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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16. 2024

그리고 그다음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에세이 한 편을 읽었다 ⎯ 샘 앤더슨(Sam Anderson)의 <월넛과 나(Walnut and Me)>. 자신의 반려견을 통해 얻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이아 알라리(Gaia Alari)의 삽화가 자아낸 동화 같은 분위기는 묵직한 메시지를 명랑하게 전하는 데 한몫을 한다. 조그만 구멍에서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생명과 사랑을 말하게 될지 호기심이 앞섰다.


뭔가를 수리하기 위해 딛고 올라간 사다리가 작가의 집 2층 바닥에 부리토 만한 검은 구멍을 만들어버린다. 메꿔야지 생각만 하고 미루던 어느 날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데, 딸이 기르던 햄스터 망고가 케이지를 탈출해 그만 그 구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온 가족이 며칠을 전전긍긍하며 망고를 찾지만, 벽 뒤 혹은 바닥 저 깊은 어딘가에 망고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희박해진다. 인간들이 모두 포기할 무렵, 강아지 월넛은 거실 벽 뒤쪽에서 뭔가를 감지한다. 그리고 월넛의 활약으로 망고는 무사히 구출된다.

(커버 이미지는 거실 벽에 작은 틈을 내고 놓아둔 피넛버터 냄새를 맡고 드디어 망고가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다. 온통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쓰고 며칠을 굶주렸을 이 작은 생명체의 몰골은 마치 무덤에서 기어 나온 것 같았다고 한다.)

사실, 월넛은 작가의 두 번째 반려견이었다. 그가 무척 사랑하던 첫 반려견 모비는 열두 살에 암에 걸려 그의 곁을 떠났다. 그 후 많은 날을 모비를 그리워하며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분노하던 작가는 다시는 반려견을 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슬픔을 어느 정도 극복할 무렵, 그의 아내가 월넛을 데려온다. 여러 가지로 모비와 다른 월넛을 볼 때마다 모비가 더욱 그리웠던 그는 꽤 오랜 시간 월넛을 좋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서로가 서로에게 차츰 적응하게 되고, 그는 이제 모비만큼 월넛도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덧 월넛도 모비가 떠난 나이인 열두 살이 되는 동안 작가는 다른 죽음들도 경험하며 깨닫게 된다 ⎯ 세상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월넛과 눈을 맞추고 그를 어루만지면서 작가는 오늘이 그와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음을 상상하고, 그가 벌써 떠나기라도 한 듯 그의 존재를 음미해 본다.

월넛과 망고의 또 하나의 모험담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망고가 거실 벽 뒤에서 구출되고 몇 달 후 작가의 딸은 고등학교 졸업사진 촬영예약을 한다. 그런데 소정의 금액을 더 지불하고 망고와 함께 사진을 찍기로 한 전날 망고가 세상을 떠난다. 그는 자신의 케이지 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먼저 떠난 망고의 자리는 월넛이 채우게 되었다. 사진 속 월넛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작가의 딸을 바라보고 있다.


이 글을 다 읽을 때쯤 왈칵 목이 메어왔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에 어쩐지 내 감정은 담담할 수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 새삼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마치 내 몸의 일부에 불과하던 머리와 팔다리, 오장육부가 각각 독립하여 잠시 자신들만의 감각을 갖게 된 듯 온몸이 생생하게 어떤 걸 느낄 때가 있다. 이 글을 읽은 때가 그런 순간이었나 보다. 작가도 그런 순간을 감당하지 못해 이 글을 썼던 건 아닐까.

세상엔 배울 게 참 많다. 그리고 그건 사랑스러운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에게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활짝 연다면 세상은 배울 것투성이고, 그렇기에 살 만한지 모른다.

시간이 겨울의 강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지 않고 흘러간다고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움직이는 시간 속에 기억을 보태는 것도, 때로 잊을 수 있는 적당한 홀가분함도 썩 괜찮다. 지금 내가 아는 건,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언젠가 때가 오면 떠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내 삶은 이번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생이 끝나고 다른 생을 살 수 있다면, 그때 가서 또 잘 살면 되는 거고.

소중한 이들이 내 곁을 먼저 떠나가는 걸 보며, 삶이 내게 말해주고자 하는 게 뭘까 귀를 기울여본다. 이 땅에서의 시간이 정해져 있음에 슬프고 감사하다. 이별을 알리는 날이 온다는 건 슬프지만 끝은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어떤 시작일 수 있고, 끝이 있기에 삶의 순간순간이 빛나고 귀할 수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 떠난다 ⎯ 이 사실이 나의 인식에 깊이 자리 잡고 난 다음, 그다음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다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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