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만-에필로그
회사 일이 바빠 5, 6월 월차 쓸 시간도 없었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6월 말까지 일 해달라는 말을 들은지라 월차를 아껴 마지막 날(6월 28일인 오늘)에 쓰고 어제로 퇴사했다. 퇴사했다고 달라질 건 없다. 회식하지 않는 문화이기에 평소와 같이 퇴사하고 운동 가고 화실 가고 청소년 픽업하고 집으로 왔다. 피곤했다. 날이 더워지니 스쿼시 2시간도 힘들다. 피곤해서 일찍 잤더니 연재를 또 미뤘다.
출근하지 않는 오늘, 눈을 떠 연재에 쓸 책을 떠올렸다. 여전히 토지를 읽고 있고(토지4권), 지난주 읽는다고 말하기도 뭣한 <레미제라블>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토지>와 <레미제라블>을 읽으니 고전은 고전이다, 아니! 명작은 명작이다는 마음에 책장을 몇 번이나 둘러봤다. 6월 말이고 1년의 반이 지났다. 연재를 마칠까. 1권의 연재에 25편 글이 실린다. 내가 쓴 목차를 보니 20번째 쓸 차례다. <토지>는 연재북에서 빠져버리는 바람에 넣지도 못했지만, 어림잡아도 18권 정도 소개했다. 단순히 책 소개 글이 아니길 바랐다. 책 모임에서 하는 얘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길 바랐고, 몇 권 빼고 책과 내 이야기를 연결시켰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 에피소드가 떨어졌는지 책과 연결 지을만한 내 이야기도 없지만 무엇보다 글로부터 파생되는 생각들이 고만고만하다. 이쯤에서 멈춰야 할까. 퇴직과 이직이 맞물려서, 운동에 빠져서, 글 쓰기가 귀찮아져서 내가 연재도 못 지키고 있는 걸까. 뭐든 한 번 어그러지면 복귀하기 쉽지 않다. 규칙을 깨고 싶지 않은 이유다. 쉬어가면 다시 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한데, 내가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쓰는 글은 아니니까 쉬고 싶을 때 쉬자.
다시 말하지만 1년의 반이 지나는 시점이니까. 25편 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고 쉬었다가 다시 쓰자. 여러 연재 중에 가장 꾸준히 쓸 수 있는 글이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만>이니까. 1년 52주로 잡고,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빼면 48권 정도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연재 소개 글에 같은 책을 여러 번 소개할 수 있다고 했지만, 되도록 새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북튜버나 북테파피스트, 북큐레이션은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작은 이유 하나쯤 명확히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책 추천 해주세요 했을 때 내가 쓴 글을 뒤적이며 추천해 줄 수 있도록 남기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치지 않게 써야 하고 읽어야 한다. <토지>와 <레미제라블>로 다른 책이 살짝 시들하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좋아하는 작가 신작이 나오면 구입하고, 모르는 작가의 글을 읽고 좋으면 금사빠처럼 빠져든다. 서평 피드를 즐겨보며 간간이 이벤트 응모도 한다. 북토크 소식도 꾸준히 본다. 지난 토요일에도 동네 도서관에 있는 북토크를 다녀왔다. 재주 많은 작가의 N잡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책을 받았다. 취미는 북토크 참석, 특기는 질문하고 책 받기다. 그러려면 꾸준히 책을 읽고 책 속에서 혼자 잘 놀아야 한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모두 탈락되어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도서관 운영위원회 회의 때 책 모임을 만들자고 하셨다. 작은 여러 개를 만든다. 내가 낼 수 있는 안건은 뻔하다. 읽고 있는 책, 읽어야 하는 책 끼워넣기. 그러니까…‘토지 읽기’. 한 달에 한 권 읽고 만나면 스무 달이다. 그러니까 2년 프로젝트로 해보자고 했다. 중간중간 나들이도 가면서. 나머지 하나는 ‘레미제라블 읽기 모임’이다. 단기 모임으로 읽고 싶은 책 생길 때마다 게릴라형식으로 사람을 모으는 소속감이 덜하다. <레미제라블>이 5권이고 7월에 첫 모임을 갖는다. 첫 모임은 간단히 모임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헤어지면 된다. 그러니까 8월부터 12월까지만 모이면 되겠지. 그렇다, 내가 진행한다. 안건을 2개나 냈으니 하나는 맡아야지. 관장님은 ‘토지 읽기 모임’을 진행해 달라고 했지만 프로젝트로 끌어가는 모임을 진행하고 싶어 거절했다. 막상 모임 하나를 맡게 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부터 밀려온다. 뻔한 질문 하기 싫은데.
이틀 전에 문자가 왔다. 출판사로부터 책 증정 이벤트 당첨이 되었다고 택배 보내준단다. 작년까지 매달 15권 정도 사던 책 소비를 올해는 과감히 줄여보자 했다. 소소한 이벤트에 참여하며 읽으니 책 소비량은 확 줄었다. 숙제처럼 읽어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한 주에 한 권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드라마도 보면서 지낸다. 3개월 수습이라 이직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애매하지만, 퇴직하기 전에 취직(이직) 되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적응하기 바쁘겠지만, 책은 계속 읽겠지. 방금 밀리의 서재 풀코스 완주 메달 수령지 주소도 입력했다. 7월에는 메달도 오겠지. 꾸준히 썼고 쓸 수 있는 글은 잠시 쉬었다가 7월 어느 날부터 다시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