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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Jun 27. 2022

가까울수록 하면 안 되는 것

Karu's Story #17

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친해질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요. 제가 수학과제탐구 시간에 발표했던 주제이기도 한데, 상대방의 마음을 수량화하지 않는 이상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죠. 사람은 사람 때문에 기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합니다. 특히, 나는 상대를 1순위로 대하는데 상대에겐 내가 1순위가 아니라면 굉장한 실망이 따를 겁니다. 상대의 마음까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관계를 형성할 때 '아, 이 사람과는 어디까지만 친해져야지'라는 선을 무의식적으로 긋는 것 같습니다. 그 이상으로 다가오면, 쳐내요. 부담스럽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와서 팔짱을 끼는 것과, 연인이 와서 팔짱을 끼는 건 분명 다른 느낌일 테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인간관계의 서열에 따라 상대에게 기대하는 정도가 조금씩 다릅니다. 낮은 단계의 서열은 행동에 제약을 걸고, 높은 단계의 서열은 행동에 기대치를 걸죠. 예컨대, 친하지 않은 사람이 내 몸에 손대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반대로, 애인이 나에게 하루 종일 연락이 없다면 서운하겠죠. 그만큼 내가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 애인으로서 행동해줘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이미 내가 머릿속으로 정해놓은 거죠.


  친밀도가 낮은 경우 행동에 제약을 건다고 했죠. 저는 기본적으로 대인관계를 잘 쌓지 않습니다. 친구를 안 만든다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사람을 만나고 다니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이면 충분해요. 


  친밀도가 올라갈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친구와 친해지고 있어요. 그럼 점점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갑니다. 그 사람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얘기할 때도 많고요. 함께 얘기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겁니다.


  그런데, 친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생기는 부작용이 있어요. 종종 상대에 대한 배려, 예의에 소홀해집니다. 내가 이 상대에게 선을 얼마나 지켜야 하는지도 희미해지기 시작하죠. 그러다 종종 '선을 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 여기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참 다양합니다. 저는 주로 꾹 참으면서 혼자 속을 썩이는 편이고, 저와 달리 아예 상대에게 직접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서 쳐내는 사람도 있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예의는 독립적이라는 겁니다. 친밀도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상대와 친해졌다고 해서 예의를 조금씩 갉아먹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쩌면 저도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인간관계란 게 어렵습니다. 수량화해서 측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그러나 사람의 심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아요.




  상대가 선을 넘는 행위를 할 때, 저는 내색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삭히는 편입니다. 정말 안 좋은 행위예요. 인간관계에 고통받고, 상처받고, 끝내 자기 자신조차 무너뜨리고 말을 꺼내지 않고.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정말 안 좋은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


  "제발, 불편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말을 해!"

  "괜찮아."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괜찮아'입니다. 누군가가 '괜찮아'라고 했을 때,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아요. 거짓말인 걸 아니까. 당장 저조차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정말 괜찮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에게도. 아니, 가까울수록 오히려 괜찮다면서 더 감췄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에게 상처받기 싫어요. 특히 2학기 들어서면서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일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 강도도 깊어졌고요. 사소한 장난이 나를 이렇게 망가뜨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남의 잘못을 뒤집어쓰고자 하는 게 이렇게 후폭풍이 심한 일이었을 줄이야. 그냥 묻으려고, 귀찮으니까, 사건 축소시키려고, 빨리 끝내려고. 이유는 다양하겠죠. 그런데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이에요.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요. 애들끼리 장난치다가 전혀 상관없는 나에게 불똥이 튀었을 때. 그런데 저는 그때 굉장히 피곤하고 힘든 상태였고,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았어요. 조금 사소한 시비가 붙은 것 같았는데, 한 명이 저를 잘못한 사람으로 몰아가던 거였죠. 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립니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이나 누명을 씌운다면 그냥 받아들이자. 부정하려고 해 봤자, 피곤해진다.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거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던 거죠. 그렇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매장당할 동안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내 잘못처럼 보였으니까. 그때는 그걸 몰랐어요. 내가 그냥 꾹 참고 입 다문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걸. 오히려 그건 내 마음을 썩히는 꼴이었는데, 그걸 알게 된 후에는 너무 늦어버린 겁니다.


  수동적 공격성. 분노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관계 박살 내는 데 아주 제격인 악질입니다. 빨리 고치는 게 좋은데, 수동적 공격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런 습관을 쉽게 버리기도 힘든 게 사실이에요.


