스스로 글을 읽고 쓸 줄 알던 내가
과연 봄이의 힘겨움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읽고 싶은데, 친구들처럼 글을 줄줄줄 읽고 쓰고 싶은데
왜 자꾸 기억이 안나는 걸까? 스스로를 꼬집어보며 자책하는 봄이에게
내가 주고 싶은 배움의 방법과 그것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것이
정말 봄이의 힘겨움을 이해한 것에서 나온 것일까?
나는 아이들과의 수업을 준비할 때 이 질문에 자주 멈추게 된다.
봄이가 글을 읽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감각을 활용해야 하는지 내가 충분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어제 배운 것을 왜 기억하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뿐.
이 공감 없는 안타까움이 가끔은 우리 마음의 거리를 멀게 한다.
지난주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싶은 책이 아닌
나에게 읽어 주고 싶은 그림책을 빌려왔다.
그 책에는 우리 봄이가 있고, 타조가 있고, 힘찬이가 있고, 사랑이가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바라보고 다가가고 싶었다.
아이들을 공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아이들을 향한 공감으로 이끌고 싶었던 것 같다.
'피카소도 나처럼 글자가 무서웠대.' (행크 인스켄스 지음, 한울림 출판)은 난독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봄이에게 주고 싶은 위로가 담긴 책이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아이들을 보며 천천히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평소 아이들이 좋아하던 똥 이야기, 먹는 이야기 내용이 아님에도
오히려 더 반짝이는 눈이다.
" 나는 왜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걸까?"
봄이가 조용히 이야기한다.
"나돈데..."
주인공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내어놓은 봄이의 이야기에 잠시 멈추었다.
눈빛으로 봄이에게 응원을 보내며 다음 이야기를 전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얼마나 위대한 화가인지 피카소의 그림을 찾아 감상했다.
"자, 이제 우리도 피카소가 되어볼까?"
마침 어제까지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쳤고
그 물기를 머금은 보도블록은 분필 그림을 그리기에 아주 적당한 습기를 품고 있었다.
비가 오면 지워지는 색분필을 들고 우리가 함께 읽은 그림책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자, 우리가 피카소가 되어볼까?"
아이들은 알록달록 예쁜 꿈을 그려간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 무지개다리가 생기고, 꽃이 피고, 나무가 생기고, 집이 생긴다.
우리들의 이름이 차곡차곡 적히고 서로의 집이 연결되어 마을이 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의 이름을 쓰고
시작점과 가야 할 곳을 화살표로 표시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글이 아닌 그림으로 그 이야기들을 마음껏 펼쳐 놓는다.
이벤트에 진심인 선생님을 닮은 아이들도
교감선생님을 오늘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기도 했다.
아직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것 때문에
움츠려 있기보다는
세상이라는 도화지가 얼마나 넓은지,
그 안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만나고 싶은 세상을 펼쳐볼 수 있었다.
"얘들아, 우리 오늘 어떤 책 읽었지? 너희들은 지금 어떤 화가가 된 거지?"
"음..."
"잘 생각해 봐. 선생님이 힌트 줄게. 피...!"
열심히 그림 그리느라 잊었다.
"자 힌트 더 줄게. 피.. 카.."
두 아이가 자신 있게 대답한다.
"아! 피카추?"
"뭐라고?"
함께 신나게 웃었다.
오늘 우리는 비록 피카소는 되어보지 못하고
피카추에서 머물렀지만
아무렴 어때.
우리가 서로의 마음에 조금 더 닿았는데
알록달록 그려지던 그 그림의 빛깔들이 선명하게 기억될 오늘이다.
마음의 공간에 아이들을 넣으니
서로에게 공감으로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