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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Jun 17. 2024

달밤에 체조

우리 집 최약체가 움직인다면

볼링 이겼다고 기분 좋은 청소년

고1 남학생이 축구를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는 못 한다는데 기반한다고 해야 할까. 남고에 다니는 청소년인데 지 말로는 학교에서 가장 작다고 한다. 그러니 크고 싶은 욕망이 엄청나다. 청소년 마음처럼 나도 아이 키가 컸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 둘 다 작으니 안 크나 싶어 청소년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만 앞선다.

일찍 자라고 운동 좀 하라는 잔소리는 끝이 없다. 중3까지 내 말을 귓등으로 듣더니 남고의 효과가 큰 지 올해부터는 적극적이다. 중1 1학기까지 태권도 4품을 딴 후로 도통 하는 운동이 없던 터에 중2 때였나, 중3 때였나 볼링을 배웠다. 그래도 근력운동이니 도움 될 거라 생각했다. 한쪽 근육만 쓰는 게 내심 걱정이긴 했지만. 혼자 배우니까 심심했지만 약 1년 가까이 배웠다. 볼링을 계속했더라도 볼링반이 아닌 이상 근력 키우기에 턱없이 부족했겠지. 뛰기 싫어하는 애가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는 농구를 시작했다. 자신은 축구나 야구보다 농구가 더 재미있단다. 아무래도 코트가 좁으니까 할 만하다 느꼈는지 모른다. 코트가 좁다고 운동량이 적은 건 아니니까.

고등학생이 되고 첫 시험 기간을 거치면서 농구도 사그라들었다. 날은 점점 더워지니 밖에서 하는 운동은 아무래도 힘들지. 혼자 아파트 앞에 나가 줄넘기를 하고 온다. 새벽에 가기도 하고 학원 수업 다 끝나고 저녁에 가기도 한다. 다행히 테니스코트처럼 바닥이 푹신한 곳에서 하니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아 다행이다. 저번 주말은 새벽 5시에 나가서 줄넘기를 하고 오기도 했다. 줄넘기 끝나고 더 걷거나 뛰고 오면 좋겠지만, 참견은 금물이다. 스스로 뭘 한다고 이리저리 애를 쓰는데 잔소리 한 스푼은 사기를 떨어뜨리니까 그냥 두고만 본다. 새벽에 나가 줄넘기를 하고 온 날이면 스스로 뿌듯해 나에게,

“나 오늘도 혼자 일어나서 줄넘기하고 왔어.”

그러면 나는 무심하면서도 애정을 담아(?)

“어, 잘했어.” 한 마디면 충분하다. 그러다 분위기 보고 몇 개 했는지, 한 번에 몇 개까지 할 수 있는지 곁들인 질문을 던질 뿐이다.

일주일 쉬고 간 요가 시간에 땀 범벅

유월이 되고 내 운동 스케줄에 변화를 줬다. 알차게 운동하던 월요일을 조금 느슨하게 가기로 했다. 주말에 집에서 빈둥거리기 때문에 월요일은 스쿼시 연습과 요가를 했던 지난 두 달. 책 읽는 양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번 달부터 책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상대적으로 약속이 없는 월요일. 4시 퇴근해 집에 오면 대충 5시가 조금 넘는다. 그때부터 7시까지 카페에 앉아(집은 안된다) 집중해 책을 읽는다. 읽어야 할 책이 줄줄이니까. 오늘도 마찬가지다. 조용히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지나고 카페를 나와야 할 때면 이제 책이 재밌어지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카페를 나올 때는 운동 끝나고 집에 와서도 책을 읽을 것처럼 하지만 뭐… 시험 공부 해야지 하고 안 하는 학생과 같은 마음이다.

퇴근 후 카페에서 시간 보내며

오늘 요가하고 집에 왔다. 좀 있으니 ‘다녀왔습니다.’ 하며 청소년이 들어온다. 줄넘기를 하러 간단다. 신발 신고 나가는 것 같더니,

“엄마!” 하고 부른다.

“왜?”

“탁구 치러 갈래?”

“엄마 탁구 못 쳐. 탁구는 아빠랑 쳐야 해.”

“아니야, 엄마 하자. 엄마랑 할 거야.”

아.. 귀찮은데 꾸역꾸역 엉덩이를 뗀다.

“엄마 요가하고 와서 힘든데.”

“엄마, 배드민턴 하러 갈래? 탁구 할래, 배드민턴 할래?“

“배드민턴.”

양말을 주섬주섬 신고 청소년을 따라나선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오늘 학원 가기 전에 친구와 볼링을 쳤는데, 스근하게 한 판 이겼다고 어깨 힘주고 신나 하며 말한다. 운동 필 받은 날인갑다.


“엄마, 같이 걷자. 뒤에서 걷지 말고. 나란히 걷자.”

시험공부 잔소리만 안 해도 이렇게 평화로운데, 시험 얘기만 하면 서먹서먹한 사이가 된다. 현실은 현실이다. 시험이 2주밖에 안 남았다. 기분 좋은 청소년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 오늘 하루 운동 같이 해주지 뭐. 그래, 하루쯤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테니스(배드민턴) 코트장으로 갔다. 불은 사람이 다니는 코트 한쪽 귀퉁이 쪽이 있어 불빛 중심으로 배드민턴을 쳤다.

“나, 배드민턴 배워왔거든.” 하며 치지만 어두운 코트에 공 시선을 따라가는 속도는 느려 많은 랠리가 되지 못했지만, 둘 다 땀범벅이다. 그거면 됐지. 시계를 보더니 10시 넘었다고 들어가잖아. 집에 들어와 볼링에 줄넘기에 배드민턴까지 해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며 수박 먹자마자 거실에 뻗어 핸드폰으로 원피스를 본다. 아.. 시험공부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참는다.

10시 50분이 되니 자야겠다고 들어간다. 그래, 시험공부 안 할 거면 일찍 자기라도 해야지. 예전처럼 너와 배드민턴해서 즐거웠다(양가감정이다. 분명 좋은데.. 좋은 거 맞는데… 시험이 코 앞도 맞고…). 조만간 볼링 치러 가자. 엄마도 볼링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신발 아깝잖아.

배드민턴 치기 전 몸풀기 줄넘기

유월의 월요일은 요가만 하는 날로 정했는데, 청소년 덕에 운동하는 월요일을 꾸준히 이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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