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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Oct 04. 2022

떠나는 사람, 남은 사람

내 첫 직상생활을 마치며

2021년 5월부터 2022년 8월까지, 나의 첫 직장생활을 1년 4개월만에 마쳤다. 입사할 때는 입사의 이유를 구구절절 밝혔지만 퇴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입사하자마자 바로 운전대를 잡으면서부터 느꼈던 스트레스와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스케줄을 지탱하는 일에 압박감을 느꼈다. 진로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고민이 많아졌다. 지금은 따로 이직을 하지 않고 일을 쉬면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중이다. 영화계에서 계속 일하게 될지도 아직은 정해놓은 게 없다. 이스케이프 플랜을 다 짜놓고 퇴사하려면 어쩌면 영영 사직서를 내지 못 할 수도 있다. 퇴사는 무계획으로 실행해야 제맛이 아닐까. 아무튼 이 글에 담길 내용은 퇴사 이후 느낀 생각과 감정의 잡동사니들이다.




처음 영화마케팅 분야에 취직하려고 마음을 먹은 때가 생각이 난다. 내 주변에는 관련된 분야 근처조차 준비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모험을 하듯 무모한 도전이었다. 준비를 하면서도 내가 이걸 준비하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을 품은 채 내내 불안했고, 그 불안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되었다. 급여도 낮고 전망도 불투명한 이곳에서 젊음을 보내는 것이 어쩌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불안이었다. 그러나 퇴사를 한 지금 내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마음 속에 행복함만 차오른다. 어떠한 후회도 없이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 밝고 명랑한 영화와 진지하고 대담한, 혹은 기이한 영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종류의 독립영화를 맡아 관객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각 영화는 고유한 개성과 매력을 지녔으며 특히 독립영화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나 형식, 패기를 만날 수 있어서 일하면서 오히려 더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 멋지고 용감한 영화들의 크레딧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어 영광이었고, 가끔씩 영화진흥위원회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서 지난 일들을 추억할 것이다.




한 영화의 홍보마케팅을 진행할 때 보통 6주에서 2달 정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내게 영화가 주어지면 홍보마케팅 기간 동안에는 내내 그 영화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홍보마케팅 과정이 마무리되고 부가서비스(IPTV&VOD 등)까지 오픈되고 나면 그 영화와는 이제 이별이다. 내 에너지는 이제 다음 영화를 향하게 된다. 그렇게 영화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보면 마음 한 켠에서 헛헛함을 느낀다. 나는 아무래도 일하면서 너무 감정을 실어서 일하나보다.


하지만 문득문득 궁금했다. 수많은 우연들을 지나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영화들 그리고 그 영화를 닮은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내게 그들은 단지 일로 만난 사이 이상의,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영화를 알리는 외로운 일을 함께한 특별한 친구들이다. 그래서 내가 맡은 영화 별로 함께 일한 분들을 리스트업해서 퇴사하는 날 메일과 카톡 등을 통해 나름의 진심을 담아 퇴사인사를 드렸다.


내가 전하는 당분간의 마지막 인사에 몰려오는 회신들은 따뜻하기 그지 없었다. 함께 즐겁게 일했다는 내용, 편하게 소통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내용, 고생 많으셨고 앞날을 응원한다는 내용도 좋았지만 업무를 꼼꼼하게 잘 챙겨주셔서 수월했는데 떠나신다니 아쉽다는 내용, 이직 생각이 있으면 추천해주고 싶은 회사가 있으니 이야기해달라는 내용은 내가 기능적으로도 제법 쓸모가 있는 직장인이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물론 그들의 친절과 예의가 그저 잘 숙련된 사회인의 매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 한다. 내가 진심을 전한 만큼 그들이 보낸 마음도 진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 떠나서 그들과 근황을 전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시간을 오랜만에 가진 것이 참 좋았다. 그들은 바쁘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었고 그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나의 첫 직장생활을 이렇게 마쳤다. 분명 나는 업무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더 성장했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멋진 추억들을 한가득 얻었다. 다만 회사에 내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열심히 일을 배워놓고 금세 둥지를 떠난 직원이 회사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얄미울 수도 있으니까. 그저 내가 이곳에서 기쁘고 보람된 마음으로 일했던 것처럼 회사의 대표와 다른 분들도 나와 일했던 기억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기를 바라는 작은 욕심을 가질 뿐이다.


퇴사하면서 함께 일했던 다른 분들과는 인사를 주고 받았지만 정작 우리 회사의 대표님 그리고 동료들과는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마지막 업무를 마쳤다. 그정도로 우리 회사의 사람들, 특히 대표님은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며 독립영화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다른 회사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적은 인원으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모두가 일당백이 되어야 하는 곳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부디 독립영화를 위해 일하는 분들이 행복한 마음 충만한 채로 즐겁게 일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분들이 소개하는 영화를 나도 관객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독립영화지만 가장 회복이 느린 곳도 독립영화라고 한다. 이곳 독립영화에도 다시금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기를, 모두의 형편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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