  매사에 소극적이고, 자기표현을 못하던 일이 반복되니 그냥 밤송이를 삼켜버리는 일이 자자했습니다. 내가 좀 목이 긁히고 피가 터지더라도 그냥 감수하고 말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을수록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안 될 사람들에게까지 수동적 공격성을 드러낼 정도니까요.


  저도 그래요. 누군가랑 심하게 싸웠습니다. 상대가 저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요. 그래도 저에게는 그냥 '사과하는 척'으로 보일 겁니다. 굳이 상대방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싶진 않습니다. 그쯤 되면 저도 이미 마음을 닫았을 때라. 차라리 그만 사과했으면 합니다. 사과조차도 귀찮아져 버리기 전에. 그럴 때 쓰는 만능열쇠가 있죠.


  "괜찮아."


  대부분은 그냥 저 말 한마디에 바로 속습니다. 얼마나 편해요. '진짜 괜찮은 거 맞아?'라는 물음이 와도, "응. 괜찮아"라고 던져주면 다들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전 제가 진짜 괜찮다고 표현할 때는 '괜찮아'라는 말을 안 씁니다. 괜찮다는 건 거짓말이니까. 적어도 전 그렇게 쓰고 있으니까.


  가짜 '괜찮아'를 통해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다음은 어떨까요? 상대는 예전처럼 나에게 또 친근한 듯 행동하겠죠. 글쎄요. 이미 난 당신에게 상처받고 마음을 접었는데. 그럼 하는 것들은 뻔합니다. 상대를 최대한 피해요.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가지 하나하나 잘라내는 겁니다. 뭐 만약 물리적인 접촉이 가능한 상대라면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는 방법이 있겠고,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건물을 돌아가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메신저는 어떨까요? 크게 몇 가지 패턴이 있어요.

1) 평소와 다르게 딱딱한 말투 쓰기

2) 대답 피하기, 읽씹 하기, 아예 읽지 않기

3) 이상할 정도로 '괜찮아', '응', '좋아' 등의 긍정적인 대답 사용하기

4) 카톡 프사 지우기, 상메에 은근슬쩍 저격하기


  수동적 공격성을 가진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어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거죠. 참 이기적인 심보입니다. 당신이 말하기 전까지는 상대가 당연히 모릅니다! 그러니까 제발 말 좀 하세요!라고 말해도, 저부터가 그러질 않는데. 남들에게 쉽게 강요할 만한 문제는 아닙니다.


  수동적 공격성. 상대에게 행동하는 패턴을 아주 약간 바꿔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이걸 일반화시킵니다. 상대가 나에게 행동하는 패턴이 조금만 달라져도,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혼자 멋대로 단정 짓고 관계를 쳐낸다니. 그런데, 제가 그랬습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래?"

  "아니. 없어."

  "근데 왜 그러는 거냐고! 나한테 뭔가 서운한 거라도 있는 거야?"

  "없어. 괜찮아."


  상대 입장에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 분명 정상은 아닌데, 아무리 캐물어도 얘기를 안 해주니까. 그런데, 자기 입장에서는 그냥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요. 그게 진짜 나쁜 겁니다. 상대가 초능력자인가요? 내가 말 안 해도 내 속마음까지 다 읽게? 말이 안 되는 걸 알아요. 그런데 그걸 바라고 있어요. 수동적 공격성은 오히려 본인과 상대 모두를 피곤하고, 힘들게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더욱. 가깝지 않은 사이라면 그냥 상대방이 먼저 관계를 끊으면 됩니다. 간단하죠.


  어쩌면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에게 불만을 표현하는 게 두렵거나 무서울 때. 제가 써 놓은 글을 보면 마치 수동적 공격성이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써놨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해서 상처 주고 싶지 않을 때, 자신도 모르게 수동적 공격성이 발현되어 나와 상대를 오히려 더 상처 주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제발. 여러분은 저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 주세요. 본인만 손해입니다.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라나요? 이기적이에요. 적어도 저는 제가 그렇게 보여요. 그런데도 더 최악인 건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


  '괜찮아' 한 마디가 이렇게 사람을 망칩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어요.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끼고 사과를 했는데, 상대가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괜찮아'라고 합니다. 안심이 되나요? 상대는 별일 없던 것처럼 행동합니다. 나는 괜찮을지 몰라요. 상대는 죽어나갑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지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적어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반드시 이 나쁜 습관을 버리고 건강한 나를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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